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피디, 21세기 크리에이터를 만나다①] 내가 만든 이야기가 곧 채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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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낫미디어 스토리텔러 김사라·이나은

[인터뷰, 글: 최선영 이화여대 에코크리에이티브협동과정 대학원 특임교수]

이십세기 말부터 십수년간 텔레비전 PD라는 직업을 통해 수백편의 지상파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보람도 희열도 컸지만 제작비는 갈수록 쪼그라들었고, 촬영과 밤샘 편집에 투여한 시간과 시청률은 등가적이지 않았다. 게다가 6mm 카메라로 촬영과 연출, 편집까지 했던 나는 지금으로 보자면 1인 크리에이터였으나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촬영하고 연출한 프로그램에 대한 권리는 전무했다. 방송사 채널은 유한했고, 이들과의 포괄적 계약으로 모든 권리를 양도하지 않으면 내가 만든 프로그램을 보여줄 플랫폼이 없었다. 계약의 불합리함을 견딜 정신과 체력이 거의 바닥났을 즈음, PD직을 휴업하고 늦깎이로 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는 와중에 ‘텔레비전 방송’이라는 강산이 급변하는 것을 목격했다.

 

매우 짧은 시간에 MCN, OTT, 플랫폼이라는 생소한 실체들이 이 세계로 틈입했다. 이는 방송사 송출이라는 독점권이 무너진 사건으로 한 줄 요약할 수 있다. 시청자 습관의 변화도 크게 일어났다. 태어날 때부터 인터넷을 이용하고 초등학교 때부터 유튜브와 페이스북, 스마트폰에 익숙한 젊은 이용자들(audiences)은 지상파와 케이블 채널 구분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텔레비전 채널 충성도가 높았던 중장년층도 스마트폰으로 인터넷 동영상을 접하는 일이 빈번해지면서 새로운 텔레비전 환경에 자연스럽게 적응해가는 추세이다. 모바일 인터넷 환경에 익숙해진 이들은 자신의 취향을 탐색하고 누리는데 있어서 ‘제작’과 ‘향유’를 굳이 구분하지 않는다. 취미로, 재미로 각자 고유성을 가진 동영상 콘텐츠를 만들거나 온라인에 공유하는 이들은 크리에이터(creator)라는 새로운 직업을 개척하고 있는 중이다.


이 기획(칼럼)은 크리에이터라 통칭되는 새로운 직군의 창작자들을 만나 그들의 제작 세계에 대해 알아보고, 장차 방송과 도모할 수 있는 접점을 모색해보자는 취지로 시작했다. 구체적으로 스토리텔러, 웹드라마 PD, 브랜디드 콘텐츠 기획자, 채널 기획자 등 생소한 직업군들을 탐색하고자 한다. 어쩌면 이들에게서 PD직의 진화를 발견할 수 있을지 모르니 말이다.

 

 

첫 번째 이야기는 온라인 콘텐츠 제작 스타트업으로 웹드라마와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 분야에서 급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와이낫미디어(http://whynot.video/)의 크리에이터 김사라 작가, 이나은 PD로부터 시작한다. 두 사람은 온라인 조회수 1억 뷰 이상의 웹드라마를 쓴 25살 동갑내기 이야기꾼들이다.

▲ 이나은 PD, 스물다섯 살. 짤드라마 <숨이 멎다>(2016), <월간 공감>(2016), <전지적 짝사랑 시점 시즌 1,2,3>(일명 ‘전짝시’. 2016~2017) 글과 연출. ⓒ 와이낫미디어

온라인 콘텐츠라는 비교적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고 있다. 어떻게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이나은 PD : 독립제작사 콘텐츠사업실에 2년 전 인턴 에디터로 입사했다. 3-40대 남자 PD들이 주 구성원인 곳의 관리직이었다. 그때 업무는 10~20대 모델들이 나오는 콘텐츠를 카드뉴스 형태로 만드는 일이었다. 현재 우리 회사 대표님, 이사님들이 그 당시 피디들이었는데, 내가 만든 결과물을 신선하게 봐주셨다. 하지만 대부분 내가 엑셀만 하다 갈 아이로 생각했다고 하시더라(웃음). 이 분들이 마침 온라인 콘텐츠 회사를 만들 예정이니 방송하고 싶으면 같이 하자고 하셨다. 스스로 콘텐츠를 바로 만들 수 있다고 제안하셔서 끌렸다. 방송은 조연출을 오래해야 하는데, 그런 과정 없이 곧바로 만들어 볼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좋았다. 그렇게 와이낫미디어 창립멤버로 웹드라마 대본을 쓰고 연출하기 시작했다.

