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성징’ 준비하는 팟캐스트의 7가지 증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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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윤 PD의 포스트 라디오]

2012년,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가 들불처럼 번져나갈 때, 라디오업계에선 이를 일시적 유행(fad) 또는 트렌드(trend)로 치부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그 대박의 이유를 ‘팟캐스트’라는 뉴미디어가 아니라, 건조주의보 내린 들판 같았던 사회 상황에서 찾는 사람들이 많았다. 물론 필자처럼 미디어 지형이 바뀐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20년 이상 업력이 쌓이는 동안 다수 미디어들의 명멸을 지켜보셨던 선배들은 지나가는 소나기에 흔들리지 말라고, 라디오라는 대세에 지장 없다고 말하셨다.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기는 했으나, 속으로는 ‘그렇게 믿고 싶으신 것 아닌가?’하는 반발심을 거두지 못했다.

2012년이 저물 무렵 18대 대선과 더불어 <나꼼수>가 막을 내리자, 그들의 예상처럼 팟캐스트 다운로드수가 폭삭 주저앉았다. ‘거봐 내가 뭐랬어?’라는 의기양양한 표정들 앞에 좀 주눅 들기는 했어도, 팟캐스트가 라디오라는 대세를 건드리지 못할 거라는 주장은 여전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사회 상황이 만들었던 거품이 걷혔을 뿐, 팟캐스트는 잠시 지나가는 소나기가 아니라 연중 내리는 비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버릴 수 없었다.

2016년, 팟캐스트가 기존 라디오에 균열을 일으키는 매체가 될지에 대한 논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팟캐스트의 성장을 점치는 쪽으로 전향했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개인의 취미를 넘어 점점 산업으로서의 모양새를 갖춰가는 팟캐스트의 변화가 있다. 어느새 목소리가 굵어지고, 턱 밑에 수염이 자라기 시작한 팟캐스트, 폭풍성장 단계를 준비하는 2차 성징의 증거 일곱 가지를 찾아보았다.

1. 팟캐스트 네트워크(Podcast Network)의 출현

▲ 팟캐스트원의 CEO 놈 패티즈(Norm Pattiz)

지상파 라디오 프로그램들이 모여 채널과 스테이션을 구성하듯, 팟캐스트쇼(podcast show)들도 모이기 시작했다. 이를 표현하는 ‘팟캐스트 네트워크(Podcast Network)’라는 말이 일반 용어로 굳어질 만큼, 미국에서의 팟캐스트의 기업화는 이미 정착단계다. 지난 2010년, 미국의 대표적 라디오 경영인 놈 패티즈(Norm Pattiz)가 35년간의 라디오 커리어를 접고 ‘팟캐스트 원(Podcast One)’이라는 회사를 차린 것이 팟캐스트 네트워크의 시작이었다. 패티즈는 라디오 그룹 ‘웨스트우드 원(Westwood One)’의 설립자로서, 미국 라디오산업의 특징인 ‘신디케이션 모델’을 만든 사람이다. ‘라디오 명예의 전당’에 오를 만큼 기존 라디오업계의 전설적 인물로 꼽혔던 사람이었기에 시장에 미치는 충격이 컸다.

그는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팟캐스트의 현 상황을 미국 라디오업계에서 신디케이션 모델이 만들어지던 30년 전에 비유하고 있다(“This is where radio syndication was 30 years ago, and this is just the beginning.”). 패티즈는 또한 넷플릭스가 비디오에서 했던 역할을 팟캐스트가 라디오에서 하고 있다고 비유한다. 라디오를 거대 산업으로 키워냈던 노장이, 이제 다시 팟캐스트를 차세대 소리매체 주자로 지목하고 뛰어든 것이다. 패티즈는 할리우드 대형 기획사와 제휴하여 유명연예인들을 팟캐스터로 영입하는가 하면, AP뉴스와 제휴하여 팟캐스트 에피소드에 스트레이트 뉴스를 자동 삽입하는 실험도 시작했다. 2015년 8월에는 거대 라디오 기업 ‘허바드 라디오(Hubbard Radio)’가 지분 30%를 사들이면서 팟캐스트 네트워크의 가치를 증명하기도 했다.

▲ 팟캐스트원의 웹사이트 첫 페이지, 농구스타 샤킬오닐이 진행하는 쇼가 탑배너로 걸려있다.

