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간 보장 못할 산업이라면, 없어져야 하는 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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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시간 보장 못할 산업이라면, 없어져야 하는 산업”
[라운드 테이블] 고 이한빛 PD를 잊지 않겠습니다-드라마 제작현장에서 생각하고 실천할 일들
  • 이혜승 기자
  • 승인 2017.06.28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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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PD연합회는 최근 '고 이한빛 PD를 잊지 않겠습니다-드라마 제작현장에서 생각하고 실천할 일들'이라는 주제로 특별좌담을 가졌다.

좌담은 이은규 전 MBC 드라마PD의 사회로 진행됐다. 좌담에는 표준근로계약서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는 상황에서 영화 산업 환경에 빗대어 드라마 제작 현장에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안병호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위원장, 고 이한빛 PD와 관련한 대책위에서 활동해온 전진희 청년유니온 기획팀장, 6년차 조연출이 된 조영민 SBS 드라마PD, KBS 드라마PD협회 간사를 맡고 있는 지병현 KBS 드라마PD, 한국TV드라마PD협회장을 맡고 있는 홍창욱 SBS 드라마PD가 함께 했다. <편집자주>

▲ 한국PD연합회가 '고 이한빛 PD를 잊지 않겠습니다-드라마 제작현장에서 생각하고 실천할 일들'이라는 주제로 특별좌담을 가지고 있다. ⓒPD저널

이은규 PD연합회라고 하는 곳은 PD들의 입장에서 이 사안을 바라보고, PD들의 포지션이 어떻게 돼야 할 것인지를 논의하는 자리라 대책위, 영화노조와는 입장이 다를 수 있다. 또 일반 시민들이 바라보는 것에 대해 PD로서 입장을 표현하는 것이 쉽지 않은 부분이 있어 어려운 자리일 수 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대책위가 유족들의 가슴 아픈 그런 것들을 잘 끌어안아서 넓은 의미의 성과를 이뤄놓은 상황에서, 작지만 한번쯤 PD들이 발언하고 의견표명도 하면 좋을 것 같다.

겉으로 보기에는 PD 대 개인, 회사의 간부 대 스태프의 갈등 이런 양상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감독 대 스태프의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또 아무리 둘러봐도 문제를 해결해야겠다고 마음먹고 나설 수 있는 사람은 PD밖에 없지 않은가 싶다.

CJ E&M에서 경영진이 적극적으로 나서 일부가 개선된다 해도, 고 이한빛 PD가 달라졌으면 했던 게 꼭 CJ E&M의 일은 아닐 거다. 전체적으로 그런 처지에 있는 사람들, 드라마 스태프들의 처지와 형편이 나아지는 걸 전제로 놓고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PD들 입장에서 이 사안을 바라보고, CJ E&M에서 제안하고 변화하겠다고 한 것들이 지상파 방송 3사 입장에서는 시사점이 없는지 살펴보려고 한다.

전진희 청년유니온 기획팀장이 먼저 객관적으로 상황 정리를 해주시면 좋겠다.

전진희 대책위에서 전체 간사 역할을 하고 있다. 고 이한빛 PD가 <혼술남녀>에서 신입 조연출 일을 하고, 입사한 지 6개월 만에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마지막 촬영 현장에 나타나지 않았고 실종됐다. 드라마 종방 다음날 돌아가신 걸 가족들이 발견했다. 직후에 고 이한빛 PD가 남긴 유서가 발견됐다. 유서 내용은, 본인의 노동 강도보다 오히려 괴로웠던 게 다른 사람들의 노동을 착취해야 하는 당사자 역할이었다는 지점이다.

가족들이 맨 처음 회사에게 공식 면담을 요청했다. 회사에서 논의를 시작하는 과정에서 두세 차례 공문이 오고갔는데, 그 과정에서 회사가 '고 이한빛 PD가 게을렀다'는 등 개인의 잘못으로 몰아갔다. 이 죽음이 회사와 무관하다는 게 최초 주장이었다. 그런데 회사가 증언하는 데에 사용한 내용이 이제까지 가족이 알던 고 이한빛 PD의 모습과는 상반됐다. 그래서 청년유니온이 같이 사건조사를 진행했다.

현장에서 일한 스태프들의 카톡 내용을 보다보니 고 이한빛 PD가 강노동에 잠을 자지 못했다. 또 촬영이 진행되던 도중 촬영팀이 교체되면서 당장 외주 프로덕션에서 일했던 계약직 사람들이 교체되고, 그 과정에서 임금을 다시 토해내야 하는, 생계가 위협받는 상황이었다. 고 이한빛 PD가 이런 걸로 괴로웠던 걸 알았고, 사건에 대한 보고서를 만들어서 돌아간 지 6개월 만에 세상에 고 이한빛 PD의 일을 알리게 됐다.

이후 회사와 공식면담을 진행해 고 이한빛 PD의 죽음이 개인 책임이 아니라 사회적 죽음이고, 제작 현장 문제라는 데에 CJ E&M이 동의했다. 이후 고 이한빛 PD의 명예회복과 CJ E&M 내부 개선, 그리고 CJ E&M의 모든 채널에 있는 방송 제작환경에 대한 개선안까지 내놓은 상황이다. 이 경과를 올해 말, 내년 초에 함께 이행점검 하는 것을 회사와 논의하고 있다.(▷관련기사 ‘CJ E&M, 故이한빛 PD 사망 공식사과...책임자 징계와 제작환경 개선 약속’)

▲ CJ E&M(대표이사: 김성수)이 tvN 드라마 <혼술남녀>의 고 이한빛 PD 사망 사건에 대해 공식적인 사과와 함께 책임자 징계조치, 회사 차원의 추모식 등의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약속했다. ⓒtvN ‘혼술남녀‘ 신입 조연출 사망사건 대책위원회

이은규 다른 분들은 개인적으로 어떤 생각이 들었나.