김사라 작가 : 대학교 때부터 만화페이지를 운영해 현재 8만 명 독자가 있는 개인 페이스북 페이지가 있는 현재 웹툰 작가이다. 작년 여름 페이스북을 통해 이나은 PD가 만든 ‘콬 TV’(와이낫미디어 온라인 채널)의 <숨이 멎다>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너무 오글거렸지만, 대학생 과제 영상은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프로페셔널이 만든 것 같지도 않았다. ‘이 사람들은 이제 막 시작해서 엄청 키우려나 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바로 페이스북으로 응원 메시지를 보냈다. 백수생활 3개월째에 돈도 떨어졌을 때다. 그리고 작가 포지션으로 기획하는 업무를 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인생을 설계해서 사는 스타일이 아니라 재미있어 보였다. 작년 9월 입사해 현재 <오피스워치>와 영업상 비밀인 웹드라마 한편을 동시에 집필하고 있다.

 

이나은PD는 기존 방송사 PD들의 연차나 경력과 비교해보면 짧은 시간동안 꽤 많은 작품을 만든 것 같다. 김사라 작가도 동시다발적인 다작을 하고 있다. 게다가 온라인에서 꽤 성공한 작품을 만들었다. 작년에 만든 작품들로만 누적 조회수 1억뷰를 넘었다고 들었다. 스스로 대표작을 꼽는다면?

이나은 PD : <전짝시> 시즌 2에서 등장인물인 조기성과 양혜지가 처음 만나는 에피소드로 가장 유명해진 콘텐츠다. 내가 실제로 겪었던 것을 각색한 거라 애착이 있는데 잘되어서 좋다. 610만 뷰가 넘어 웹드라마 중 가장 높은 조회수를 기록했다고 알고 있다. 페이스북 ‘좋아요’도 15만 이상이다. 2~30대 페이스북 이용자 70~80%가 본 셈이다. <전짝시>를 모르는 사람도 아는 콘텐츠가 된 것 같다.

김사라 작가 : <주정뱅이>가 첫 작품이다. 대본을 한 번도 써 본적이 없으니까 <전짝시>를 레퍼런스로 해서 썼다. 1편 ‘여우’편이 제일 좋다. 평소에 여우란 소재를 좋아하고, 여우같은 여자 관찰하는 것도 재미있고 분석하는 것도 좋아한다. 그걸 영상으로 만들어내고, 댓글 반응을 보면서 ‘음...좋군~ 나 되게 잘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걸 계기로 용기를 얻어서 다른 작품을 계속 쓸 수 있게 된 것 같다.

 

▲ <사당보다 먼 의정부보다 가까운>은 김사라 작가가 쓴 웹드라마로 스물일곱 번을 멈추고 한 번 방향을 바꾸어야 도착할 수 있는, 사당보다 멀고 의정부보다 가까운 사이인 남녀가 직장에서 썸타는 이야기이다. ⓒ 와이낫미디어

 

기존 방송PD나 작가의 경우 짧더라도 일정 기간의 도제 시스템을 거쳐 정식PD나 작가가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두 사람은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다고 생각하나?

김사라 작가 : 나는 정극은 써보지도 않았고 전공도 아니다. 처음 써 본 웹드라마였는데, 아마 SNS를 폐인처럼 해서 쓸 수 있었던 것 같다. 팬픽도 써봤고. 이런 쪽의 사람들 코드를 알고 있는 것 같다. 굳이 비교한다면, TV프로그램이나 영화는 두고두고 회자되는 반면 모바일은 시간이 지나면 스르륵 사라진다고도 볼 수 있다. 한 커트 한 커트 장인정신으로 다듬는 거 보다는 좀 부족한 걸 이용해서 슥 찍었는데 효과가 좋다면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피디를 했던 분들이 기획을 도와주기 때문에 우리처럼 어린 창작자들이) 각자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과 응원을 해주는 게 큰 힘이 된다. 일이 꼬이면 풀어주려고 실마리도 던져준다.

