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 원정화 주장은 검증할 필요가 없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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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첩’ 원정화 주장은 검증할 필요가 없는 것인가
[민동기의 ‘톡톡’ 미디어 수다방] 안보 상업주의에 편승한 한국 언론의 ‘김정남 피살’ 보도
  • 민동기 미디어평론가
  • 승인 2017.02.21 10: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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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남 피살’ 사건 이후 관련기사가 무수히 쏟아졌다. 많은 문제점이 발생했지만 특히 중앙일보의 ‘원정화 인터뷰 기사’는 문제가 많다. 팩트도 별로 없는 일방적인 주장을 비중 있게 내보낸 것도 그렇고, ‘조작된 간첩’ 의혹이 이미 수년 전에 제기됐음에도 이와 관련된 내용은 전하지 않은 것도 문제다. ⓒ 뉴시스

<“난 황장엽 암살 위해 탐색만 3년…내가 속한 팀도 현지인 썼다”>

 

중앙일보 2월20일자 3면 머리기사 제목이다. 북한 여성공작원 출신 원정화를 ‘단독’ 인터뷰 했다. 중앙일보에 앞서 MBN이 원정화를 인터뷰 했지만 중앙일보는 인터넷에서 ‘단독’이란 타이틀을 달았다. ‘단독’ 남발이다.

 

중앙일보의 ‘원정화 인터뷰’는 내용적으로도 문제가 많다. 원씨는 인터뷰에서 △북한은 오랜 시간과 거금을 들여 김정남 독살을 기획했고 △김정남 정도 되면 100만 달러(약 11억5000만원)는 선불로 줬을 것이며 △여성 용의자들도 암살훈련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암살 방법도 스프레이가 아니라 독침이라고 ‘확신’했다.

 

원정화 인터뷰 중에서 ‘팩트’는 무엇인가 … 대부분 근거 없는 주장

 

하지만 원정화의 이런 주장은 기본적인 ‘팩트체크’가 되지 않은 일방적인 주장이다. 근거가 별로 없는 이런 주장을 ‘민감한 시기’에 하는 것도 문제지만, 이를 아무런 검증 없이 내보낸 중앙일보는 더 책임이 크다.

 

중앙일보가 지금 시점에서 원정화 인터뷰를 내보낸 이유가 뭘까. 그가 ‘간첩 출신’이기 때문 아닐까? ‘간첩 출신’은 김정남 피살과 관련해 자신의 주장을 그냥 아무렇게 얘기를 해도 되는 것일까? 대체 원정화 인터뷰 중에서 ‘팩트’는 무엇일까? 이런 의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인터뷰 내용 못지않게 원씨가 과연 ‘북한 간첩’이 맞느냐는 의혹도 여전하다. 중앙일보는 ‘북한 국가안전보위부 출신 여성 공작원 원정화’라면서 별도 기사로 원씨의 ‘이력’을 소개했다.

 

“원정화씨는 12세 때부터 북한 당국이 집중 관리하며 양성한 국가안전보위부(현 국가보위성) 소속 공작원이었다. 그는 2001년 입국해 7년 연하의 황모 대위를 유혹해 군사 기밀을 빼서 넘기고 한국 사업가들을 북한에 보내는 등 간첩활동을 하다 2008년 붙잡혔다. 원 씨에 따르면 “체포 직후 ‘조국(북한)이 나를 데리러 올 것’이라고 믿고, 김일성장군의 노래 등을 부르며 한달 반을 버텼다”고 한다. 그는 “북한조국평화통일위원회가 ‘원정화는 인간 쓰레기’라고 발표한 걸 보고난 뒤에야 전향서를 썼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2월20일자 3면 <원정화, 12세부터 북한 보위부서 관리 “최용해에게 외제 공책·볼펜 선물 받아”> 중에서 인용)

 

원정화는 정말 보위부 출신 공작원인가 … 제기되는 여러 의혹들

 

중앙일보가 소개한 원정화 ‘이력’은 어느 정도 팩트에 근거한 것일까. 원정화가 조작된 간첩이라는 의혹이 이미 언론을 통해 보도된 바 있다는 점에서 인터뷰 못지않게 ‘원정화 이력’ 기사 역시 문제가 많다.

 

월간 <신동아>가 2014년 3월(인터넷판 3월17일)에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탈북 여간첩 원정화가 자신의 간첩 혐의를 사실상 부인하는 증언을 했고, 이 증언이 담긴 녹음파일을 <신동아>가 입수해 관련 내용을 보도했다.

 

원정화가 자신의 의붓아버지 김동순을 만나 나눈 대화내용인데 대략적인 내용을 추리면 다음과 같다.

 

△자신은 보위부의 ‘보’자도 모르고 황장엽, 국정원 요원 등을 살해하라는 지시를 북한으로부터 받은 적도 없다 △3차례 북한에 들어가 지령을 받았다는 것과 관련해서도 탈북 이후 북한에 들어간 적이 없으며 △의붓아버지 김동순 씨도 2008년 원씨와 함께 간첩 등의 혐의로 구속됐지만, 4년간의 법정다툼 끝에 2012년 7월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는 내용이다.

 

당시 원정화를 만난 의붓아버지 김동순 씨는 <신동아> 인터뷰에서 “‘왜 간첩이 아니면서 간첩사실을 시인했느냐’고 묻자, 원정화가 “수사기관에서 ‘김현희처럼 살게 해 준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사실상 회유했다는 얘기다.

 

[신동아 기사 보기] http://news.donga.com/3/all/20140317/61783285/1#

 

합리적인 의심을 바탕으로 최소한의 검증은 하고 기사를 쓰자

 

최승호 뉴스타파 PD는 2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김정남이 암살되자 또 원정화 씨를 팔아먹는 장사가 시작됐다”면서 “원정화 씨는 조작된 간첩이라는 의문과 증거가 매우 많은 사람”이라고 지적했다. 최 PD는 “그녀는 자신의 계부에게 ‘황장엽 암살 지령을 받은 적 없다’고 털어놓았다”면서 “제발 검증 좀 하고 쓰자”며 언론을 질타했다.

 

국정원의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 - 일명 ‘유우성 사건’에서도 동아일보를 비롯한 한국 언론의 ‘무검증·받아쓰기’가 도마에 오른 적이 있다. 그때 그 언론들, 자신들의 오보와 ‘무차별 받아쓰기’에 대해 사과했는가. 당시에도 사과하지 않았고, 지금까지 사과한 언론은 거의 없다. 한국 언론은 사과의 반성과는 거리가 멀다.

 

‘김정남 피살’ 사건 이후 관련기사가 무수히 쏟아졌다. 많은 문제점이 발생했지만 특히 중앙일보의 ‘원정화 인터뷰 기사’는 문제가 많다. 팩트도 별로 없는 일방적인 주장을 비중 있게 내보낸 것도 그렇고, ‘조작된 간첩’ 의혹이 이미 수년 전에 제기됐음에도 이와 관련된 내용은 전하지 않은 것도 문제다.

 

JTBC가 ‘친박 단체’들의 표적이 되면서 중앙일보의 ‘우클릭 경향’이 강화되고 있는 걸까. 필자의 지나친 억측이라고 생각을 하면서도 최근 중앙일보의 ‘보수화’는 상당히 염려가 된다는 점은 분명히 지적해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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