지병현 마음이 안 좋았다. 동료들과도 이야기했는데, 제일 착한 친구들이 제일 마음 고생이 심했을 거다. 그렇다고 운이 좋게 어쩌다보니 적응한 조연출 분들이 못됐다는 얘기를 하는 건 아니고, 마음이 착할수록 힘든 환경에서 일을 해야 하는 것 같다. 어찌됐든 노동 강도나 이런 게 시간이 좀 흘러서 우리는 당연시하는 게 없잖아 있다. 어떤 면으로 보면 인간의 한계까지 내몰리는 경우도 종종 보이기도 하고, 그게 일에 대한 보람으로 치환되고 하는데 그렇게만 볼 수 없는 면도 있다.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노동권이 열악하다보면 또 누군가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는 점에 대해 앞으로 생각해봐야 하는 것 아닌가. 이런 상황이 또 발생하지 않게 노력하는 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인 것 같다.

조영민 처음 기사를 통해 내용을 접하고, 이 친구가 이렇게 된 게 사실 우리랑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디테일한 부분은 많이 다를 수 있지만, 드라마를 만드는 현장이고 방송국의 문화 같은 것이 크게 다르지 않은데 우리도 일어날 수 있었던 일인 것 같다. 동료들끼리 만나서도 그런 얘기를 했다. 우리가 고 이한빛 PD와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 않아서, 개인적으로 아는 친구도 있더라. 많이 안타까웠다. 이렇게까지 되기 전에 막아줄 수 있는 사람이나 장치가 없었던 게 너무 아쉽다.

홍창욱 CJ E&M의 특별한 경우가 작용하고 있기도 하다. 가장 컸던 게 스태프들에게 가서 돈을 받아오라고 했다고 하던데, 그게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다른 방송사는 그렇게는 안 한다.

지병현 어떻게 된 건지 의문이긴 하다. 돈 문제는 아무리 경력이 있는 제가 하게 되더라도 치명적으로 마음이 아플 문제다. 누구에게 이미 줬던 돈을 다시 받아오라는 건, 그 개인과 직접 대면하는 일이다. 보통은 분리돼있긴 하다. 현장에서 서로 살을 맞대고 정이 붙는 사이니까.

전진희 고 이한빛 PD가 그 일을 직접적으로 했다고 하긴 어렵다. 간접적으로 했다. 스태프가 교체되는 과정에서 돈을 환수하는 업무를 하는 분은 따로 있었고, 그걸 보조하는 역할이 고 이한빛 PD의 역할이었다고 보는 게 맞겠다. 하지만 같이 일한 사람이 잘려나가는 걸 간접적으로 경험한 거다.

또 정규직 PD였기 때문에 현장에서 나름 특권이 있었던 것에 괴로워한 것 같다. 일례로 회식 자리같은 곳에서 어떤 외주 감독이 고 이한빛 PD에게는 욕설만 하고 옆에 비정규직 스태프에게는 주먹질을 했다고 한다. 이런 것들을 본인이 보는 게 괴로웠던 거다.

이은규 이제 가장 진솔하면서도 가장 중요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하루 20시간 넘는 노동에도 두세 시간 자고 난 후 노동 현장으로 다시 불러내고, 우리가 원하는 결과를 위해 독촉하고. 이런 게 경멸했던 삶이라서, 단지 자기에게 부과된 일이 아니라 끌고 가는 역할을 해야 하니까, 자기 꿈은 드라마PD인데 이걸 버리면 꿈이 없어지고, 이걸 이어가면 경멸스러운 삶이 되는 것. 그래서 절망스러웠던 것 같다. 이건 지상파 미니시리즈에서도 이런 상황이 이어지는 것 같다.

밤샘노동이나 열악한 상황은 이전에는 영화가 드라마 못지않게 심하지 않았나?

안병호 드라마가 더 낫다고 생각한 시절이 잠깐 있었다. 몇 시간 더 일하면 오버차지가 생긴다는 소문도 있었다. 또 현장 촬영팀을 가면 몇 시간까지는 안 할 거라는 소문이 있었다. 이후 케이블이 생기면서 드라마가 엄청 늘어나고, 제작 장비도 필름에서 디지털이 되다보니 드라마와 영화 구분이 없어져서 스태프들이 드라마 현장에 대거 투입됐다. 그때 드라마 찍는 게 참 고되다는 것을 느꼈다. 드라마는 일단 방송이 시작되면 찍기 바쁘니까 잘 시간조차도 없더라. 드라마를 한번하고 드라마는 안 하는 게 정신 건강과 몸검강에 낫겠다고 생각했다.

이은규 고 이한빛 PD는 본인이 잠을 못자서 힘들고, 건강이 안받쳐줘서 PD를 못한다는 게 아니라, 본인이 보기에 선배들은 그럭저럭 견뎌서 PD가 되고, 또 PD와 작가들은 끝나고 휴가를 가는데 스태프들은 2~3일 쉬면 다시 밤샘을 시작해야 하니까. 이런 모습을 보면서 절망감이 더 컸던 것 같다.