이나은 PD : 우리 세대는 모바일로 보고, 보다가 끄고, 드라마도 실시간으로 보기보다 짤로 본다. 짧은 콘텐츠나 짧게 보는 것에 너무 익숙하다. 이런 것에 익숙하고 잘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강점을 살려볼까, 라는 생각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전짝시>를 제대로 성공시켜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 대표님이 “짧은 콘텐츠에서 1등 해보는 게 어때?”라는 말씀을 해주셨는데 한 편 한 편 만들 때 마다 “어떻게 그 짧은 길이에 다 넣냐, 기획이 너무 신선하다. 나는 잘 안 된다”고 하시면서 격려해주셨다. 내가 만드는 콘텐츠는 핸드폰으로 출퇴근 시간에 짬짬이 보는, 일상이 더 스며든 느낌이라 바로 제작할 수 있었다. 방송은 더 멀고 준비가 필요한 느낌이지만 웹은 그렇지 않았다.

 

PD는 프로그램 디렉터의 의미가 강하다. 웹드라마 창작자들에게 PD나 작가가 맞는 명칭일까?

이나은 PD : 작년까지는 콘텐츠 매니저였다. 새로운 분야니까 새로운 명칭이 필요하다고 해서. 직함이 그렇게 중요한지 몰랐는데 현장에서 ‘매니저님’ 하니까 혼란이 생겼다. 배우 매니저는 아니니까. 사람들이 매니저, PD, 작가, 연출 등으로 다 다르게 불렀지만, 다 나를 부르는 거였다. 결국 제작 스태프와의 소통하는 것이 헷갈려서 회사와 상의 끝에 기존 방송가에서 하던 것처럼 연출을 하니까 PD로 정리했다. 개인적으로는 이름 뒤에 무엇이라고 불리든 상관없다. 그보다는 ‘웹드라마 하면 이나은’ 할 정도로 내 이름이 브랜드로 알려졌으면 좋겠다.

김사라 작가 : 나는 페이스북 페이지 타이틀에 장난이지만 자랑스럽게 ‘예술가’라고 해놓았다. 그림 그리는 사람도 아닌데 예술가로 불리면 사람들이 꼴불견이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한다. 그래서 공식적으로 작가 타이틀 받고 확실해져서 좋다. 원래 웹툰 그릴 때부터 작가 소리를 들어서 익숙하고 좋다. 실제로 시나리오 집필에만 집중하고 있고.

 

제작은 보통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궁금하다. 특히 이나은 PD는 촬영과 편집을 거의 할 줄 모른다고 들었고, 김사라 작가는 엄청나게 빨리 쓴다고 들었다. 제작 방식이나 서로 스타일이 어떤지 궁금하다.

김사라 작가 : 하루에 다섯 편을 쓴 적이 있다. 물론 수정을 했지만 꽂히면 후루룩 쓰는 편이다. 하루 종일 그것만 쓴다. 지금은 시리즈 두 개를 동시 집필하고 있다. 분량은 정해진 경계가 없다. “언제까지 가능하세요?” 하면 “그냥 빨리 써보죠” 한다. 그날 다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회사에서 주욱 쓰게 된다. 최근 기획한 웹드라마 시리즈는 2~3주 걸렸는데, 다른 작품은 대략 1주일 정도 걸린다. 물론 초고를 계속 수정하긴 한다.

이나은 PD : 사라작가가 오기 전에는 내가 왕이었다. 가장 빨랐다. 자판기였다. <전짝시>는 일주일에 4편을 써서 하루에 촬영하는 패턴이라 빠르다는 자부심이 있었는데, 사라작가가 들어와서 이 기록을 다 부숴버렸다(웃음). 지금까지 <월간공감> 3편, <전짝시> 70여 편, <숨이 멎다> 15편 등을 쓰고 연출했다. <전짝시>는 (촬영이나 편집을 잘 할 줄 몰라서) 원신 원커트 포맷으로 집필하고 연출했는데 이 포맷으로 벌써 70편 넘게 만들었다. 원테이크로 훌렁 대충 찍은 것처럼 보여도 나름 연구해서 (블로킹을 다 계산해) 만들었다. 원테이크 촬영 때문에 옛날 영화를 많이 봤다. 스필버그 영화에서 영감을 많이 얻었다.