개별 팟캐스트쇼들을 팟캐스트 네트워크로 묶어내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팟캐스트라는 포맷이 인기를 얻으면서 제작자 수가 폭증했지만, 스타 팟캐스터조차 그 인기에 비례하는 수익화는 쉽지 않고 필요한 자원만 증가하는 상황에 부딪혔다. 이를 공동으로 해결코자 개별 팟캐스터들이 자발적으로 뭉치기 시작했고, 그런 움직임을 기업으로 엮어낸 것이 ‘팟캐스트 네트워크’다. 영상 분야의 ‘MCN(Multi Channel Network)’과 같은 산업 흐름으로 이해해도 무방하다. 다소 차이는 있지만 현재 미국의 팟캐스트 네트워크들은 다음 역할을 한다.

∙팟캐스트 제작에 대한 물적, 법적, 행정적 지원 (스튜디오, 서버 호스팅, 저작권 처리, 부대 인력 등 지원)

∙광고 유치 및 수익화 기술 솔루션 제공

∙공동 브랜드를 활용한 홍보 마케팅

∙이용 리포트 분석 및 컨설팅

∙오프라인 이벤트 및 연계 사업 지원

한마디로 개별 팟캐스터들이 콘텐츠 창작에만 집중하면서도 돈을 벌 수 있도록, 필요한 모든 지원을 해주는 것이다.

‘팟캐스트 원’ 등장 이후, 미국에서는 다양한 성격의 팟캐스트 네트워크들이 속속 출현하고 있다. 코미디 장르에 특화된 ‘얼울프(Earwolf, 2010년 설립, 코미디언 Scott Aukerman이 설립, http://www.earwolf.com/)’, 편리한 제작 도구 제공을 통해 개인 제작자들을 파고들고 있는 ‘스피커(Spreaker, 2010년 설립, spreaker.com)’, 공공 저널리즘을 표방하며 공영성 강한 팟캐스트들을 지원하는 ‘라디오토피아(Radiotopia, 2014년 설립, 나이트 재단(John S. and James L. Knight Foundation)이 지원, https://www.commitchange.com/ma/cambridge/prx-inc)’, 검증된 퍼블리셔의 고품격 콘텐츠를 선별 제공하는 ‘파노플리(Panoply, 2015년 설립, 매거진 그룹 Slate가 운영, http://www.panoply.fm/)’ 등이 대표적 팟캐스트 네트워크다. 이들은 스타 팟캐스트쇼들을 한데 묶어 광고를 번들링 판매하고, 정밀한 청취 리포트와 광고 타깃팅 기술을 적용하여 광고주들에게 어필하고 있다. 또 콘텐츠의 완성도를 보장하는 브랜드로서, 팟캐스트의 홍수 속에 선택 피로를 느끼는 청취자들의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 뉴욕타임즈 매거진, HBO 다큐멘터리 필름, 리얼 심플, 허핑턴포스트 등 지명도 있는 미디어 기업들을 제휴사로 참여시켜 검증된 고품격 팟캐스트로 차별화한 파노플리(Panoply)의 웹사이트 프론트.

'팟캐스트 네트워크'란 표현이 낯선 국내에서도, 이미 팟캐스트 네트워크는 시작되었다. 마땅히 쓸 만한 팟캐스트앱이 없었던 안드로이드폰 청취자에게 팟캐스트앱과 피드백 채널(게시판)을 제공하면서 국내 최대 팟캐스팅 플랫폼 사업자로 떠오른 팟빵(http://www.podbbang.com)은, 호스팅과 스튜디오, 번들링 광고 등 팟캐스트 제작과 수익화 도구 지원을 통해 제작자들을 빨아들이고 있다. 팟캐스트 네트워크의 기본 조건을 갖춘 셈이다.