선배로서의 책임이 막중하다. 그동안 과로사한 사람이 수십 명 있었을 거다. 숨겨진 과로사도 많이 있을 거고. 하지만 한 번도 스태프들이 공개적으로 멘트를 해본 적이 없지 않나. 유일하게 톱스타들만 발언을 하고 기사가 났더라. 매년 몇 건씩 있다. ‘너무 힘들었다’, ‘링거 투혼’. ‘이런 시스템 바꿔주세요’ 같은 시상식 대사 등등.

한국콘텐츠진흥원 자료에 따르면 평균 근무시간이 15.7시간이라고 하더라. 드라마 미니시리즈만 계산한 게 아니라 일일드라마, 주말드라마까지. 그럼 미니시리즈만 보면, 공식 자료는 없지만 19시간, 20시간도 더 될 거다.

▲ 한국PD연합회가 '고 이한빛 PD를 잊지 않겠습니다-드라마 제작현장에서 생각하고 실천할 일들'이라는 주제로 특별좌담을 가지고 있다. ⓒPD저널

전진희 <혼술남녀>는 평균 20시간, 19.8시간 정도, 최대 23시간까지도 일했다고 하더라.

고인이 돌아가신 이유가 여러 가지가 있다. 하나는 <혼술남녀>의 특수성이다. <혼술남녀>는 예능국에서 만드는 첫 번째 드라마였다. 그런 지점에서 부족한 점이 있었고 이건 특수성이다.

두 번째는 CJ E&M이 가진 특수한 조직문화 때문이다. 이 지점 때문에, 이걸 드라마 전체 문제로 확대해서 보는 게 맞는가에 대해서도 토론회를 했다. 그래서 제보센터를 운영했다. 그때 이해하고 정리한 건, <혼술남녀>가 CJ E&M의 특성도 가지고 있긴 하지만, 한국 사회 방송업계가 가진 공통성이 분명이 있다는 거였다.

여기서 핵심이 세 가지가 있다. 하나는 노동시간. 분석 결과 보통 19시간 이상 근무한다. 또 다른 하나는 조직문화다. 실제 제보내용을 받아보니 성폭력, 이런 문제도 있지만 언어폭력이 일상적으로 발생한다는 게 공통적인 제보내용이다. 세 번째는 휴일이 없다든가, 임금체불의 경험이 있다는 거다. 보통 경력이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임금체불 경험이 있더라.

홍창욱 SBS 같은 경우는 45일 전에는 촬영 나가지 말라고 한다. 돈이 들고 스태프 계약을 해야 하니까. 90일 전에 나가면 달별로, 월별로 나가니까 제작비가 많이 든다. 그래서 가급적 45일로 한다. 그럼 제작사에서 그렇게 하고, 대본은 늦게 나오고, 그러면 밤샘노동이 길어지고 이게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왜 3일씩 밤을 새냐고 하는데 모든 게 연관돼있다. 그래서 쉽게 바뀌지가 않는다.

지병현 관행적으로 45일을 하는 이유는 PD들이 하루에 20시간 찍으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게 만약에 법제화되면 PD 개인의 책임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거다. 과격한 발언일 수 있지만, 인간이 적절한 노동시간을 보장받지 못하는 산업이라면 없어져야 하는 산업이라고 생각한다. 몇 십 년 동안 이렇게 이어지는데 못 고친다면, 이 산업이 존재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제작비 상승도, 제작기간이 90일이 된다면 그만큼 연기자에게 배팅하지 못할 거다. 방송사든 외주사든 자기들의 맥시멈이 넘지 않는 한에서 배팅을 한다. 연결이 된다. PD가 재량껏 하는 게 아니라, 강제적으로 노동시간을 제어해야 한다. 그러면 당연히 제작비가 상승할거고, 제작비가 상승하면 그에 따라 다른 부분이 변할 거다. 총체적으로 연결되는 문제다.

한 번에 급격히 바뀔 수는 없겠지만 강제적으로 하지 않으면 지금 그대로 갈 수밖에 없다. PD 개인의 문제로 돌려버리면, 누구는 50억에 하는데 너는 왜 70억이 드느냐고 무능한 PD가 된다. 드라마 판에서 적절한 기준을 강제해서, 이걸 지키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것을 모두가 인식해야 한다.

이은규 방송 나가는 데에 필요한 시간을 거꾸로 계산해보니 딱 두달 전에만 나가도 되겠더라. 지금 45일인 걸 60일로만 해도 무리가 없겠더라.

조영민 생각이 다르다. 60일로 할 수는 있다. 그런데 강제규약이 없으면 60일로 하든 90일로 하든 PD의 욕심 때문이나 혹은 다른 요인 때문에 결국 밤은 샐 거다. 우리끼리도 어떻게 하면 잠을 자면서 일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니, 밤 12시가 지나면 돈을 두 배씩 줘야 12시 전에 집에 갈 수 있겠더라. 지금은 법이 만들어졌지만, 예전에는 6살 꼬마 애를 데리고도 12시 넘어서까지 촬영을 했다. 그런 법적 제재 장치가 없으면 아마 촬영일수와 상관없이 밤은 계속 샐 거다. 지금 1시간 찍는 걸 3시간 찍게 되고 그럴 거다.

안병호 농담처럼 말하는데 영화가 그렇게 한다. 12시간 넘으면 두 배 준다. 표준근로계약서가 만들어진건 10년도 더 됐다. 그런데 적용 효과를 보기 시작한 건 4년 반에서 5년 정도 됐다. 그 사이 있었던 기억날만한 상업영화는 거의 다 표준근로계약을 거치고 만들어졌다.