 

웹드라마 포맷은 팬 내지는 시청자의 공감 또는 반응이 중요할 것 같다. 댓글이나 조회수가 제작에 영향을 미치는가? 이로 인해 제작에 영향을 받는 것은 없나?

김사라 작가 : 웹툰 페이지를 시작했던 대학교 1학년 때는 댓글 하나하나를 다 챙겨보았다. 이때 악플을 보고 셀프디스 했다. 그런데 어차피 올린 사람들은 다 잊어버린다. 어느날부터 SNS는 가벼운 소통의 장이니 신경 안써도 되겠다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악플이 달리면 노이즈 마케팅도 하고, 이런 생각을 할 수 있겠구나, 라고 받아들인다. 좋은 공부 한다고 생각한다. 오늘 공개된 <오피스워치>에 ‘비현실적이네’라는 댓글 달렸던데 보는 사람 입장에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댓글보다 내가 쓴 작품을 세세히 기억해주고 지지해주는 댓글에 집중하게 된다. <사당보다...> 시즌 1에 나오는 ‘쪽지’ 신을 다 기억하고 이야기를 유추한 유투브 댓글이 기억에 남는다. 사람들이 잘 모를 줄 알고 간단하게 넣었던 장면에 대해 댓글 단 사람이 우리 연출팀이 느꼈던 그 즐거움을 느꼈다는 것이 신기했다. 이제는 세세하게 짚어주는 댓글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이나은 PD : 사라 작가는 페이스북 페이지가 있어서 소통을 많이 해왔지만, 나는 <전짝시> 시즌2 때 페이지를 오픈했다. 그 전엔 수줍어 하다가. 페이스북 댓글과 메시지를 보니 바로 반응을 볼 수 있었다. 시즌 3까지 모든 편을 챙겨보는 골수팬도 생겨났다. 스쳐지나가는 팬들도 많지만, 나는 댓글 모두가 고마워서 하나하나 다 보고 ‘좋아요’를 눌러준다. 친구신청도 많아졌고 고마움도 너무 큰데, 살짝 부담이 되기도 한다. ‘다음 시즌은 어떡하지?’라는. 사실 시즌3 이후에 사춘기가 왔다. 시즌3 끝날 때 시즌 4는 언제 나오냐는 이야기 나오니까 좋으면서도 마음이 무거웠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진지하게 얘기하는 분들도 계시고, 시즌을 거듭할수록 실망했다는 사람도 생겼고, 전에는 좋았는데 점점 별로라고 하는 댓글만 계속 기억에 남았다. 무시할 수도 있는 일에 스스로에 대한 고민이 계속된 거다. ‘더 만족시켜야 해, 더 잘해야 해’ 같이 집착해서 힘들었다. 그때 건방지게 ‘내가 <전짝시>만 만드는 사람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에라 모르겠다, 만화책 들고 출근하면서 ‘나 일 안 할 거예요!’ 파업선언을 했다. 그렇게 한 달 쯤 지나니까 다시 미친 듯이 만들고 싶어졌다. 내가 미쳤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만든 것이 <전짝시> 시즌 3.5다. 이제는 지나고 나니 너무 좋다. 악플도 좋다.

▲ 와이낫미디어는 새로운 세대를 위한 콘텐츠 프랜차이즈로 20대를 위한 모바일 방송사를 표방하고 있다. ⓒ 와이낫미디어

와이낫미디어는 20대를 주요 타깃으로 선정하고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작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타깃을 생각하고 쓰거나 만드나?

