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시사제작국장이 <시사매거진 2580> 세월호 편과 관련해 ‘진실’, ‘여전히 풀지 못한 의혹과 비밀’ 등의 단어와 문구를 삭제하라고 지시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MBC 민주방송실천위원회(이하 민실위)가 28일 오후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6일 방송됐던 MBC <시사매거진 2580>(이하 <시사매거진>) ‘세월호, 1073일만의 인양’ 꼭지에서 시사제작국장의 납득되지 않는 개입이 일어났던 것으로 전해진다.
조창호 국장은 "천 일이 넘는 시간 동안 아파하고 기다려온 사람들에게 위안과 진실을 전해줄 수 있기를. 세월호 침몰을 보며 눈물 흘리고, 인양 모습을 보며 마음 졸였던 모든 국민들의 바람일 겁니다“라는 기자의 마지막 설명에서 ‘진실’을 삭제할 것을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더해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세월호 가족대책위 법률대리인)의 “선체를 조사함으로써 정확한 침몰 원인을 밝혀낼 수 있습니다. 항간에 떠도는 외부 충돌설, 내부 폭발설, 이런 것들은 선체를 보면 금방 해명이 되거든요”라는 발언 전체를 삭제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팽목한 현장에서의 기자 발언 중 “선체는 수면 위로 떠올랐지만 아직 찾지 못한 사람들과, 여전히 풀어내지 못한 의혹과 비밀은 앞으로의 몫으로 남아있습니다. 선체 인양은 세월호 사건의 마무리가 아니라 새로운 시작점일지도 모릅니다”에서는 ‘여전히 풀어내지 못한 의혹과 비밀’ 부분을 삭제하고, ‘국가의 안전 관리 시스템을 확립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내용으로 교체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 국장은 이러한 지시에 따르지 않을 경우 ‘불방’시키겠다는 위협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럼에도 당시 제작진을 비롯한 담당 차장과 부장의 큰 반발로 이 문구들은 삭제되지 않고 방송에 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밖의 일부 문구들에서의 수정은 불가피했다.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청와대 내부 회의 메모에는 시신 인양에 가위표가, 그리고 정부 책임, 부담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라는 발언은, 메모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없이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청와대 내부 회의 메모를 둘러싸고, 박근혜 정부가 세월호 인양을 부담스러워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습니다”로 대체됐다.
이어 “세월호 사건이 정부를 공격하는 수단으로 변질됐다며 비판했던 여권 일각에선 ‘세금 도둑’, ‘교통사고’, 천문학적 비용 소모’라며 세월호 진상 조사와 인양 노력을 평가절하하기도 했습니다"라는 설명은, “여권 일각에서 제기됐던 이른바 ‘천문학적인 비용’ 문제나 또 다른 사고에 대한 우려 논란 등이 겹치면서 반년이 다 되도록 인양 여부는 결정되지 못했습니다”로 교체돼 ‘세금도둑’, ‘교통사고’ 등 논란이 일었던 단어들이 없어졌다.
또 “인양이 진척되지 못하고 표류하는 동안 정부는 지난해 9월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를 해산시켰습니다”라는 문구는 “인양이 진척되지 못하고 표류하는 동안 지난해 9월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는 1년 반 만에 해산됐습니다”로 바뀌어 ‘정부’의 책임을 언급하지 않는 방향으로 수정됐다.
이 같은 수정·삭제 지시는 부장의 데스킹이 끝난 토요일에서, 방송날인 일요일로 넘어가는 밤 사이 계속 이어졌다. 민실위는 보고서를 통해 “부장의 데스킹이 끝난 기사에 대해 국장이 단어 하나하나를 트집잡는 것은 비정상적 검열 행위이다. 더구나 그가 삭제를 요구한 단어들은 ‘진실’, ‘원인규명’ 같은 지극히 상식적인 단어들이었다”고 지적했다.
통상적으로 <시사매거진>은 아이템이 승인된 후에는 제작진이 작성한 원고가 차장과 부장의 데스킹을 거쳐 방송에 넘어가게 된다. 그러나 이번 세월호 편에서는 부장의 데스킹을 거친 후에도 국장이 직접적으로 개입한 것으로 전해졌다.
민실위는 <PD저널>과의 통화에서 “제작진들이 부장을 통해 ‘업무효율성은 물론 자율성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의견을 전달했다고 한다. 그러자 조 국장은 ‘논의의 과정이었다’, ‘소통의 간격이 있었던 것 같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진다“고 밝혔다.
조 국장은 지난 12일 <시사매거진> 방송과 관련해서도 부서원의 의견을 무시한 채 ‘탄핵’ 아이템을 축소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본래 <시사매거진>은 약 14분 분량의 세 가지 아이템으로 한 방송이 꾸려지지만, 중요한 사건이 있을 때는 한 가지 아이템을 통으로 다뤄왔다.
민실위 14일 보고서에 따르면 “‘시사매거진’ 부서원들은 ‘3개 모두 통으로 탄핵을 다루자’고 의견을 모았다. 그러나 조창호 시사제작국장은 특별한 이유도 밝히지 않고 ’일반 아이템 1개를 반드시 하라‘고 지시했다”고 전해진다. 12일 <시사매거진>에서는 결국 ’탄핵‘ 아이템 15분, ’5월 대선‘ 아이템 14분, '자살 브로커' 아이템이 12분 방송됐다
한편 조 국장은 지난 2월 김장겸 신임 사장이 부임하면서 시사제작국장에 임명됐다. 이전까지는 안광한 전 MBC 사장의 비서실장으로 활동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