실질적으로 압박이 없으면 법이 이렇다 해도 누구도 지킬 의무감을 가지지 않는다. 표준근로계약서 상에는 12시간이 넘으면 시급의 두 배를 축적한다. 그게 알려지기 시작하고 난 후 대작 영화에서 지급이 안된 적이 있다. 스태프들도 몰랐다. 그런데 몇 시간을 일했는지 체크해서 조합에 문의해보니 각자 100만원 이상 미스가 났더라. 그때부터 시작해보니 영화 촬영 시간이 12시간, 12시간 반 정도로 많이 줄었다.

지병현 드라마는 걸어온 길이 반대다. 예전에는 시간단위가 있었다. 예를 들어 10시간은 10만원, 24시간이 되면 30만원 이런 조항이 있었다. 이게 턴키제로 바뀌었다.(턴키계약:일괄계약방식, 일명 통계약. 촬영, 조명 등 각 파트별 팀장인 퍼스트가 자기 명의로 계약해 팀 내 스태프에게 나눠주는 형태의 계약) 그때 30만원 줄 걸 50만원 준다고 했다. 실제로 상승됐다. 스태프들도 그때는 좋아했다. 어차피 밤은 새는 거니까. 방송국은 영화랑 다르게, 어찌됐든 방송이 나가야 하기 때문에 오버차지가 나와도 그냥 촬영을 계속한다. 이걸 시스템적으로 이미 주는 돈에 오버차지를 넣은 거다. 턴키식은 스태프가 동의한 부분도 있다.

그래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하는 게 형사처벌 해야 한다는 거다. 노동시간 16시간이 넘으면 현장지휘관인 PD를 형사처벌 하는 거다. 그렇게 해야 PD도 회사에 명분이 생긴다. 이 조항을 지키기 위해 적어도 6개월 전에 촬영 결정이 나고 캐스팅을 확정해달라고 할 수 있다. 안 그러면 감옥 들어가게 생겼다고. 그렇게까지 하지 않으면 쉽게 바뀌지 않을 것 같다. 점진적으로 바뀌어야 하는 문제다. 작가들도 이 문화에 적응해야 하고, 편성을 언제쯤 정하느냐도 다 연결된 문제다.

이은규 진짜 18시간 넘게 일하면 잡아가는 게 합리적일 것 같은데 우리나라는 왜 이게 없을까. 살인적 노동이니까 법으로 금지를 해야 하지 않을까.

안병호 대개가 돈으로 때운다. 미국은 노동시간을 정해두고, 시간이 넘어가면 두 배, 세 배를 지급한다.

이은규 휴일이면서 야근을 하면 세 배를 주는 건 어떨까. 그럼 휴일도 확보할 수 있지 않을까.

지병현 그럼 그 오버차지를 이미 계산해서 타임테이블을 짤 거다.

전진희 우리나라 전체가 장시간 노동국가다. 세계 2위. 그런데 방송 산업이 제일 심각한 수준이다. 과로사에 대한 인정 규정을 보면, 일주일에 60시간 이상 일하고 3개월 이상 지속되면 과로사로 인정한다. 방송 산업은 과로사 인정 수준에 달하는 노동을 하고 있는 거다.

노동시간 확립으로만 해결되지 않는 문제도 있다. 법적으로 노동시간을 확 줄인다고 하더라도, 방송사 자체 제작이 아닌 외주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근로자 인정을 받기가 어렵다. 법적으로 근로자로 보지 않는다. 근로자로 보지 않는다는 건, 노동시간을 준수할 필요가 없다는 거다. 예를 들어 방송작가들은 근로자가 아니기 때문에 최저임금법에 따른 최저임금을 받을 수 없다. 이런 문제들이 있기 때문에 단순히 근로기준법상 예외조항을 바꾼다고 해서 당장 해결될 게 아니다. 현장의 문제도 같이 바뀌어야 정리될 거다.

지병현 해결책이 있을 거다. 스태프가 50명이라 해도 이들 모두 법적으로 인정받을 필요는 없다. 예를 들어 조명팀만 인정을 받아도 촬영이 안 된다. 오디오팀만 근로자로 인정받아도 촬영이 불가능하다. 그 혜택을 나머지도 누릴 수 있다. 힘센 연기자들이 우린 앞으로 18시간 이상은 촬영 못한다고 합의보고 오면 좋겠다.(웃음) 그런 식으로라도 해결되면 좋겠다. 안 그러면 해결될 수가 없다.

홍창욱 EP로서는 그렇게 하면 현장에서 속 터질 것 같다

지병현 그래서 시스템이 같이 바뀌어야 한다.

이은규 세 가지 정도 방안을 또 생각해봤다. 드라마를 주 1회 편성하는 거다. 일주일에 한 편인데 그럼 지금보다는 낫지 않겠나. 드라마협회장을 하던 당시 이걸 추진해보려고 방통위원장과 3사 사장에게 부탁해서 성사 직전까지 갔는데 한 방송사가 틀어서 안됐다.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 같다.

두 번째는 어느 한곳에서라도 노조가, 결사체가 단단하게 생겨서 결의를 하면 되지 않을까. 16시간만 일하자, 더 이상 하지 말자 하면. 영화 산업처럼 전면적 조직은 아니어도 부분적으로 견고한 조직이 생기면 되지 않을까.

마지막으로는, 사실 앞선 두 가지가 힘들어 보이니까, 드라마PD들이 양심선언을 하는 거다. 나 혼자 지키면 작품 결과가 안 좋아질 수 있으니까, 하루 최대 노동시간을 몇 시간으로 하자고 다 같이 합의를 하는 거다. 아니면 만약에 새벽 4시에 끝나는 날이 있으면 최소한 대여섯 시간 자고 몇 시 이후에 소집하자는 걸 다 같이 지키자고.