▲ 팟빵 웹사이트의 광고 안내 페이지

2. 기존 라디오, 팟캐스트 시장 진출

팟캐스트에 대해 보수적 관점을 견지하던 기존 라디오 사업자들도 입장을 바꾸기 시작했다. SBS라디오는 지난 2015년 가을 개편에서 ‘라디오를 넘어선 오디오 시장의 진출 모색’이라는 지향점을 제시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오디오 시장’이라는 용어다. 라디오를 넘어 팟캐스트, 음원서비스까지 소리매체 전반을 아우르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개편 기자회견에서 김영우 SBS라디오 편성기획팀장은 “오디오 시장 진출을 고려해 <언니네 라디오>, <FMzine>, <고릴라 캐스트>를 만들었다”고 밝히면서 이를 확실히 했다. SBS라디오가 이번에 신설한 <송은이 김숙의 언니네 라디오>는 <송은이 김숙의 비밀보장>이라는 팟캐스트를 공중파로 가져온 프로그램이고, <고릴라 캐스트>는 인기 팟캐스트를 골라 모아서 지상파로 들려주는 프로그램이다. SBS라디오는 이미 자사 PD들이 자생적으로 시작한 팟캐스트들(<씨네타운 나인틴(이재익·이승훈·김훈종 PD 제작 진행)>, <떡국열차(김영우 PD 제작 진행)>)를 통해 팟캐스트에 대한 경험을 쌓아왔으며, 이를 지상파 정규편성에 반영하기도 했다(<씨네타운S>).

▲ 팟캐스트 '송은이 김숙의 비밀보장'의 타이틀 이미지(왼쪽), 이를 지상파로 가져온 SBS '언니네 라디오'의 타이틀 이미지.

2012년부터 이미 ‘프로그램 다시듣기’의 기술적 인프라를 팟캐스트 방식으로 전환하고, 모든 프로그램을 팟캐스트로 서비스해 온 MBC라디오도 최근 ‘팟캐스트 M(Podcast M)’이라는 팟캐스트 전용 채널을 OTT(Over The Top)서비스 ‘MBC 미니(MBC mini)’의 4번째 채널로 개설했다(오른쪽 모바일 화면 캡처 이미지). 아직 기존 프로그램의 다시듣기 팟캐스트 위주로 구성되어 있으나, 번외편이나 오리지널 팟캐스트를 추가할 계획을 갖고 있다.

미국 지상파 라디오들은 더 적극적이다. 2015년 초 CBS 라디오와 CBS 로컬 디지털 미디어(CBS Local Digital Media)는 CBS 미디어그룹의 오디오콘텐츠들 뿐 아니라 외부 콘텐츠(Vox media 등)까지 300여개 프로그램을 끌어모아 ‘플레이 잇(Play It, play.it)’이라는 팟캐스트 네트워크를 런칭했다. CBS가 보유한 진행자들과 프로그램 브랜드, 프로모션 파워를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웹사이트 헤드라인에는 CBS의 간판 TV탐사프로그램 <60 Minutes)>의 오디오, CBS 스포츠 라디오의 프로그램들, <48 Hours)>의 오디오 등이 걸렸다. 미국 최대의 라디오 그룹 아이하트미디어(iHeartMedia)는 2013년에 이미 ‘아이하트라디오 온라인(iHeartRadio Online)’에 <iHeartRadio Talk>’를 신설하고 팟캐스트 프로그램들을 밀어 넣고 있다.

<Radiolab>등 수준 높은 프로그램들을 제작, NPR(미국 공영 라디오 방송국)을 통해 미 전역으로 배급하는 뉴욕의 대표 라디오 채널 WNYC-FM(New York Public Radio 보유 채널)도 2015년 가을 ‘WNYC 스튜디오즈(WNYC Studios)’라는 팟캐스트 조직을 신설했다. 제작비 1500만 불의 펀드를 조성, 팟캐스트 제작에 투입키로 했으며, 다양한 오리지널 팟캐스트쇼를 만들어서 일부는 지상파로도 편성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WNYC 스튜디오즈는 출범 후 첫 작품으로 미국의 대표적 잡지사 <뉴요커>와의 제휴를 통해 <더 뉴요커 라디오 아우어(The New Yorker Radio Hour)>라는 팟캐스트를 내놓았다.

▲ WNYC FM의 팟캐스트 조직 WNYC Studio가 잡지사 '뉴요커'와의 제휴를 통해 출시한 'New Yorker Radio Hour' 팟캐스트쇼

