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피디, 21세기 크리에이터를 만나다②] 20대가 연출하는 20대의 공감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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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낫미디어’ 웹드라마 PD 손승희 · 한수지

[인터뷰, 글: 최선영 이화여대 에코크리에이티브협동과정 대학원 특임교수·독립PD]

 

오래 전 배우 김혜자 선생님을 내 프로그램에 모신 적이 있다. <전원일기>에서 엄마 역할을 하시다가 막 내려놓으셨을 때이기도 하다. 댁에서 촬영을 다 끝낼 즈음 소곤소곤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나는 주인공을 하고 싶어요. 정말, 솔직히, 죽기 전에 봉준호 감독 영화에서 주인공을 하고 싶어요. 조연은 싫어요”. 10년이 지난 얘긴데도 기억하는 까닭은 간절하게 빛나던 눈빛 때문이다. 대중의 사랑을 받는 배우일지라도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시나리오는 많지 않아요, 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방송 직후 바로 감독에게 직접 연락하셨다는 전갈을 주셨고, <마더>에서 전형적인 어머니 상을 깨는 광기어린 연기를 해내셨다. 배우 전도연 씨도 어느 인터뷰에서 여자가 주인공인 시나리오가 많지 않다고 한 적이 있다. 출연자가 여배우인 이야기는 있어도 여자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영화, 드라마는 아직도 드물다.

여배우들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어떻게든 개척을 해 나갔지만, 이 구역에 여성연출자만큼은 여전히 희귀하다. 왜 그럴까? 임신과 출산 때문일까? 현장 소통능력이 부족한 걸까? 창작 능력이 떨어지는 것일까? 창작자로서 시나리오나 드라마 작가는 여성이 훨씬 많지 않은가? 이렇게 쓰다 보니 영화감독 신재인씨가 떠오른다. <재능 있는 소년 이준섭>, <신성일의 행방불명>이라는 걸출한 영화를 만들었던. 빼어난 연출과 스토리에 단숨에 반해 바로 집으로 찾아가 인터뷰 촬영을 했던 적이 있다. 하고 싶은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술술 풀어나갔지만, 그녀는 영화판의 제작문화가 무척 힘들다고 꽤나 길게 이야기했던 것 같다. 이후 고대했던 차기작 <김갑수의 운명> 완성 소식은 듣지 못했다. 재능 있는 감독 신재인은 최소한 영화판에서는 행방불명된 것 같다. 그녀가 남자였다면 운명이 달라졌을까. 그녀가 남자이기보다 제작문화가 달랐더라면 어땠을까.

두 번째 이야기는 ‘입봉’한지 일 년이 안 된 20대 중반의 웹드라마 크리에이터 한수지, 손승희 PD와 함께 한다. 그녀들의 재능은 무서운 속도로 전진하고 있는 중이다. 지난번에 이어 ‘와이낫미디어’를 다시 찾아간 이유는 제작문화가 다른 그곳의 이야기를 좀 더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 올해 2월, 웹드라마 <음주가무> 촬영현장에서 연출하는 손승희PD. ⓒ 와이낫미디어

기존 방송 제작 현장에서 20대 중반에 ‘입봉’을 하고, 그것도 드라마 연출을, 무려 여성이 맡는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어쩌다 이 일을 하고 있는 건가?

 

한수지 PD : 예전에 교수님 추천으로 제작 현장에 갔었는데 여자라서 짤린 적 있다. 열심히 해도 남자들과 비교할 때는 체력적으로 핸디캡이 있고 드라마 현장은 상대적으로 빡 세지 않나. 바로바로 영상이 나가야하고 스토리도 프로젝트 기간도 길다. 개인적으로 농구를 좋아해서 취미로 대농(대학농구)TV라고 페이스북 방송을 했던터라 졸업 후 첫 직장으로 모 스포츠TV 영상팀 인턴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딱 일주일 다녔다. 분위기가 딱딱하기도 했지만, 제가 편집실에서 작업하고 있을 때 같이 작업하던 스포츠 기자가, 가르쳐준다고 불필요하게 뒤에서 손이 들어오는 걸 경험했다. 그만두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현장에서 여자라서 겪는 일이 힘들어 영상 PD의 꿈을 접고 기획만 하려던 중에 ‘와이낫미디어’의 “재미있게 일할, 개 드립 칠사람 뽑는다”는 공고를 보고 지원했다. 면접 볼 때 다들 쓸데없는 이야기로 웃고 떠드는 분위기가 좋았다. 자유롭게 일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관리 기획하는 콘텐츠 매니저로 들어왔는데 웹드라마 연출을 하게 되었다. 여기서는 PD들끼리도 서로 많이 도와주고 현장 나가는 게 즐겁다. 대표님이나 이사님들이 서툰 부분 많이 알려주신다.