지병현 다 실패할 거다. KBS에서 2부작 드라마를 하지 않나. 그럼 거긴 밤을 안 새야 하는데 다 밤 샌다. 단막극 팀장이 애들에게 7일만 촬영하라고 하면 7일 밤새서 한다. 일주일에 1회 편성을 하면 45일 전이 아니라 20일 전에 나가서 결국 밤을 샐 거다.

조직도 실제로 있다. 예전에 조명 팀에서 파업을 한 적이 있는데, 그럼 꼭 배신자가 나온다. 이해관계가 얽힌 결사체에서는 배신자가 나온다. 이분들을 뭐라 하는 게 아니라, 계약을 따내느냐 아니냐의 문제라서 계약을 못 따는 업체는 파격적인 조건을 들고 나오게 돼서 결국 성사가 안 된다.

PD 양심선언도 안 될 거다. 막상 프로그램에 들어가면 20시간 일해야 한다고 생각할 거다. 이런 부분을 솔직히 인정하고 넘어가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PD들이 인식이 있어도, 프로그램에 막상 들어가면 스스로 지킬 수 없다. 모순적 존재다. 강제조항이 있지 않는 이상 해결될 수 없다. 강제조항이 생기면 방송사도 편성에 대한 결정을 빨리 해줘야 할 거고, 그럼 캐스팅을 좀 더 유연하게 하는 등 여러 가지가 따라줄 거다. 그렇지 않으면 쉽게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 KBS 2TV <다큐멘터리 3일> 287회 '드라마처럼 - <아이리스Ⅱ> 제작현장'.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연관이 없습니다. ⓒKBS

이은규 법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은 전혀 없는 건가?

진전희 입법 불가능한 문제는 아니다. 정부에서 노동시간 단축이 얘기되고 있고, 특례 규정을 빼는 걸 논의 중이다. 특례 규정이 방송업은 아니고 흥행업에 해당한다. 흥행업은 방송, 영화 등을 다 포함하는 건데, 불명확하다.

아무튼 특례를 빼고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사회적 합의를 만들 상황이긴 한데, 그에 앞서 말하는 건 이제까지 방송현장이 바뀌지 않았던 이유가 현장에서 실효성을 느끼기 어렵기 때문이다. 법이 바뀌어도 다른 방향으로 사각지대를 만들어왔다는 게 저희가 느낀 지점이다.

따라서 방송 현장의 힘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불가능한 문제다. 저희도 방송 관련 연구조사를 보면 사전 제작 등 몇 가지 대안책이 그동안에도 있었다. 그런데 주 1회 편성이든, 표준근로계약이든 전부 외부에서 들어온 거였다. 예를 들어 사전 제작은 중국 때문에 논의된 것이었다. 즉 현장의 힘으로 바꾼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거다. 영화 쪽에 표준근로계약이 정착될 수 있었던 건 영화 노조가 계속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장의 힘을 어떻게 만들까를 같이 논의해야 헛헛하지 않을 거다.

안병호 그게 제일 어렵다. 영화 노조도 지금은 활성화되긴 했지만, 그 이전에는 '표준근로계약을 꼭 해야 한다' 이런 게 없었다. '나중에 가능할까' 하는 것도 불투명했다.

어떤 식의 강제가 필요하긴 하다. 우리는 정치적 접근을 했다. 영화는 투자를 해야지만 제작이 가능하니까, 투자가 안 되도록 하자. 그런데 방송은 외주 제작이 많고 드라마 제작 기간이 짧으니까 이 시기가 지나면 관성처럼 또 한다. 전격적인 시스템이 마련되지 않으면 스태프들은 불만이 쌓여도 이걸 터뜨릴 시간이 안 된다. 한 프로젝트가 끝나면 또 다른 돈 주는 데를 가니까. 따라서 강력한 강제가 없으면 안 된다.

지병현 방송사가 표준계약서는 먼저 있었다. 그런데 무력화됐다. 다른 산업과 차이가 있는 게, 드라마는 제작비 문제가 아니다. 돈을 좀 더 들인다고 해도 만약에 연기자가 스케줄이 세 달밖에 안된다고 하면 거기에 맞춘다. 원래는 그 연기자를 찍으면 안 되는 거다. 하지만 밤을 새게 되더라도 이 연기자로 가는 거다. 그래서 제작비만의 문제가 아니다. 문화가 점진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 초창기 단계에서는 강제적인 게 필요하다. 특별한 강제조약이 있지 않는 이상, 양자가 합의하면 무시되기 쉽다.

홍창욱 캐나다에서 촬영할 당시 장비 업체가 6시간 찍고 나니 간다고 했다. 그래서 돈을 더 줄테니 계속 찍자고 했는데, 자기들 라이센스가 날아가서 절대 안 된다고 하더라. 정 원한다면 8시간 후에 다시 전화하라고 했다. 라이센스가 걸려 있으니 돈을 더 준다고 해도 안 되더라. 그런 게 강제다.

이은규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표준계약서를 지키지 않으면 제작비 지원을 하지 않고 코바코에서는 광고 판매를 거절하고 이런 식의 행정규제를 동원하면 강제성이 의외로 있을 거 같기도 하다. 조금의 법만 받쳐줘도.

지병현 말이 반복되는 거 같은데, 어떤 조금의 틈이라도 남기는 방법으로는 해결될 것 같지 않다. 돈이 조금 덜 들어도 방송사는 더 큰 이유가 있기 때문에 피해갈 거다. 작은 규제를 하면, 피해갈 길을 또 만들 거다.