3. 정부, 정당, NGO, 기업… 홍보와 소통 수단으로 떠오른 팟캐스트

팟캐스트에 뛰어드는 것은 비단 기존 미디어들만이 아니다. 정부 기관, 정당, NGO(비정부기구), 직능단체, 정부 등 홍보와 소통을 원하는 다양한 주체들이 팟캐스트에 주목하면서, 관련 팟캐스트를 후원하는 것을 넘어 아예 제작에 뛰어들고 있다. 노회찬, 유시민, 진중권 3인의 스타 당원들을 진행자로 내세운 정의당의 <노유진의 정치카페>는 최근 정의당 지지율 상승의 견인차로 평가될 만큼 그 파급력을 인정받고 있고, 이에 자극받은 더불어민주당(전 새정치민주연합)도 <진짜가 나타났다>라는 팟캐스트를 내놓았다. 정부기관과 지방자치단체에서도 기관 역할 홍보와 대민 소통 도구로 팟캐스트를 활용하는 예가 많다. <알기 쉬운 헌법 팟캐스트>(헌법재판연구원), <정인영 아나운서의 건강 홈런(Learn)>·<컬투! 심통사연>(건강보험 심사평가원), <바람아래 소곤소곤>(환경부), <e발소(e색적인 발명을 소개합니다)>(특허청), <북소리 1번지>(국회도서관), <서울씨의 10분 라디오>(서울시), <학부모를 위한 진로 레시피>(교육부) 등 공적 서비스 대상에게 부드럽게 다가가려는 정부 기관이나 지자체의 시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사회적으로 목소리를 내고자 하는 직능단체들도 팟캐스트 대열에서 빠지지 않는다. 소장 의료인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온 ‘청년의사’는 <나는 의사다>, <히포구라테스> 등의 인기 팟캐스트를 통해 의료계 허브 매체로서의 입지를 다지고 있다. 기업들의 참여도 눈에 띈다. KB투자증권은 경쟁사에 비해 취약한 소매 금융 강화를 위해 개인 자산 관리를 쉽게 풀어주는 팟캐스트를 개설했다.

▲ 왼쪽부터 정의당의 '노유진의 정치카페', 청년의사의 '나는 의사다', 헌법재판연구원의 '알기쉬운 헌법 팟캐스트'

‘브랜드 저널리즘(Brand Journalism)’이 발달한 미국에선 기업들이 좀 더 장기적인 관점의 브랜드 이미지 구축을 위해 팟캐스트를 애용한다. 광고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에 만족해야하지만, 팟캐스트를 통해서는 소비자와의 지속적 관여(engagement)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GE(General Electric)는 ‘GE 팟캐스트 씨어터(GE Podcast Theater)’라는 자체 팟캐스트 채널까지 꾸려서 ‘더 메시지(The Message)’라는 공상과학 팟캐스트쇼를 제작했다. ‘상상력의 구현을 통한 인류의 진보’라는 GE의 브랜드 이미지와 딱 들어맞는 스토리텔링이다.

4. 오리지널 팟캐스트 콘텐츠의 이종 플랫폼 진출

▲ BBC Radio Extra4 채널에 편성된 'Serial' (iPlayer 화면 캡쳐)

매력적인 콘텐츠엔 플랫폼들의 러브콜이 밀려들게 마련이다. 지상파 라디오 프로그램이 원전, 그 다시듣기가 팟캐스트로 서비스되는 경우가 아직 우세하지만, 거꾸로 팟캐스트로 시작해서 다른 플랫폼으로 넘어가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SBS라디오는 자사 PD들이 취미로(?) 만들던 <씨네타운19>을 <씨네타운S>라는 이름으로 지상파에 정규 편성했고, 지난 2015년 가을 개편부터는 앞서 언급했듯이 <송은이 김숙의 비밀보장>을 <언니네 라디오>로 순화(?)하여 FM전파에 얹었다. SBS보도국 기자들이 뉴스의 이면을 풀어주는 인기 팟캐스트 <골룸(골라듣는 뉴스룸)> 역시 SBS 파워FM에서 방송중이다.

2014년 미국에서 대박을 터뜨린 논픽션스릴러 팟캐스트 <Serial>은 영어 콘텐츠답게 행보가 더 글로벌하다. 대서양을 넘어 영국 BBC라디오에 까지 정규 편성되었고, <Serial 시즌2)>에 이르러서는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 ‘판도라(Pandora)’에 독점 공급되었다. 판도라 같은 음악서비스들이 팟캐스트를 수급하는 움직임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는데, 이는 음악에 더해 ‘온디맨드 토크 오디오 콘텐츠’를 보완하여 소리매체 완전체를 이룸으로서 비교우위를 확보하자는 전략이다.

