유슬림(儒敎+musl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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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슬림(儒敎+muslim)
[시론] 정희진 평화학연구자
  • 정희진 평화학연구자
  • 승인 2015.10.19 0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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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말은 근대 국가 성립과정에서 수많은 지방어가 강제 통합, 소멸된 결과다. ‘순수한 하나의 우리말’은 실상 내전의 산물이었다. 인쇄술의 보급은 국어를 가능하게 했지만, 기술의 발전은 역전에 역전을 거듭, 글로벌 미디어로 인해 영어는 다양한 국어를 통일시키는 ‘인류어’가 되었다. 이제는 “국적 불명”이라는 말도 비판적으로 들리지 않는다.

최근 우리 사회의 흥미로운 현상 중 하나는 영어와 한자의 약어 결합이다. 이 시대 최고 빈도의 언어, ‘멘붕(men崩)’이 대표적일 것이다. 멘탈 붕괴(mental 崩壞). 나는 ‘쿡방(cook放)’이 국방(國防)인 줄 알았다. ‘헬조선(hell朝鮮)’, ‘맘충(mom蟲)’, ‘일베(日be)’...

트위터 용어는 거의 해독 불가다. 소통도 안 되는 마당에 ‘바람직한’ 표현까지 기대하지는 않지만, 혐오 발화나 인권 침해적 단어는 사회적 ‘검색’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유슬림(儒敎+muslim)’이 대표적이다. 주로 젊은 진보(?) 계층이 ‘개저씨(개 아저씨?)’나 ‘수꼴(수구 꼴통?)’이라고 판단하는 사람에게 사용한다. 유슬림은 우리나라 유교의 나쁜 점과 이슬람의 미개, 폭력성을 모두 갖춘 아주 저질 인간이라는 뜻이다.

유슬림. 유교 문제는 차치하자. 이 말은 이슬람 사회에 대한 세간의 고정관념을 전제한다. 테러를 일삼고, 핵무기를 만들고, 가난하고, 비참하고, 여성을 돌로 죽이고 교육도 안 시키고 운전도 못하게 하고, 하루에 다섯 번씩 기도하고... 문명과 거리가 먼, 서구와 대립하는 야만의 상징이다.

ⓒpixabay

한국의 일부 ‘여성주의자’들도 이 편견에서 자유롭지 않다. 온라인에서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정체화하는 이들 중 일부는, 이슬람 사회를 여성 억압의 상징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슬람 = 여성 억압? 물론, 이는 사실이 아니다. 성차별, 유슬림적인 행동은 무슬림이나 미국인만의 행동이 아니라 보편적 억압이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당시, 아부 그레이브 포로수용소에서 일어난 미 여군에 의한 이라크 포로 성(性) 학대 사건은 좋은 사례다. 이 경우에는 가해자가 여성이었다.

모든 이슬람 사회가 똑같지 않을 뿐더러 다른 사회도 차이가 있을 뿐 성평등한 국가는 없다. 히잡, 부르카, 니캅 등 이슬람 여성의 베일 의상에 대해서도 정작 그들 자신의 해석은 다르다. 다른 사회에서 한국을 이슬람 사회처럼 혹은 그보다도 더 못한 나라도 생각할 수도 있다. 의료 서비스 균형이 깨진 성형 산업의 번창, 가정폭력, 장애인 문제, 동성애 혐오, 일베 현상은 이슬람의 ‘미개함’과 크게 다른가? 다른 사회에 대한 고정 관념은 자기 사회에 대한 반성을 불가능하게 한다.

우리는 이슬람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한국사회의 이슬람관은 서구를 경유한 것이다. 타인을 “유슬림”이라고 비난하는 이들은 서구와 자신을 동일시하면서 한국인(유교)이 아니라 ‘인권 의식에 충만한 글로벌 네티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유슬림은 서구를 추종하는 식민의식일 뿐이다. 근대 서구의 이른바 ‘역사적 시간의 공간화’는 문명 발전 원리를 직선적 시간으로 정해놓고, 서구가 그 기원이며 그 외의 지역은 유럽의 기준과 속도에 이르지 못했다는 역사주의를 생산해왔다. “우리가 미국보다 몇 년 뒤졌다”, “OO은 서울의 60년대 수준” 등 일상적 대화도 그러한 사고 방식의 하나다. 서구를 기원으로 놓는 것도 문제지만, 서구 역시 내부 사회는 동질적이지 않다. 서구 내부에도 유슬림이 있는 것은 물론이다.

▲ 정희진 평화학연구자

유슬림으로 ‘지적당한 사람’은 최악의 인간이 된다. 유슬림 표현을 ‘사용하는 사람’은 한국이 아닌 글로벌 도시에 살고 있다. 이전에는 ‘우리와 서구’의 대립 구도였으나, 유슬림은 우리를 백인이 되게 해 준다. 그러므로 분석 대상은 유슬림으로 불리는 사람이 아니라 그 발화자다. 명명하는 자와 당하는 사람 사이의 권력 관계가 성립한다. 지금 한국에서 타인을 유슬림으로 심판하는 사람은 국적 초월 인권주의자, 정의의 사도, 글로벌 시티즌, 페미니스트다. 인권, 여성운동이 사회정의를 위한 것이 아니라 ‘글로벌 감각’의 새로운 문화 권력으로 등극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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