예를 들어 공산품을 만들 때 최소한의 환경을 생각하지 않으면 인증을 안 해주듯이, 평균적인 그런 게 생겨야 할 것 같다. 이상적인 시간이 아니라, 처음 시작할 때는 ‘잠자는 시간 최소 6시간’ 이렇게 현실적으로 할 수 있다. 방송 현실이 있으니 4시간부터 시작해도 되고.

전진희 그럼 합의 가능한 노동시간이 있다고 생각하시나?

이은규 조연출로 현장에 있는 조영민 PD는 어떤가. 하루에 적어도 몇 시간 자면 일을 할만 하겠던가?

조영민 현장 집합이 오전 7시 반이고 첫 장소까지 이동하는 데에 한 시간이 걸린다고 하면...우리끼리는 밤 12시에만 촬영이 끝나도 그나마 낫다고 말한다. 이게 행복하다는 건 절대 아니고 최소한 그렇다는 거다.

홍창욱 그런데 스태프들은 12시에 끝난다 그러면 집에 안 간다. 왔다갔다 하면 시간이 끝나니까. 그래서 어떤 사람은 차라리 2시에 끝내주면 주변에서 잠깐 자고 올 수 있다고 한다. 집에 택시타고 가기도 애매하니까.

지병현 그사람이 개인 시간을 어떻게 쓰는지는 참견할 바가 아니다. 6시간을 주면 6시간 동안 술 마시고 나타나는 사람도 분명히 있을 거다. 그런데 그건 우리가 상관할 바가 아니다. 그 시간을 여자친구 만나는 데에 쓰든, 본인 휴식 시간에 쓰든, 잠을 자는 데에 쓰든 어쨌든 그 시간을 우리가 마련해줘야 한다는 거다.

이은규 그럼 7시 반부터 12시라고 하면 16.5시간이다. 우리나라에서 16.5시간 일하는 직종을 못 들어봤다. 그런 의미에서 매우 비참하면서도 행복한 시간이겠다.

지병현 점진적으로 바뀌지 않으면 저항이 크니 현실적으로 5시간의 쉬는 시간을 보장하는 걸로 시작할 수도 있다. 미니시리즈는 지금 2시간만 주는 게 현실이니까. 5시간으로 유예기간을 주고 시작하자. 일단 강제조항이 만들어지고 어떤 목표를 향해서 나가는 게 중요하니까.

전진희 촬영 종료하고 다시 시작하는 데까지 5시간을 주자는 말인가?

지병현 그 필요성을 느낄 정도로 지금 열악하다.

홍창욱 목요일에 나가야 할 드라마 방송 대본이 수요일에 나온다. 작가가 그러는데 그럼 어떻게 하나. 어떻게 5시간을 쉬고 그걸 다 찍나.

지병현 그것도 법적으로 규정이 바뀌면 대본 나오는 시간이 당겨질 거다. 문화적으로 적응기간이 필요하다.

이은규 작가들이 대본을 늦게 주는 건, 그게 본인이 지난번에 가장 늦게 준 데드라인인 경우다. 그때 주면 어떻게든 촬영을 하긴 하더라 하는 거다. 그래서 이제 이 시간에 줘서 촬영이 펑크가 난다고 하면 본인 스스로 긴장감도 느끼고 포기할 건 포기할 거다. 그런데 그동안은 우리가 그렇게 대본을 줘도 다 해냈으니까 그런 거다.

지병현 하나의 법을 만들고, 이걸 지키려면 문화를 이렇게 바꿔야 겠다 하는 게 만들어질 거다.

이은규 아까 했던 이야기의 연장선상에서, 하루 5시간 보장이 아닌 주당 80시간 노동 이렇게 할 수도 있을 거다. 1일에 몇 시간 정하는 건 융통성이 없으니, 주당 80이면 어떻게든지 일하는 쪽에서 조정할 수 있지 않을까.

미니시리즈에 들어가는 모든 PD들이 끊임없이 1년 동안 말하면 바뀌지 않을까? 처음 세 명이 그렇게 주장하고 또 다음 달에 두 세 명이 더 하고. 당신 자신도 갉아먹으면서 과로사를 강제하고 있다고 하면서. 사실 모든 문제가 여기서 파생된다. 잠을 못 자니까 폭언이 나온다. 그래서 주당 80시간 안 하면 PD가 너무 비양심적이라는 식으로 해서.

안병호 캠페인성이라면 일하는 시간에 대한 규제보다는 잠 잘 시간을 찾자는 게 더 현실적이다. 자는 걸 하루에 1시간이라도 늘려나가는 거다. '내일은 30분 더 자자' 그런 운동.

지병현 모두가 공감할 현실적 제안을 줘서 한 번에 확 지켜야 가능하지, 누구는 지키고 누구는 안 지키면 안 할 거다. 연출자 입장에서는 욕먹는 건 겁 안 난다. 퀄리티가 떨어 질까봐 걱정되는 거지. 나만 해도 가치관은 적절한 노동시간이 보장돼야 한다고 하지만, 프로그램을 맡게 되면 그렇지가 않다. 퀄리티 떨어지는 게 더 두렵다. 강제가 생겨서 법 때문에 내가 못한다는 그런 게 생겨야 한다.