 

손승희 PD : 전 솔직히 면접이 너무 이상해서 다단계인줄 알고 일주일만 다니고 그만둘까 생각했다(웃음). 전 직장이 보수적이었고 저보다 1~2년 차이나는 사수한테 잘 보려고 ‘싸바’하고, 생일 챙기고, 의자 먼저 빼드리다 와서. 여기는 권위적인 문화란 게 전혀 없었다. 그래서 ‘무슨 꿍꿍이가 있을까’ 오히려 부정적이었다. 여기 오기 전 프로덕션에서 잠깐 프로젝트 단위 프리랜서 조연출로 일했지만 돈이 안 되었다. 정기적으로 돈을 벌고 출세하고 싶었고,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싶어 큰 외국계 광고 대행사에 아트디렉터로 입사했다. 인턴 때 한 달에 80~90만원 받으며 정사원 되기만을 바라보며 살다가 인턴직 9명 중 혼자 정직원이 되었다. 하지만 1년 다니고 그만뒀다. 어느 날 유튜브에 제가 참여했던 광고가 나오는데 무의식적으로 ‘스킵’을 누르게 되더라. ‘다른 사람들도 그럴 텐데’는 생각이 들었다. 제가 참여한 광고도 보기 싫어서 넘기는데 ‘이 일을 20~30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킵하고 싶은 영상 말고 스킵 뒤에 나오는 영상을 만들고 싶었다.

 

두 사람 모두 영상연출자로서 포부가 있었지만, 첫 번째 발걸음이 순탄치 않았다. 그래서인지 연출 작품에서도 20대의 고민과 방황, 상처가 잘 녹아 있는 것 같다. 웹드라마가 생소한 사람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연출하고 있는지 소개해 달라.

손승희PD : 내가 겪어봤던 것들, 그리고 내가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TV 켜면 드라마 등장인물들이 너무 환상적이고 너무 예쁜데 또 예쁜 옷만 입고 나오지 않나. 재벌 집 아들이 차 트렁크에서 풍선 날려주고 고백도 하고. 물론 누군가는 한번쯤 상상해볼 판타지이지만 공감하진 않는다. 내 인생에 한번 있을까말까 한 일이라서. 우리 회사 콬TV로 나가는 <음주가무>, JTBC짱티비씨 <그린라이트 브리핑>을 연출했는데, 사실 우리 드라마에 나오는 인물들은 직업도, 하는 일도 다 소소하다. 사건사고도 별로 없다. 등장인물들도 매사 망설이고 우유부단하고 그렇다. 드라마라고 하면 극적이지 않나. 그런데 우리 이야기에는 드라마가 없다. 그냥 대화를 주고받고, 울면서 주고받고, 어떤 상황에서 주고받는다. 그래서 이게 드라마일까라는 생각도 한다. 다큐멘터리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드라마적인 드라마가 없는 것이 매력인 것 같다.

한수지PD : <사당보다 먼 의정부보다 가까운> 시즌1, <오피스워치> 시즌 1을 연출했다. 우리가 만드는 웹드라마는 ‘공감’이 목적이라고 본다. 요즘 세대들은 인스타그램 사진을 보며 음식, 즐거운 상황, 슬픈 상황을 공감하고 싶어 하니까. 웹드라마는 내가 느끼는 공감 포인트를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기에 가장 빠르고 적당한 콘텐츠인 것 같다. 핵심은 ‘나같은 모습’ 아닐까 싶다. <거침없이 하이킥>에서 이순재 할아버지가 야동보다 걸려 당황하는 장면이 우리가 흔히 하는 행동들이잖나. 우리는 가보지 못한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고, 우리는 타보지 않는 차를 타고, 우리는 입지도 못한 옷들을 사는 장면들 보다 우리가 자주 가는 홍대 길거리에서 옷도 사고 그런 옷을 입고 자주 가는 공원에서 맥주 한 캔 하는 장면이 훨씬 더 공감되는 장면 아닐까. 우리 웹드라마는 그런 이야기를 다룬다. 기존 TV드라마가 큰 파동을 그린다면, 우리는 작고 잔잔한 파동에서 공감을 더 많이 얻는다고나 할까.