김사라 작가 : 타깃을 정하기보다 내 이야기를 하는 편이다. 내 이야기를 해서 그 타겟이 내 이야기를 좋아하면 내가 새로운 기준이 되는 거니까. 어릴 때부터 어버지께서 비교하지 말고 100점 맞으면 된다, 전교 1등 말고, 이런 말을 해주셨다. 본질적인 내 시나리오에 집중해서 제 이야기를 하면 어차피 제가 20대이기 때문에 공감하는 20대가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이나은 PD : 나는 타깃에 신경 쓰는 편이다. 댓글, ‘좋아요’, 조회수 다 챙겨보는 편이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걸 만들고 싶다. 공감 받는 걸 좋아한다. ‘왜 (조회수가) 안 나왔지? 이렇게 해야 많이 보려나?’ 이런저런 고민을 한다. 타깃을 세워놓는데, 내가 타깃이다(웃음). 나와의 싸움이다. 내가 쓰고 연출도 하니까 쓰면서 셀프 회의를 한다. ‘너 이거 찍을 수 있겠니? 욕심 아니니? 양보해야 하지 않겠니? 이거 재밌니? 너 같으면 보겠니?’라고. 현장에서의 고통도 내 몫이라 내가 싼 똥은 내가 치워야 한다. 내가 보고 싶어 할 만하면 많은 사람이 보겠지, 생각하면서 대본을 쓴다. 헐렁헐렁하게 쓰는 것처럼 보여도 애착을 갖고 여러 번 보고 또 수정한다. 그래서 고통 받는다. 댓글 다 보면서 상처 받고 우울해하기도 하면서. 대본 쓸 때 기분도 여러 번 바뀐다.

 

현실적인 이야기를 해보자. 기존 방송 만드는 창작자들도 협찬이나 PPL을 이야기에 녹여내는 포맷과 이야기 방식에 고민을 많이 한다. 웹드라마 또한 브랜디드 콘텐츠 형식으로 제작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이럴 때 이야기꾼으로서 창작자로서 돌파구를 찾는 편인가?

김사라 작가 : 전에 다니던 회사가 광고회사였기 때문에 광고주에 대해서 조금 알고 있다. 대본을 이렇게 쓰면 피드백 어떻게 올지 겸허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예를 들면 “편의점에서 만들었다고? 정말 맛있다.” 이런 대사를 넣었을 때 회사 사람들 모두 놀랐던 적이 있다. 이거 안 넣으면 통과 안된다는 걸 잘 아니까 난 괜찮았다. 어떻게 녹여야 사람들이 거부감이 없을까에 대한 부담이 있을 뿐이다.

이나은 PD : 나 스스로 놀란 게 작년까진 '내 작품에 어떻게 (PPL을) 넣지?' 하는 생각이 강했다. 그런데 올해는 다르다. 애사심이 없을 줄 알았는데 회사를 너무 좋아하게 되니까 회사가 어떻게 하면 수익을 더 낼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되고 내가 먼저 브랜디드 콘텐츠를 쓰겠다고 했다. 대표님이 그렇게까지 안해도 되니 일을 즐겁게 하라고 해도 걱정이 됐다. 우리 회사도 돈 벌어야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기쁜 마음으로 쓴다. 이건 내 작품이 아니라 회사 것이고 회사에 있는 동안에는 회사를 위해서 일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인터뷰를 하다 보니 회사에 대한 애정, 일에 대한 자신감이 넘쳐 보인다. 무엇이 이토록 두 사람을 경쾌하게 만들었는지 궁금하다. 나는 시청률 때문에 매주 전전긍긍하면서 프로그램을 만든 세대이다. 시청률이 안나오면 방송 다음날 초상집 분위기였다. 웹드라마의 경우 반응이 시큰둥한 실패하는 콘텐츠도 있을 텐데, 이럴 때 오는 압박은 없나? 지상파나 기존 방송사와 다른 제작 분위기가 있다면?

이나은 PD : 우리 회사는 슈퍼셀(supercell) 운영을 모티브로 하는데, 이 회사는 프로젝트에 실패하면 잘했던 팀에서 돈을 대는 실패 축하파티 한다. 잘 나오든 안 나오든 팀 문화가 있는 것이다. 우리 회사도 그렇다. 다들 기쁘게 임하고 스스로 만족하게 마무리하면 된다. 회사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고통 받으면서 일하는 거다. 야근이 계속되거나 일정이 너무 타이트하면 일정을 미루라고 배려해준다. 책임이 있는 자유가 있는 분위기다. “저 사람은 왜 일을 안하지?”, “저 사람은 왜 일을 많이 하지?”같은 생각을 할 수 없다. 각자 자유롭게 일을 하고 맡은 바를 해내는 분위기다.

