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박환성·김광일 PD를 애도하며...정의도 디테일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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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영 작가 특별기고] 인하우스 PD들이 독립PD와 작가들의 유서를 품고 살아갈 수 있을 때

▲ 한국독립PD협회는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박환성, 김광일 PD를 추모하며 귀환 비용 마련을 위한 모금 운동을 벌이고 있다. 계좌번호는 신한은행 140-009-158111 (예금주:사단법인한국독립피디협회)이다. ⓒ 한국독립PD협회

박환성, 김광일 독립PD가 지난 14일(현지시각)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EBS 다큐멘터리 <다큐프라임-야수의 방주> 제작 중 교통사고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특히 박 PD가 생전에 <야수와 방주> 제작 중 방송사의 부당한 간접비 요구 문제를 제기한만큼 방송사와 외주제작사의 불합리한 관계에서 기인하는 독립 PD들의 열악한 제작 환경과 처우 개선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방송가는 두 젊은 PD의 비보를 듣고 가슴 아파하는 이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그중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 KBS <인물 현대사> 등을 집필하며 한국 다큐멘터리 역사에 큰 획을 그은 김옥영 스토리온 대표(방송작가)의 글을 싣습니다. 김 작가는 한국방송작가협회 이사장을 역임했으며, 한국방송작가상(1992) 문화체육관광부장관 표창(2013) 방송통신위원회 방송대상 방송작가상(2014) 등을 수상했습니다. <편집자 글>    

죽음은 싱크홀처럼 다가온다.

아무런 대비책 없이, 예기치 않은 순간에, 어둠은 발목을 낚아챈다.

어제 느닷없이 들려온 비보에 일손이 잡히지 않았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기에 충격은 더 컸고, 그가 제기한 문제가 이제 막 전개되고 있는 시점이기에 더 공교로웠고, 문제의 당사자인 방송사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중이었기에 더 아이러니한 죽음이었다.

우리 모두의 기막힘과 아픔과 슬픔은 그 죽음 위에 우리 자신의 삶과 죽음을 얹어볼 수밖에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인하우스 피디와 기자들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나보면 대부분 선한 눈빛을 가진, 정의에 목마른, 합리적인 생각을 가진 그런 사람들이다. 그들은 외부 독립제작사와 독립피디와 방송작가들에 대한 방송사의 처우에 함께 안타까워하기도 하고 분개하기도 한다. 나는 그들의 선의를 의심하지 않으며, 방송사의 강고한 시스템 속에 그들 자신도 무력하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러나 나는 또한 당신들에게 질문하고 싶다. 당신들은 무엇을 위해 그 시스템에 저항해보았느냐고. 저항해보지 않은 시스템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신 속에 내재화되는 것이라고.

악마만 디테일에 있는 것이 아니다. 사실을 말하자면 정의도 디테일에 있다.

방송이 제 역할을 하도록 하는 언론개혁이 이 시대 제 1의 과제라고 믿는다. 해직 언론인들이 제자리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 그 일의 첫 번째 단추라는 데 동의하며, 그 일을 위한 모든 노력을 지지하고 성원한다.

그러나 그 일이 모든 방송 종사자들의 공동과제이듯이, 독립제작사와 독립피디와 방송작가의 부조리한 처우에 대한 개선 역시 감히 우리 모두의 공동과제라고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당신이 ‘정의’를 이야기하고 싶어한다면 말이다.

엊그제 <한겨레>의 한 칼럼이 내 가슴을 찔렀다. 장애인권운동에 관련한 내용이었지만, 다음과 같은 내용은 나 자신과, 그리고 당신과, 우리 사회 전체에 해당되는 이야기이기도 할 것이다.

"세상엔 자신의 유서를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싸움은 그들로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싸움의 지속은 타인의 유서를 품고 사는 사람들에게 달려 있다. 김소연의 시에 이런 구절이 있다. ‘사람의 울음을 이해한 자는 그 울음에 순교한다."

▲ 관련 기사 원문 보기

[세상 읽기] 그 사람 얼마나 외로웠을까 / 홍은전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의 유서를 품고 살아갈 수 있을 때, 인하우스 피디들이 독립제작사와 독립피디와 방송작가들의 유서를 품고 살아갈 수 있을 때, 우리 정재홍 작가의 말처럼 ‘을’이나 ‘병’인 독립제작사, 독립피디가 ‘정’ 밖에 안되는 방송작가의 유서를 품고 살아갈 수 있을 때, 내가 당신의 울음을 이해할 수 있을 때, 당신이 나의 울음을 이해할 수 있을 때, 세상은 진실로 변화를 향해 가게 될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런 세상이 오기나 할 것인가?

뜻밖의 부고 앞에서, 이 사회와 방송업계의 비주류일 수밖에 없는, 우리 모두의 슬픔의 짐을 부질없이 그 위에 얹으며...

고 박환성 피디와 김광일 피디, 편히 잠드시길.

▲ ⓒ 김옥영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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