팟캐스트가 책으로 묶여 나오는 추세도 자연스럽다. 지상파 라디오에 비해 분량과 소재 제약에서 자유롭고, 청취층을 좁고 깊게 잡을 수 있는 팟캐스트의 특성이 반영된 결과다. 팟캐스트의 인기가 베스트셀러까지 이어진 <지대넓얕(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을 필두로, <잉글리시 인 코리언(English In Korean)>, <우리가 사랑한 소설들: 빨간책방에서 함께 읽고 나눈 이야기>, <과학하고 앉아있네>, <나는 프로그래머다>, <벤처야설>, <메트로폴리스 서울의 탄생> 등 팟캐스트 내용을 지면에 옮겨 적은 책들부터 스핀 오프 버전까지, 출판과 팟캐스트의 주고받기가 서점가의 요즘 풍경이다.

5. 탤런트(talent)의 이동

사람들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미국 라디오업계에서 잔뼈 굵은 노장도, 피끓는 젊은 프로듀서도, 라디오 광고를 팔던 세일즈맨들도 FM을 떠나 팟캐스트로 향하는 이민 행렬에 합류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미국 최대의 팟캐스트 네트워크 ‘팟캐스트 원’의 설립자 패티즈는 ‘미국 라디오 명예의 전당’에 오를 만큼 기존 라디오업계의 대표적 경영인이었다. 영국의 대표적 상업라디오 사가 커뮤니케이션(Saga Communication)에서 30여 년간 중추적 역할을 했던 스티브 골드스타인(Steve Goldstein) 역시 2015년 3월 ‘앰플리파이(Amplifi)’라는 신생 팟캐스트 회사로 옮겼다. 그는 최근 텍사스에서 열린 팟캐스트 컨퍼런스를 다녀온 후 쓴 칼럼에서, 현장을 뜨겁게 달군 팟캐스터들의 열정을 전하는 한편 기존 라디오인들의 혁신에 대한 무관심을 탄식하기도 했다.

제작 일선에서 물오른 30~40대 라디오 프로듀서들의 팟캐스트행은 더 거세다. 수년째 미국 팟캐스트 톱5를 지키고 있는 <99% Invisible>은 라디오에서 주목받지 못하던 작은 프로그램이 팟캐스트에서 빛을 발한 경우다. 이 프로그램을 제작해온 로만 마스(Roman Mars)는 해당 팟캐스트의 성공을 바탕으로 ‘라디오토피아(Radiotopia)’를 설립, 공영성 강한 팟캐스트들의 보금자리를 꾸렸다. 영어권 전체로 글로벌 히트를 기록한 팟캐스트 <시리얼(Serial)>을 제작하고 진행한 사라 코닉(Sarah Koenig) 역시 공영라디오의 진행자 겸 프로듀서 출신이다. 십 수 년 전의 한인 여고생 피살 사건을 역추적하는 스릴러 다큐 <시리얼>은 원래 NPR의 장수 프로그램 <This American Life>의 스핀 오프로 만들어진 팟캐스트인데, 한국의 <나꼼수>에 비할만한 흥행을 거두며 시즌을 이어가고 있다. NPR의 스타 프로듀서로서 <Planet Money>를 제작하던 알렉스 블룸버그(Alex Blumberg) 역시 작년 라디오를 떠나 실리콘밸리로 갔다.

▲ 'Serial' 진행·제작자인 Sarah Koenig(왼쪽)와 'Start Up'의 진행·제작자인 Alex Blumberg(오른쪽). 둘 모두 공 라디오에서 팟캐스트로 일터를 옮겼다.

그는 벤처캐피탈의 투자를 받아 팟캐스트 기업 ‘김릿 미디어(Gimlet Media)’를 설립하고 <스타트 업(Start Up)> 등 3개 프로그램을 런칭, 곧바로 아이튠즈 챠트 상위권에 진입시켰다. 블룸버그는 2015년 가을 호주 공영방송 ABC라디오의 인기 팟캐스트 <사이언스 Vs(Science Vs)>의 제작자 겸 진행자인 웬디 주커먼(Wendy Zukerman)을 뉴욕으로 스카웃하여 호주 ABC의 심기를 건드리기도 했다. 영미권 라디오업계의 경우, 음악서비스나 팟캐스트로의 인력 이동은 기존 라디오업계가 위기감을 느끼는 수준이다. 제작진 뿐 아니라 베테랑 광고 영업 인력까지 음악서비스와 팟캐스트 기업에 스카웃되고 있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즈> 보도에 따르면, 앞서 팟캐스트 네트워크 부분에서 예로 든 뉴욕 퍼블릭 라디오(New York Public Radio, WNYC-FM)의 팟캐스트 조직 신설의 이면에도 팟캐스트 업계로의 인력 유출을 막기 위한 목적이 있었다고 한다.