김사라 작가 : 우리 회사의 가장 내세울 건 칼퇴?(웃음) 나는 편집을 안하니 10시~11시 사이 출근하고 6시반 이후 자율 퇴근한다. 제작 분위기는 나은 PD 말대로다. 이번 주 업로드 한 <오피스워치> 에피소드2 조회수가 예상보다 좀 덜 나왔다. 나는 ‘잘 안 나왔구나. 쌓이다 보면 늘어나겠지’ 하는데, 대표님이나 이사님들이 계속 위로하면서 신경을 쓴다. 한번은 대본 쓰다 잘 안 풀려 시나리오 책을 잡고 공부하는 척하다 말았는데 대표님이 “공부 너무 많이 하지마. 공부 안 하는 게 너의 메리트가 될 거야”라고 하시더라. “사실 어려워서 덮었습니다” 했더니 엄청 웃으셨다. 개개인의 장점을 살려주고 존중해주는 문화가 가장 좋다.

 

결국 ‘제작문화’가 차이를 만들어낸다는 이야기일 듯 싶다. 사실, 두 사람이 만약 방송사나 제작사에 있었다면 나이나 경험으로 볼 때 조연출일 것 같다. 최근 방송사 조연출의 안타까운 죽음을 접하기도 했는데, 만약 여러분이 거기서 일하고 있었다면 이렇게 한가롭게 인터뷰하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기존 방송, 방송PD에 대한 생각이 궁금하다.

이나은 PD : 방송PD라고 하면 권위적이라고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다. <혼술남녀> 조연출 뉴스 관련 댓글을 보니 당연한 관행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아직까지 많은 사람들이 인식만 했을 뿐 바뀌진 않고 있다. 여전히 그들만의 세상이다. 하지만 이번에 바뀌지 않을까. 웹 시장도 성장하고 있으니 지금까지 닫혀있던 방송 쪽 문화가 한번 열리고 섞이면 그런 목소리도 나올 거 같다. 우리 세대에서 ‘오,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바뀔 것 같다. 지금 10대들만해도 20대인 우리와 다르다. 유튜브로만 영상을 본다. 영상 소비가 플랫폼 중심으로 바뀌면 결국 기존 방송도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방송 PD들도 최근 모바일이나 웹으로의 이동이 많아서 이런 흐름이 순환되면 섞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김사라 작가 : 인터넷 유행어 감별법이라고 가장 최신 유행어는 커뮤니티에서 나오고, 그 다음 트위터, 그 다음 페이스북, 그 다음 카카오톡, 그 다음이 방송이라는 말이 있다. 방송에 나온 유행어는 벌써 한 차례 휩쓸고 지나간 것이고 뉴스에 나오면 그건 이미 고고학이다(웃음). 어릴 때부터 PD나 작가를 하고 싶은 막연한 마음은 있었지만 선배들이 공채 떨어지는 거 보면서 방송사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방송사는 크니까 개인의 장점으로 뽑긴 어려워서 수능처럼 사람을 뽑으니 점점 인재를 놓치지는 아닐까 싶다. 만약 방송사나 제작사에서 같이 일하자는 제안이 온다면 글은 쓸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기획회의에서 (데스크의) 피드백을 견딜 수 있을까? 어쩐지 이해 못 받을 것 같다. 재미없다 해버리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존 방송 프로그램에서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협업하고 싶은 프로그램이나 만나고 싶은 방송창작자가 있다면?

이나은 PD : 여운혁 CP님, 이우정 작가님. 너무 만나 뵙고 싶은데 어떻게 연락해야 될지 모르겠다. 이건 운명의 데스티니인데. PD저널은 PD님들이 많이 보신다니 불러주시면 달려가 이야기하고 싶다. 또 박보검씨와 3분 웹드라마를 만들고 싶다. 내가 긴 호흡의 드라마를 만들기 보다, 큰 배우들을 짧은 웹 드라마쪽으로 들어오게 하고 싶다. 이 분야도 성장가능성이 있고 인기가 많음을 증명하고 싶다. 그리고 진심으로 MBC ‘라디오 스타’ 출연하고 싶다. 20대에게 인기있는 ‘에피소드의 여왕’으로 <전짝시> 배우들과 한 팀으로 출연해 ‘전지적 일반인 이야기’를 하고 싶다. 내가 하는 일도 기존 방송계 PD님들께는 생소할 것이다. 10~20대에 핫한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얘기하고 싶다. 이렇게 웹과 지상파에서 서로서로 등장해주면 좋을 거 같다.