 

서로의 연출작에 대해서 마음껏 칭찬해 준다면?

한수지PD : 굉장히 힘든 걸 잘 해낸다. <음주가무> 보면서 시나리오 초안을 공유해서 봤었는데 완성본의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 손PD가 자기 스타일을 많이 살려낸 작품이라고 본다. 아트디렉터를 했다는 건 오늘 알았는데 그래서 영상미 뿜뿜이구나 했다. 영상이 너무 예쁘고 디자인이 많이 들어가 있다. 초반 시나리오 보다 굉장히 잘 살려낸 연출, 감각적으로 살린 게 대단하다.

손승희PD : 입사하고 한PD 옆자리 앉아서 의지도 많이 하면서 작업과정을 지켜봤는데 긍정의 힘이 있다. 일할 때 재미를 추구하니까 일도 재밌게 하고. 그게 <사당보다 먼 의정부보다 가까운>에서 묻어난다. 어떤 상황이 와도 즐겁게 풀어가고 사람들과의 화합을 중요시 하더라. 영상 만들 때도 다른 PD들에게 적극적으로 “와서 봐주세요. 이거 재미있지 않아요? 재미없어요?” 의견을 묻는다. 존경스러우면서도 신기하고 나에겐 없는 부분이라 배우고 싶다. 저는 작업할 때 스스로를 궁지로 몰아가서 혹사시키면서 일하는 스타일이라 번 아웃 한다. 허세 없이 진솔하게 작품에 임하는 게 결과물로 다 나온다고 본다.

한수지PD : 다음 작품 허세 끼 있게 하려고 했는데 어떡하지?(웃음) 손PD는 제작비 후려치기를 잘한다!

손승희PD : (웃음) 제가 좀 희생하면 다 된다. 회사에서 쓸 수 있는 제작비에 최대한 맞추다 보니 그런 것 같은데, 이건 꼭 대표님이 아셨으면 좋겠다(웃음). 사실 우리 드라마보다 더 잘 만든 웹드라마도 봤고, 경쟁사도 많다. 제작비나 좋은 스태프들 투입하면 더 풍성해 보이는, 뭔가 많이 들어가 보이는 작품들이 꽤 있다. 반면 우리가 만드는 작품은 일류 배우나 인지도 있는 스타나 엄청난 촬영기법이 안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미있다’,‘좋다’라는 반응이 나오는 것은 우리가 일하는 환경이나 태도가 작품에 반영된 걸 시청자가 인식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한다.

▲ 올해 8월 말 업로드 되는, <사당보다 먼 의정부보다 가까운 시즌 2> 오디션 진행중인 한수지PD. ⓒ 와이낫미디어

두 사람의 웹드라마 포맷은 새로운 영상 문법이 있다. 드라마인데 자막이나 효과가 다양해서 예능 같기도 하고, 각각 이야기의 완결성이 있는 옴니버스 구성인데 연재물의 성격이 있다. 모바일로 보거나 SNS를 즐겨하는 사람들의 시청상황을 고려한 포맷이라는 점도 특이하다. 연출의 어떤 면에 신경을 쓰는 편인가?

손승희 PD : 웹드라마나 MCN콘텐츠는 저희가 제시하는 나름으로 미래가 펼쳐질 수 있다고 본다. 우리 콘텐츠를 서라운드로 볼륨을 높여 집중해 보는 게 아니라서 자막을 재미있게 연출하기도 한다. 이건 ‘와이낫미디어’에서 중요한 연출기법이 된 것 같다. 그리고 편집 커트 길이를 빠르게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저도 동영상 누르기 전 길어 보이는 영상은 클릭하지 않게 된다. 길어지거나 지루해지면 다른 사람들도 바로 끄겠지라고 생각해서 비트 빠른 BGM을 쓰고 편집감을 살리는 편이다. 앵글도 TV는 정해진 화면 비율에 180도 촬영 법칙을 지키는 편이지만, 스마트 폰으로 보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풀 샷은 인물이 쥐 콩만 하게 보이니까 스킵버튼 누르기 좋은 사이즈다.

한수지 PD : 그래서 마스터 샷이 더 안 좋다. 모바일 시청자들은 사운드를 안 듣고 화면만 보기도 한다. 그래서 자막처리가 안되어 있으면 ‘왜 자막 없냐’는 댓글이 바로 달린다. 저는 요즘 은어나 ‘짤’에 신경을 쓰는 편이다. 짤 같은 경우가 웹드라마 CG로 활용된다. ‘핵잼’,‘노잼’ 그런 신조어도 드라마에 많이 들어가는데, 이런 장치가 재미랑 공감 포인트가 되는 것 같다.