아직은 인력 이동이 미미하지만, 국내 역시 팟캐스트 쪽을 바라보는 라디오인들의 시선에 부러움과 기대가 커지고 있다. MBC라디오와 SBS라디오를 거치며 문화·책·음악 프로그램 등을 진행했던 이동진(영화평론가, 전 <조선일보> 영화 담당 기자)씨는 이제 팟캐스트 <이동진의 빨간책방>(위즈덤하우스 제작)이 메인이다. 진행자 이동진 씨와 한 팀을 이루고 있는 허은실 작가 역시 MBC라디오 해당 프로그램의 방송작가로서 이동진 씨와 호흡을 맞추기 시작했다. 동일한 진행자-작가 배터리가 지상파 라디오와 팟캐스트에서 유사한 주제(책과 문화)로 콘텐츠를 만들어봤는데, 그 영향력은 팟캐스트의 완승이었다는 사실은 라디오 방송사에서 새겨봐야 할 부분이다. 수면으로 드러나 있지 않지만, 이미 여러 라디오PD들이 취미 삼아(?) 팟캐스트를 제작하고 있다. 팟캐스트와 라디오가 결국은 상보적으로 소리매체를 완성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오히려 장려해야할 일이다. 물론 비전을 보여주지 않는 조직에겐 두려운 일이겠지만.

6. 수익화 기법의 발전

▲ .Triton Digital의 프로그래머틱 오디오 광고 솔루션 소개 이미지

‘그거 돈이 되겠어?’ 팟캐스트가 개인들의 취미로 치부되던 시절엔 답이 궁색한 질문이었다. 라디오 선후배끼리 팟캐스트에 관한 갑론을박이 있을 때, 부장의 이 한마디면 논의를 끝낼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젠 그럴 수 없다. 돈도 벌리고, 돈 버는 방법도 라디오보다 더 다양하고, 더 세련되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기 팟캐스트 광고의 CPM이 기존 매체들을 넘어섰다는 미국 쪽 보도가 나온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국내에도 지상파 라디오 광고 단가를 넘어가는 팟캐스트들이 나오고 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청취층의 스펙트럼이 균질하고, 로열티가 높고, 광고 내용과 형식 규제도 없고, 지상파 라디오에 비해 정밀한 리포트를 받아볼 수 있으니 광고주가 매력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매체 특성에 팟캐스트 네트워크를 통한 광고 번들링이 적용되고, 실리콘밸리의 정밀 타깃팅이나 프로그래머틱 기법까지 가미되고 있는 것이 현재 미국 팟캐스트 광고의 흐름이다.

청취자 관여도와 로열티가 높은 팟캐스트는 크로스세일, 연계 판매, 크라우드 펀딩 등의 수익화 방식도 많이 활용한다. 팟캐스트를 통해 동질성 높은 청취자 집단을 모은 후 이 집단이 좋아할 만한 연계 상품과 이벤트를 지속적으로 투하하는 방식이다. <빨간 책방>은 스튜디오가 있는 오프라인 북카페를 통해 서적 판매, 윈도우 베이커리를 연계하고 있고, <김종배의 시사통>은 글쓰기 강의, 인문학 강의 프로그램을 갖고 있다. 딴지총수 김어준씨의 팟캐스트는 아예 ‘딴지마켓’이라는 쇼핑몰을 운영한다. 팟캐스트 내용을 출판으로 엮어내는 것은 가장 흔한 크로스세일 방식이다.