안병호 프로그램 만드는 사람이 알아서 통제하라고 하면 절대 안 된다. 영화감독들도 표준계약서 처음 나왔을 때는 12시간이 말도 안 된다고 했다. 그런데 본인이 통제하는 게 아니라, 프로듀서나 다른 누군가가 시간을 통제하게 하니 되더라. 사실 만드는 사람은 몇 시간 촬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방송사도 방송사 사장이 이걸 못하게 하거나, 그런 PD는 해고하거나 그런 정도의 강제가 있어야 한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어떤 강제가 있어야 한다. PD가 스스로 자숙해서 하는 건 안 된다.

이은규 그럼 입법 청원을 해야 하나. 결론은 비슷하다. PD를 좌절시켜야 모든 게 시작된다 (웃음)

안병호 모든 문화산업이 그런 것 같다. 크리에이터들은 시간이 중요한 게 아니라 품질이 더 중요하니까.

또 일선 PD들이 각성하고 자성하는데 방송을 내보내는 방송사가 뒤에 있는 건 불편한 지점이다. 방송사라면 이 드라마로 인해 수익을 보는 자들인데, 결코 뒷짐지고 있어서는 안될 문제다.

이은규 방송사 간부들이 너무 관심이 없는 건 사실이다. 인권에 관심 있는 사람이 간부가 되는 걸 본 적이 없다. 30년 동안 인권의식이 투철해서 임원이 돼야 한다는 걸 본적이 없다. 방송사 사장이나 임원 중에서 방송 3사가 이렇게 하자고 하는 가능성을 10여 년 전에야 잠깐 봤다. 그때 본 바로는, 한 사람의 사장이 뚜렷한 의지를 가지면 되더라.

홍창욱 이건 사장도 못한다. 법이 해야 한다.

이은규 법도 만들고, 안에서도 강제를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누군가가 밀어붙여야 한다. 외부강제와 내부강제가 맞아떨어져야 한다.

지병현 일선 PD들이 의식은 있다. 우리가 열악한 상황일뿐 아니라, 남에게도 피해를 끼친다는 걸 의식하는 건 사실이다. 따라서 강제조항에 대한 구체적 연구가 필요할 것 같다. 이 자리에서 바로 이야기할 순 없지만.

홍창욱 현장에서의 욕설 이런 부분은 많이 변하긴 했다. 내가 조연출을 할 때는 '야 임마', '야 이 새끼야' 그랬다. 지금은 난리난다. 지금은 다 찍혀서 보고가 올라온다. 그럼 그 사람을 빼기도 하고 그러는데.

전진희 사실 아까 찜질방도, 제보센터에는 찜질방에 재우지 말라고 얘기하는 분들이 있었다.

안병호 다음 날 오는 시간이 정해져 있으니까.

이은규 차라리 찜질방이 낫다는 건 차선책이다. 집에 못 가니까 그런 것.

홍창욱 조명감독이 그런 얘기를 했다. 그 시간이 애매하다는 거다. 하루 스케줄은 뻔하다. 여름에는 밤에 하면 8시에 촬영 가능하고, 한 세 장면 찍으면 12시 넘는다. 그래서 12시 반, 1시 이렇게 되고 내일 아침 7시 출발인데 그러면 애들이 슬슬 찜질방 간다. 그나마 찜질방 돈 대주는 게 나아진 거다.

전진희 강제할 수 있는 부분이 필요하고, 대책위도 이후 고민하면서 실태조사를 하고 있다. 현장 인터뷰를 진행해서 필요한 걸 제도로 만들려고 하는 게 있다. 단순히 법을 만드는 하나만 정한 건 아니고, 의미 있는 걸 해나가려고 하는 부분이 있다.

노동시간 특례 규정은 지금도 있다. 현장에서 연장해서 일하려고 하면 근로자들에게 허락을 받아야 한다. 협의가 안되면 불법이라 처벌이 된다. 지금도 있는 규정인데 현장에서 안 지켜지는 거다. 따라서 강제조항을 만들더라도, 현장의 힘이 분명히 따라와야 한다.

▲ ⓒtvN ‘혼술남녀’ 신입 조연출 사망사건 대책위원회 페이스북 페이지

이은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전진희 여기 계신 분들은 솔직히 특권 있는 분들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작품을 만들면 배우, 작가, PD 세 사람은 기억하지만 나머지는 기억 못하지 않나. 방송작가막내도 크레딧에 이름이 올라가야 돈이 나온다고 하더라.

현장에서 하나같이 얘기하는 게 똑같았다. 내가 만드는 작품에 대한 자긍심이 있어서 불만은 없는데, 현장의 가장 큰 문제는 함부로 대하는 거라고. <혼술남녀>도 감독은 현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몰랐다.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대부분이 기억하지 못하는 노동이 있다는 걸 감각하면서 일해야 하는 건 아닌가. 그게 나누고 싶은 주제였다. 향후에는 그런 고민도 같이 하고, 강제규정을 만들어 현장도 같이 고민하면 좋겠다.

안병호 문제는 아까도 말했지만 방송이나 영화 쪽을 노동이라고 본 적이 역사적으로 단 한 번도 없다. 지금 일자리 수를 말하는데, 수십 년 동안 일하면서 누구하나 이걸 일이라고 보는 사람이 없다. 놀이라고 본다. ‘지가 좋아서 하는데 밤새는 게 당연하지’.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 유명한 감독이 되겠지’. 그런 게 너무 당연해졌다. 그런데 그게 당연하려면 일한 사람이 일하는 대로 보장받아야 하고, 그게 전제돼야 근로시간에 대한 제한이 말이 되는 거다.

이 분야에도 일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명확하게 봐야 한다. 아직까지도 놀러온 줄만 알고, 일자리 정책을 말하면서 방송, 영화 얘기를 한 적은 없다. 이건 일자리라고 보지 않는다는 방증이다. 문화산업의 모든 스태프, 일하는 사람들을 근로자로 생각해야 근로시간 제한도 있는 거다. 근로기준법을 지키지 않는 건 형사처벌이다 지금도.