 

이 일을 하면서 언제 가장 즐겁고 재미있나?

한수지 PD : 회의할 때가 제일 재미있다. 작품하면서 팀 구성을 제일 중요시하는데, 같이 회의하고 아이디어 내고 의욕이 활활 타는 그때가 제일 좋다. 촬영하고 완성하고 업로드 했을 때 사람들 반응보는 것도 좋은데, 회사엔 좀 미안하지만 제작을 시작하는 그 과정이 가장 즐겁다. 회의하고 준비하면서 투닥거리면서 장난치는. 다음 작품 들어갈 때의 기대감이 거기서부터 온다. ‘다음에 누구누구랑 이런 세팅으로 이런 기획면서 새로운 걸 만들어 볼까’라는 상상하는 게 재미있다.

손승희 PD : 피드백 올 때가 즐겁다. 예전에 광고일 했을 때는 얘기하기 전까지 지인들도 찾아서 보지는 않았다. 유명한 사람과 광고 찍었다 해도 내가 자랑하는 거지 사람들이 재미있다고 해주지는 않는다. 그런데 웹드라마는 가만히 있어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피드백을 주고, 심지어는 악플을 달아준다. 저는 악플도 참 재미있다. 악플이 무플 보단 낫다고 보니까(웃음) 올해 2월 웹드라마 <음주가무>를 만들었는데 결말에서 반전이 있었다. 마지막 화가 떴을 때 악플이 밤새 읽어도 모자랄 정도로 달렸다. 새벽 내내 악플을 읽다 잤다. 동시에 위로 문자도 많이 왔다. 난 괜찮은데 회사 사람들도 문자 보내주고, 배우한테도 ‘악플 많이 달렸네요’라고 왔다(웃음).

한수지 PD : 저도 ‘음주가무 참 좋아했습니다~’이렇게 댓글 달고 문자로는 ‘울지마세요, 승희PD는 할 만큼 다 했어요’ 그렇게 보냈다(웃음)

손승희 PD : 많은 힘이 되었다. 악플이 정말 많이 달렸지만 ‘와 정말 10화까지 다 본 사람들이 있네!’ 싶어서 고마웠다. ‘다 보고 꼼꼼히 봤으니까 감정이입을 하고 실망과 분노가 있었겠지’ 생각하니. 일종의 정신승리일진 모르겠지만(웃음)

한수지 PD : 손 PD 주특기다, 정신승리. 안 보이는 눈물 흘리면서 그럴 수 있다. 좋은 일이다(웃음)

 

제작 현장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내가 PD를 시작했을 무렵보다 여성 PD가 많아진 것 같지만 여전히 드라마 PD는 남성이 많다. 기술 스태프들이 대개 남성으로 구성되는 경우가 많아서 현장 문화가 여성 친화적이지는 않은 것 같다. 내가 몸담았었던 교양 다큐 분야는 그래도 소규모 스태프들로 꾸리거나 직접 촬영을 해서 체력적 어려움 빼고 현장 자체가 힘들지 않았다. 그런데 드라마 현장은 어떨까 궁금하다. 남성 스태프들이 여성연출자가 통솔하는 것을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편인가? 현장 연출에서 어려운 점은 없나?

한수지 PD : 요즘 촬영 현장은 다 존중해 주는 분위기가 있지만 아직도 어려움은 있다. <오피스워치> 촬영 날 처음 같이 일하게 된 조명기사님이 있었다. 제 연출 지시에 대해 ‘왜 그렇게 하냐’는 말을 서슴없이 뱉었고 너무 심하게 하대하듯이 말씀하셔서 무척 당황했다. 특이하게 조명기사님이 사운드에 대해서 얘기를 하시더라. 제 연출 지시를 듣지 않고 마음대로 사운드를 따겠다고 하셨다. 제가 연출의도와 장면에 대해서 설명을 했지만, 고집을 꺾지 않고 끝까지 말씀하시더라. 40대 후반 정도 되는 분이셨는데 티는 많이 안냈다. 촬영 끝날 때까지 아무 말 안하다가 ‘제가 오늘 조금 미숙했을 수 있는데 다음에 잘 할 테니 웃으면서 넘어가주세요’라고 말하기 까지가 정말 고민 많았다. 말해버려서 풀고 싶은데 어떤 식으로 말해야 내가 아무렇지 않게, 내가 좀 더 괜찮게 말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많이 했다.