7. 구글의 시장 진입

▲ 구글의 팟캐스트 플랫폼 진출을 알린 구 공식 블로그 관련 이미지

지난 2015년 막바지에 팟캐스트계에 대형 호재가 등장했다. 구글이 안드로이드폰에 기본 내장된 구글 뮤직앱에서 팟캐스트를 서비스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팟캐스트앱이 기본 내장(pre-load)되어 있는 아이폰과 달리, 현재 안드로이드폰에서 팟캐스트를 들으려면 ‘팟빵앱’이나 ‘스티처(Stitcher)’같은 팟캐스트 재생앱을 별도로 다운받아서 깔아야한다. 아이폰 유저는 그냥 팟캐스트앱 눌러서 바로 들을 수 있지만, 안드로이드폰 유저는 팟캐스트앱을 검색해서, 선택하고, 다운받아, 깔고 들어야 한다. 앱 하나 찾아서 까는 게 뭔 차이가 싶겠지만, 이건 사실 앱의 성공과 실패를 가를 정도로 큰 차이다. ‘국민 메신저’ 카카오톡 외에는 스마트폰 살 때 깔려있는 앱만 쓰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세계 대부분 지역에서 아이폰 점유율이 안드로이드폰 보다 열세임에도 불구하고, 팟캐스트 청취 도구로는 안드로이드폰을 압도하는 주요 이유다.

구글은 또한 애플 아이튠즈 팟캐스트 섹션에 해당하는 팟캐스트 포털 플랫폼도 예고했다. 사용자들이 자신에게 적합한 팟캐스트를 쉽게 고를 수 있는 쇼윈도, 팟캐스터들을 줄 세우는 랭킹시스템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그간 애플 아이튠즈가 독점해왔던 팟캐스트의 장르 구분과 순위 체계에 경쟁시스템이 도입되는 것이다.

▲ 아이폰 팟캐스트앱의 랭킹시스템(왼쪽), 쟝르 구분(가운데), 추천 페이지(오른쪽) 이미지 (아이폰 화면 캡쳐)

구글은 여기에 더해 큐레이션과 자동 추천 기능을 강화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사용자의 스마트폰 사용 행태와 앱 사용 맥락, 구글 계정에 연동된 빅데이터를 분석하여 사용자가 원할만한 팟캐스트 콘텐츠를 꼭 짚어 제시하겠다는 것이다. 플랫폼 거인 구글의 떡밥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플랫폼을 사이에 두고 청취자 건너편에 있는 팟캐스터들에게도 다양한 수익화 방안 마련을 약속하고 있다. 구글은 이미 미국 내 주요 팟캐스트 네트워크들 및 스타 팟캐스터들을 제휴 파트너로 소개하고 있다. 구글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오는데 팟캐스트의 안방마님 애플이 가만있을까? 두 IT거인이 팟캐스트를 두고 난타전을 벌인다면? 판이 커질 것은 불 보듯 빤한 일이다.

에필로그: 필요한 마음가짐은 두려움이 아니다

지금까지 팟캐스트의 2차 성징을 예고하는 일곱 가지 증거를 찾아보았다(7이라는 종교적, 주술적인 숫자로 예언하는 분위기가 되고 말았지만, 의도한 것은 절대 아니다). 팟캐스트가 일시적 유행이 아니라 실시간 라디오, 음악서비스와 더불어 소리매체의 세 번째 기본 매체로서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은 이제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것을 지상파 라디오에 대한 위협, 위기로만 해석하는 것은 어리석은 반응이다. 팟캐스트의 성장은 그간 불완전했던 오디오 미디어가 부족한 부분을 갖추는 자연스러운 움직임으로 봐야 한다. 취향을 콕 짚어 저격하고, 듣고 싶을 때 듣는 것이 불가능했던 라디오의 결정적 단점을 채워주기 때문이다. 미디어의 스케줄과 기준에 사람이 맞춰야했다는 것이 오히려 비정상 아니었을까? 이젠 미디어가 사람에 맞춰주는 시대다. 이게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 아닌가?

경직된 플랫폼에 콘텐츠가 갇혀있던 세상에서, 콘텐츠 특성에 맞춰 플랫폼을 선택적으로 활용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 다수 청취자가 동 시간에 공감해야 하는 콘텐츠(감성적 DJ프로그램, 출퇴근길 정보와 오락, 스포츠 이벤트), 시간이 지나면 금세 구문이 되어 버리는 콘텐츠(뉴스)는 실시간 라디오가 적합하다. 개인의 음악 취향을 맞춰주는 데에는 개인화 큐레이션과 추천 알고리즘이 적용된 음악서비스가 최선이다. 전문화·세분화된 분야의 토크 프로그램은 팟캐스트가 유리하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이 세 가지가 모두 필요하다.

팟캐스트의 성장을 보면서 우리가 준비할 마음가짐은 두려움이어서는 안 된다. 기대와 희망을 품고 차분하게 준비하는 자, 그가 최후에 웃을 것이다.

* 이 글은 한국방송협회에서 발간하는 <방송문화>에서 제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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