김사라 작가 : <무한도전> 김태호 PD님. 히어로가 되기엔 능력이 2% 부족한 사람들을 설정하고 김태호 PD님이 맛있는 거를 주되 ‘단 미션을 클리어해야 줍니다’라고 하면서 어이없는 도전을 하게 만들고 싶다. 약간 모자라되, 비범한 능력을 각자에게 주고 추격전을 하는 웹드라마 형식의 기획.

이나은 PD : (<무한도전>에) 병풍 역할이라도 나올 수 있다면!

김사라 작가 : 내 성격이 밝으면 ‘언제든 불러주십시오’ 할텐데 폐쇄적이라 못 만날거다. 포기!

이나은 PD : 난 언제든 갈 수 있다. 우리만의 재밌는 상상!

김사라 작가 : 아 재밌있겠다, 재미있었다.

이나은 PD : 벌써 <무한도전> 출연하고 온 줄...

김사라 작가 : 나도!

 

김태호 PD님의 가호가 언젠가 여러분과 꼭 함께 하기를 바라면서, 앞으로 하고 싶은 일과 계획이 있다면?

이나은 PD : 우리 회사의 모토가 ‘20대들이 만들고 20대가 공감하는 콘텐츠를 만들자’인데 나 또한 20대를 위한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 처음에 이 일을 시작할 때 친구들과 부모님을 이해시키는데 어려웠다. 막연히 영상을 만들고 싶다니까 “방송국 들어가니?”라고 물었다. 온라인 방송한다니까 크게 실망하셨다. 온라인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아서. 하지만 지금은 많이 이해해주신다. 요즘은 지상파 드라마 하고 싶다는 생각이나 긴 호흡의 작품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든다. 짧은 이야기를 잘하고 싶어서 더 파헤쳐 보려고 한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사랑이야기’이다. 지금은 남녀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가족, 친구와의 사랑에 대해 쓰고 싶다. 옆에서 겪고 있는 일들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다. 상상력이 풍부하진 않아서 판타지는 잘 안 맞고 오직 사랑이야기를 하고 싶을 뿐이다.

김사라 작가 : 인생에 큰 계획이 없다. 아마도 고양이를 키울 것이고 자폐증인 동생 얘기를 쓸 것 같다. 원대한 계획은 동생마케팅으로 본격 동생팔이 콘텐츠(웃음)를 만드는 거다. 어릴 때부터 자폐는 나쁜 게 아니라는 엄마의 세뇌를 받았다. 나는 동생이 자폐인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한다. 현재 내가 그리고 있는 웹툰 <자폐특공대>도 일상에서 일어나는 유쾌한 이야기다. 이 이야기를 영상화하는 것이 목표고, 구체적으로는 시트콤으로 만들고 싶다. 자폐라고 다 불행한 건 아닌, 자폐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깨는 콘텐츠를 만들어 보고 싶다. 그리고 돈 많이 벌고 싶다. 동생이 생산적인 활동을 해야 하는데 위험한 세상이라 부모님 걱정이 많다. 그림에 소질이 있어서 시골에 갤러리 카페를 하나 해주고 싶다.

이들을 만나보니 콘텐츠를 만들어 유통하고 공유한다는 것에 대한 의미를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이들 작품은 특정 채널에서 방송되는 것이 아니라, 만든 그 작품 자체가 온라인상에서 브랜드이고 채널이다. 보고 싶으면 검색하면 된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고리타분하지만 만드는 이와 보는 이가 모두 행복한 콘텐츠는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한때 벽돌공처럼 매주 찍어내는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스스로 행복한 프로그램보다 시청률이 나올 ‘센 아이템’을 찾는데 급급했던 적이 많았다. 힘든 것을 참고 견디면서 보람을 추구했던 나와 달리, 만들면서 행복을 잃지 않으려는 이들은 달라보인다. 고민의 강도는 같았을지 몰라도 고민의 질은 확실히 다르다. 나는 잘 보이려는 프로그램을 만들려했다. 재미는 있었지만 완전히 내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들은 스스로의 이야기에 진정성까지 담으려 노력하고 있다.

방송기술 환경 변화에 대한 이해는 멀리 있지 않은 것 같다. 역설적으로, 더 인간적이고 내밀한 우리의 속마음 하나하나에 귀 기울이도록 만드는 힘이 무엇인지 알아가는 것으로부터 다시 시작되어야 할 것 같다. 콘텐츠의 힘은 사람에서 나오고 또 사람을 통해 더 커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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