손승희 PD : 비슷한 경험 많았다. 여자로 스태프나 연출자로 일하면 남자 스태프와 어울려야 한다. 그런데 사람 대 사람이 아니라 여자라는 게 하나 더 추가된다. 성적 농담, 성희롱적인 일도 현장에서 항상 있는 일이다. 나이 어린 여성 스태프들이 비일비재하게 겪는 일로 어깨를 만진다든지, 오빠라고 부르라고 한다든지. 그런 거 하나하나가 스태프와 연출로서 관계를 유지하기 어렵게 한다. 그런 것들로 인해 ‘프렌드 십’이 안 된다. 앞으로 내가 여자PD로서 어떤 포지션을 가져야 되고, 직업인으로 어떤 포지션 가져야 되는지 가치관이 좀 흔들려 고민 하던 때가 있었다.

한수지 PD : 현장에 남자 스태프가 많다보니 이런 대화도 들은 적이 있다. “이 위치에서 배우 노출이 잘 보인다” 그런 말을 서슴없이 뱉는 분들이 있다. 남자 스태프들 사이에서 그런 말이 오가면 여자 연출자가 위축된다. 분위기 밝게 하려고 일부러 털털한 척도 해야 된다. 또 남자 스태프 분들은 담배도 많이 피우시니까 따로 모여서 이뤄지는 대화가 있다.

▲ <오피스워치> 이수지 한수지 연출, 김사라 각본. 2017.04.17. 웹 오픈. 퇴사하고 싶은데 퇴사할 시간이 없다. 오전 8시 같은 그 여자와 오후 3시 같은 그 남자의 오피스 공감 로맨스 8부작. ⓒ 와이낫미디어

나도 20대 후반 처음 중계차를 탔을 때 기술 감독이 커트 스위칭을 제 때 안 해줘서 애를 먹었던 일이 생각난다. 남자PD들이 ‘입봉’할 때는 ‘머리 올려준다’는 표현까지 써가며 도와주던데 반면 나는 서럽게 시작했던 것 같다. 두 사람은 현장에서의 이런 어려움들은 어떻게 극복하고 있나?

손승희 PD : 아직도 100% 어떻게 해야겠다는 생각은 없다. 대학 때는 여자로 보이는 게 싫어서 머리도 숏 커트하고 화장도 안하고 더 남자처럼 하고 다녔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런 것들이 내 자신을 속여가면서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여자로서의 즐거움, 일의 즐거움 둘 다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꼼꼼함, 사교성, 친화력으로 무거운 분위기도 밝게 이끌어가는 장점이 있으니까 여성으로서 누릴 수 있는 거나 이용할 수 있는 것은 확실히 갖고 가자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 여자연출자가 있는 현장은 분위기가 수평적이고 재미있어지고 발랄해진다. 여성들이 꼰대 짓도 덜 하고.

한수지 PD : 저도 현장에서 남자 스태프들과 초반엔 굉장히 불편했다. 너무 꼰대스타일 스태프는 지금도 팀 구성 때 배제하는 편이다. (스태프로서) 만나봤을 때 권위적 뉘앙스 풍기면 같이 일하고 싶지 않다. 우리는 TV드라마 제작 현장보다는 규모가 작아서 현장 스태프로 연출팀, 촬영팀, 출연자 포함 20~30명 정도로 움직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스태프 구성할 때도 회사에 여성PD가 많아, 여성PD들로만 팀이 꾸려지는 경우도 있는데, 연출부에 남자가 없으면 소통할 때 안 될 것 같아서 남녀 성비를 맞추려고 한다. 연출자가 여자인 거에 대한 보완으로 남자 조연출과 함께 한다. 저 스스로 장점은 프리프로덕션 기간 동안 꼼꼼하게 준비해가고 더 많이 체크한다는 것이다. 스토리보드나 촬영에 대한 논의도 세부적인 것까지 체크해 제작진과 신뢰를 만들어 간다. 로케이션을 미리 가서 동선을 체크한다든지 감정 선에 대해서 더 세밀하게 촬영팀과 같이 의논한다든지 미리 준비를 한다. 그러면 여자 연출자, 남자 촬영감독이라도 서로 믿음이 생긴다.