조영민 한마디로 해결될 것 같다는 생각은 잘 안 든다. 누구나 다 말도 안되는 시간 동안 노동하고 있고, 저도 죽을 것 같다. 이제 한 프로그램만 하면 조연출이 끝나고 내년에 입봉인데, 이 시간을 어떻게 버텼구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드라마PD 처음 입사했을 때 제일 크게 느낀 건, 드라마는 휴머니즘이 기본이고 인간을 위해서 만드는 건데 현장은 반휴머니즘이구나 하는 거였다. 그럴거면 드라마를 왜 만드나 그런 생각도 했다. 인간을 위해 드라마를 만드는데, 내 주변도 비인간적으로 대하면서 드라마를 왜 하나, 차라리 안 하는 게 사회에 도움이 되겠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꾸역꾸역 버텼다.

노동시간 강제 규정이든, 뭐든 했으면 좋겠다. 방송 심의는 아주 자잘한 것까지 심의하지 않나. 드라마에 광고 하나만 잘못 나가도 심의하는데, 노동 관련해서는 지금까지 노력이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조직문화가 많이 발전한 건 맞다. 하지만 아직 이 방송 쪽, 드라마를 만드는 현장이 일반 사회 수준보다는 훨씬 뒤떨어진다고 생각한다. 드라마 현장도 발전해왔고, 제가 입사할 때보다 지금 제 후배들 간의 커뮤니티가 더 발전했다고는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안 좋은 문화가 있고 사회보다 뒤쳐졌다고 생각한다. 쉽지 않겠지만 인정하고 반성해야 할 것 같다.

홍창욱 당장 닥친 방송을 해야 하긴 한다. 방송사 사람들은 못 고친다. 사실 외부에서 들어와야 한다. 방송법이든 입법을 하는 게 제일 좋다. 그러면 바뀐다. 그게 우리도 많이 바꾼다.

내부에서 욕설을 하는 등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많이 좋아지긴 했는데...직업적인 특성도 사실 있다 촬영이라는 건.

이은규 어그러지면 사고가 나고 하니까. 이게 데스크의 고민이다. PD의 고통은 촬영하는 기간 동안에는 어떤 스태프의 고통보다 크다는 건 사실 같다. 그럼에도 PD가 아니면 이런 상황을 주도적으로 바꿀 사람이 없어 보이고, 딜레마가 있는 것 같다.

인사를 하러 오신 고 이한빛 PD 아버님께도 한 말씀 부탁드린다.

▲ 'tvN 혼술남녀 신입 조연출 사망사건 대책위원회’는 18일 오전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언론노조

고 이한빛 PD 아버지 이미 보도를 통해 들으셨겠지만 많은 일들이 있었다. 여기 계신 분들이 적극적으로 해서 그나마 한빛 PD의 명예가 회복된 것 같다. 이 분야에 대해 잘 모르니 CJ E&M에서 나온 제도 개선이 얼마만큼 진정성 있는 안인지는 잘 모른다. 또 현실화될지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런 정도로 자기들이 문제를 인식하고 있는 것 같아서, 그게 구체화되든 안되든 인식 자체를 하고 있다는 게 좀 진전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나마 생각보다는 빠르게 사과를 받아들이고 협의를 끝냈다. 방송 계통과 관련도 없는 청년유니온이 대책위에서 중심적 역할을 해서 굉장히 수고가 많았다. 이제 제가 원하는 건, 어제도 대책위 분들을 만나서 얘기했는데, 스태프들이 특수노동자로 분류돼서 근로기준법상 노동법 보호를 전혀 못 받는 상황이다. 어떤 법으로든 제도를 개선하지 않으면, 문화적으로만 개선하려면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린다고 본다. 그래서 그 작업을 이렇게 여러 분들이 힘을 모아서, 한빛 PD와 연결시켜서 하는 일에 저도 미력하나마 도움을 드리고 싶다.

또 하나는 위로금을 회사 쪽에서 이야기를 했는데, 제가 거기에 기금을 n+n으로 달라고 했다. 그래서 방송 미디어 업계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의 쉼터도 좋고, 지원센터도 좋고, 상담 고충을 털어놓고 이야기 할 수 있고 연구하고 개선책을 내는 그런 걸 하나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그 부분도 합의사항으로, 사회공헌기금으로 해서 주기로 약속했으니 지켜질 거라고 본다.

그런 작업들을 진행하면서, 저희 아들이 꿈을 펴보지도 못하고 꽃다운 나이에 죽었는데, 모든 부모가 그렇겠지만 목숨보다 소중하고 귀한 자식인데, 내 가슴 속에서 품어왔던 자식인데 이번 기회를 통해 사회적으로 환원하려고 한다. 제가 죽은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서, 이런 걸 미력하지만 지원하면서 이 업계 노동자들이 안정된 일자리에서 꿈과 희망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데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된다면, 이게 우리 아들이 원하는, 아들의 죽음의 의미를 살릴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런 일에 제 힘을 많이 쏟고 싶다. 여기 계신 분들이 관련 업계에 계시니까, 내부 문제를 잘 아시니까, 이런 것들을 좀 많이 도와주시면 고맙겠다.

그런 차원에서, 여기 원로 PD님도 굉장히 많이 도와주셨고, 그동안 대책위 활동에 많은 도움을 주셔서 고맙다는 인사도 드릴 겸 해서 오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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