 

한PD, 손PD와 일하려면 권위주의는 필수적으로 싹 버리고 와야겠다(웃음). 두 사람은 연기자를 할 정도로 외모도 눈부시다. 내 이런 생각도 물론 편견일 수 있다. 여성연출자에 대한 편견 중 바꾸고 싶은 게 있다면 어떤 것일까?

한수지 PD : 가끔 배우들도 ‘PD님이 예쁘게 하고 오면 어떡해요’라고 한다. 기분 좋으라고 하는 칭찬인데도 편견인 것 같아서 듣는 게 썩 기분 좋은 건 아니다. 배우하려는 여자들이나 꾸미는 거라는 인식이 있다. 저는 화장하고 꾸미는 걸 좋아해서 PD는 멋지고 예쁘게 꾸며서는 안 되는 직업인가 생각해본다. 얼마 전까지는 일부러 추레하게 현장 가곤했는데 이제는 활동하기 편한 정도로 간다. 화장하고 꾸몄으되 털털한 모습을 보여준다. 개인의 자유인데 외모 때문에 일 잘하고 못한다고 판별하는 것도 결국 여자한테만 오는 편견이지 않은가. 촬영현장에 남자 감독님이 옷 깔끔하게 입고 오면 세련되었다고 하면서 여자가 꾸미면 프로답지 못하다고 한다.

손승희 PD : 그런 게 역차별인 것 같다. 여성스러운 게 덜떨어진 것일까. 여성 정치인들은 밋밋한 화장에 남자 정장을 입고 여성이 원래 갖고 있는 신체적 굴곡이나 페미닌 한 것을 많이 덜어낸 모습으로 나온다. 그런 것 자체가 남성을 따라하는 게 아닐까 싶고. 영화 <금발이 너무 해>에서 여성변호사가 바비 인형처럼 입고 핑크색 원피스 입고 핑크색 푸들 데리고 변호사를 한다. 그 영화를 보고 저렇게 추구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여성성을 버려가면서 뭔가 나는 평등해지는 것이 아닌 ‘나 답게’ 나 다운 것이 좋다. 치마를 입는 게 편하다면 치마를 입고 프로답게 연출하면 될 것이다.

 

드라마에서 그려지는 여성의 심리 또는 여성상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현재 두 사람은 고민이 많은 연애, 스낵처럼 바삭한 사랑이야기를 그려내고 있어서 20대 남성들이 여성의 심리를 알기위해 본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손승희 PD : 우리나라 멜로드라마만 하더라도 여자에 대한 대중들이 생각하는 이미지, 연출자가 생각하는 이미지가 실제랑은 다르지 않나. (미디어에서) 너무 남성의 시각으로 여성을 본다고 생각한다. 멜로나 로맨스물에서 예를 들면 이별할 때, 사랑할 때, 싸웠을 때, 첫 키스를 할 때 등 같은 상황에서 남녀의 감정 차이가 확실히 있다. 그래서 연출자로서 그런 건 좀 깨주고 싶다는 생각이 있다. 남자들이 생각하는 연애보다 여자들이 생각하는 연애가 감성적이고 디테일한 부분을 많이 다룰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여자는 미묘한 감정을 갖고 연애를 한다. 그래서 로맨스, 멜로 장르 연출은 여자의 시각이 오히려 진솔하게 디테일한 면을 잘 다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수지 PD : 보편적으로 콘텐츠에 표현되는 여성상은 남자 창작자들이 만든 작품이 많았으니까 여성스러운 캐릭터가 많았다. 제가 연출한 <사당 의정부...>는 그런 것의 완전 결정체다. 시즌 1은 완전 귀엽고 사랑스러운 캐릭터고 스핀오프 시리즈인 <오피스워치>에서는 직장 내 성희롱을 당해서 좀 시크하고 시니컬하지만 다시 여성스럽고 사랑스러운 캐릭터로 돌아온다. 그간 그런 것에 익숙해진 우리가 설정한 여성캐릭터일 수 있다. 그래서 이번에 준비하는 작품의 여자 주인공은 완전 걸크러시 캐릭터다. 욕도 잘하고 털털하면서도 섬세한 감정을 가진. 8월 중순에 나올 <사당 의정부...> 시즌 2에 등장한다. 오히려 이런 캐릭터들이 여자들이 더 공감하고 느끼는 본래 여자들의 모습을 담는 캐릭터가 아닐까 싶다.

▲ <음주가무> 손승희 연출, 이시월 각본. 2017.03.24. 웹 오픈. 하루도 술 없이는 못 배기는 프로혼술러 도음주와 맥주 두 모금이 최대 주량인 알코올 초짜 유감우의 알코올 로맨스 10부작. ⓒ 와이낫미디어

드라마는 당대의 유행, 삶을 반영하고 바람직한 이미지(상)을 만들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영향력이 크다는 의미다. 드라마를 만드는 창작자로서 일종의 사명감이랄까 책무 측면에서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궁금하다.

한수지 PD : 우리가 작은 콘텐츠를 만들고 있지만 여기서 던져지는 메시지들이 사람들에게 퍼져나갈 때 항상 조심해야겠다고 느낀다. 생각보다 영향을 많이 미치더라. 예를 들어서 영상 댓글로 ‘심멎’(심장멈춤)이라고 쓰고 환자 이미지를 달았는데 부정적인 반응이 즉각 오는 것을 봤다. 또 근본적인 걱정도 있다. <오피스워치>에서 ‘사라’라는 캐릭터가 회사에서 경직되어 있는 이유가 사내 성희롱 때문이라는 설정이었다. 이런 상황을 내보내면 대부분은 ‘직장에서 이러면 안 되는구나’라고 생각하겠지만, ‘아, 이렇게 회사에서 여자를 만지기도 하는구나’라고 반응할 수도 있다. ‘회사 가면 이런 일이 당연하게 이루어지기도 하는구나’라는 새로운 사실을 알려주는 것 같아서 걱정이 되었다. 우리가 주의해야하는 부분이다. 우리가 만드는 콘텐츠의 작은 요소들이 어쩌면 지금 우리 콘텐츠를 보는 세대들에게 가장 크게 와 닿고 인식하는 것이라서 조심스러운 거다. 그래서 다양한 캐릭터를 만들어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손승희 PD : 사명감까지는 아니지만 항상 경계를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은 한다. 방송이나 영상 영역 제작자는 모두 그럴 것 같다. 타깃층을 자극도 시켜야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오버해 버리면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을 수도 있다. 반면 그렇다고 너무 자극이 없으면 타깃층에게 소구가 되지 않으니까 잘 조율해야 할 것 같다. 예를 들어서 ‘욕도 많이 쓰잖아, 일탈도 좋아하지?’라는 것을 소재로 쓰면서도 나쁜 영향을 주면 안 되니까 대본 쓸 때 고민을 많이 한다. ‘이런 상황이면 솔직히 욕나오잖아’라고 작가가 욕을 썼다가도 살짝 순화를 하기도 한다.

 

준비하고 있는 이야기 혹은 앞으로 연출자로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무엇인가?

한수지 PD : 웹드라마는 기성 배우가 아닌 신인배우들 중에 새로운 이미지를 가진 사람들을 더 좋아한다. 그래서 캐스팅하고 싶은 배우는 신인이 더 많다. 너무 유명하지 않은데 우리가 새로 발굴해서 기존 캐릭터보다 훨씬 더 새롭게 입혀줄 수 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저는 연애를 하고 있어서 그런지 연애하면서 공감되는 이야기들이 굉장히 좋다. 이제까지는 직장인 이야기만 했는데 차기 연출작으로 서툴렀던 20대 초반의 이야기를 할 거라서 스스로 기대된다. 단지 시나리오 상에 헤어지는 얘기가 많이 나와서 심취하다보면 자꾸 남친과 싸우게 된다. 직업의 세계와 실생활이 분리가 되어야 하는데 시나리오 읽으면 내가 괜히 화가 나서(웃음).

손승희 PD : 현재 네이버 웹툰 드라마화 작업을 하고 있고 10월에 릴리즈 될 예정이다. 사실 2시간짜리 소재를 10~15분에 풀어낸 일본의 <기묘한 이야기>를 웹드라마 포맷 같아서 좋아한다. 그래서 웹드라마 소재가 꼭 멜로나 로맨스만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좀 더 무겁거나 심오하거나 SF적인 것도 끌어올 수 있을 것이다. 우리 회사는 항상 20대 타깃 연애이야기를 하는데, 제가 사비를 들여서라도 제작하고 싶은 이야기의 배경은 노인정 같은 곳이다.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그들만의 우리 같은 문화가 있을 것 같아서.

한수지 PD : 어쩌면 굉장히 더 잘될 수도 있다. 사실 20대들이 항상 꿈꾸는 연애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김치~~’하고 찍은 사진 이미지다.

손승희 PD : 일진 할아버지도 등장하셔서 요즘 트렌드를 알려주시고. 어르신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브랜드가 있을 것이고 힙한 음악도 있을 것이다. 힙할배 느낌? 어감이 약간 욕 같지만 보라색 트레이닝 복 입고 류승범 느낌으로 노인정 군기반장하시고 그 와중에 썸 타는 어르신들 이야기 하고 싶다. 그런데 아마... 콘텐츠 총괄 이사님이 반대하지 않을까(웃음).

 

최근 할머니 콘텐츠들이 20대들 사이에서 힙한 반응을 얻고 있다. 박막례 할머니 유튜브 채널 댓글은 대개 위로 받고 싶고 통쾌함을 느끼고 싶은 2~30대들이 다는 것 같다.

한수지 PD : 박막례 할머님이 부부젤라로 언니 괴롭히는 장면 너무 재미있었다. 우리가 장난치듯 할머니들 장난도 천진난만하게 노시는 모습이 잘 와 닿고 너무 좋다. 실제로 20대들은 SNS만 하니까 부모세대, 윗세대와 소통이 안 되고 단절을 느낀다. 그런데 SNS에서 만난 어르신들과는 교감할 수 있는 분위기가 있다. 실제로 우리 세대는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있으면서도 막상 만나면 어색하고 핸드폰만 만진다. SNS에서 항상 또래들과 소통해왔는데 어찌 보면 SNS에서 만난 다른 세대이지 않나. 그런 반가움이랑 거기서 느끼는 따뜻함도 있어서 공감을 많이 하는 것 같다. 노인정 이야기 콘텐츠 만들면 굉장하겠는데요!!(웃음)

 

앞으로 두 사람의 웹드라마, 함께 하고 있는 회사는 어떻게 진화할 것 같은가?

한수지 PD : 우리 회사는 서로 SNS를 많이 보고, 너무 친해서 대학동아리방 같다.

손승희 PD : 동아리방이라는 것에는 동의하고. 뭐랄까 회사의, 웹드라마의 미래를 잘 모르겠다. 그런데 그래서 더 재미있는 것 같다. 계속 성장 중이라서. 10~20년뒤를 그리면 굉장히 많이 달라져 있을 것 같다. 우리도 이제 막 입사 1년되어가는 상황이지만, 1년 전 회사 분위기와 지금 분위기, 사람부터 하는 일까지 너무 달라졌다. 굉장히 급진적이고 눈 뜨고 일어나면 뭔가 달라져 있다.

한수지 PD : 회사의 크기도 달라졌다. 처음에는 드라마가 주가 아니었다. 제가 처음 와서 한 일은 광고 바이럴 영상을 만들었는데, 그만큼 변화와 트렌드에 있어서 빠르게 발맞춰가는 느낌은 있다. 들은 얘기지만 바이럴 영상 만들 때 보다 이렇게 웹드라마를 하면 바이럴 제안이 훨씬 더 많이 들어온다고 한다. 그런데 드라마를 만들면서 그런 건 하나도 제작하고 있지 않다. 변화에 있어서 좋은 선택으로 바꾸어 나가고 그 선택을 집중해서 가는 것이 믿음직스러운 부분이다.

 

이들은 인터뷰 내내 ‘작은 콘텐츠’를 만든다고 겸손해했다. 이들이 현재 어떤 규모의 드라마를 만드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지금 그 일을 맹렬하게, 꾸준히, 진정성 있게 즐기고 있다는 것만이 사실이다. 악플이든 선플이든 그들의 웹드라마 콘텐츠와 공감하려는 적극적인 시청층이 늘어가고 있는 것도 인정해야 한다.

아무도 가지 않았던 길을 개척 나가는 과정은 외롭고 불안하다. 위험 부담도 크고 시기와 질투도 온몸으로 겪으면서 가야한다. 거기에 여자라서 겪는 오해와 시련이 플러스 되면 쓸데없는 상처를 받는다. 나는 이들이 제작 현장에서 드센 리더십을 일부러 보여주느라 끙끙 앓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늘 수식어처럼 붙는 ‘여성’ 드라마 PD라고 구분하지 않았으면 더 좋겠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기보다 힘들더라도 좀 돌아가더라도, 작품에서는 결코 드러나지 않는 제작현장 문화와 분위기를 지금처럼 조금씩 바꿔나가면서 큰 성취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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