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사 불공정 관행, 갑질이라 생각하지 않는 게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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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사 불공정 관행, 갑질이라 생각하지 않는 게 문제"
한국독립PD협회, '방송 외주제작 생태계 복원 위한 공동 행동선언'
  • 구보라 기자
  • 승인 2017.08.18 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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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독립PD협회

[PD저널=구보라 기자] 독립 PD들이 방송사의 독립 PD들과 외주 제작사에 대한 불공정한 관행을 개선하기 위한 적극적인 행동에 나섰다. 방송사의 이른바 '갑질'이 여론의 질타를 받고 있는 가운데, 국회와 언론시민사회단체도 뜻을 함께 하기로 했다.   

한국독립PD협회가 마련한 '방송사 불공정 행위 청산과 제도 개혁을 위한 특별위원회'(위원장 최영기, 이하 방불특위)는 지난 16일 오후 5시 서울 목동 한국방송회관 3층 기자회견장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방송 외주제작 생태계 복원을 위한 공동 행동 선언’을 공표했다.

같은 날 오후 6시부터 8시까지는 고 박환성·김광일 PD 추모와 방송사 불공정 행위 청산 결의대회가 열렸다. 이 자리는 방송사의 불공정 행위를 청산하고 제도를 개혁하기 위한 결의, 독립PD들의 피해 사례 발표가 이어졌다.

기자회견은 한국PD연합회, 전국언론노동조합, 언론개혁시민연대, 민주언론시민연합, (미방위 소속) 김경진 국민의당 의원실, 추혜선 정의당 의원실, 언론소비자주권행동,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언론위원회, NCCK언론위원회 등이 함께 했다.

이들은 ‘방송 외주제작 생태계 복원을 위한 공동 행동 선언’에서 “우리는 ‘고 박환성 독립PD, 김광일 독립PD가 남기고 간 과제가 무엇인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며 “우리는 ‘방송 외주제작 생태계 정상화를 위해 공동행동을 선언한다"고 말했다.

이어 "1991년 도입한 외주정책의 취지는 ‘방송콘텐츠 다양화와 시청자 서비스 확충’이었다. 일정 부분 취지를 이뤘다고 볼 수 있으나 방송사와 독립PD(제작사) 간의 원청과 하청 관계에 문제가 분명히 존재한다"며 "절반이 넘는 방송콘텐츠가 외주 편성 되고 있는 작금의 상태에서 ‘방송 외주제작 생태계’는 건강해야 한다. 이것은 좋은 시청 서비스를 받아야 하는 국민의 권리와 직결되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마지막으로 “이제는 국제 표준을 기준으로 외주정책이 원점에서 재검토 돼야 한다. 그리고 방송 외주제작 노동자들의 인간존엄성과 노동권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좋은 정책도 물거품일 뿐이다”라고 강조했다.

방불특위는 향후 활동 계획과 목표를 밝혔다. 이들은 우선 박환성 PD가 문제를 제기했던 EBS의 간접비 요구에 대한 진상 조사를 철저히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 PD의 생전 지적처럼 ‘갑’질이 존재한다고 밝혀질 경우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또한 방불특위는 공정거래위원회를 통한 철저한 조사를 통해서 위법 사실이 증명되면 ‘검찰’에 고발할 예정이다. 이밖에도 국회 국정감사에서 전 방송사 심층 감사가 이뤄지도록 할 계획이다.  

이들은 이후 언론 유관단체, 시민사회와 함께 심층 논의를 통해 방송 외주제작 생태계 정상화를 위한 담론을 형성하고, 외주정책에 대한 감독 체계 마련을 위한 구체적 계획 수립을 목표로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새로운 외주정책과 국회의원 공동발의를 통한 ‘특별법 제정’이 최종 목표다.

이날 기자회견은 추혜선 정의당 의원과 김경진 국민의당 의원도 함께 하겠다는 강한 뜻을 밝혔다. 추혜선 의원은 “앞에 카메라가 다 와있다. 현장에서 세상을 고발하고 비춰야 할 카메라가 지금 이 자리에 우리와 함께 있다. 이 가운데가 박환성 PD의 카메라죠?”라며 잠시 말을 잇지 못 했다.

이날 기자회견석 앞에는 파란 리본이 달린 수 십대의 카메라가 단 한 대의 카메라를 둘러싸고 있었다. 바로 고 박환성 PD가 사용하던 카메라였다.

이어 “이 문제를 통상적인 갑을 관계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지금 독립PD들의 신분은 갑을 관계를 벗어난 그 아래에 있다. 독립PD라는 직업이 존재할 수 있는 상생환경을 만들어내야한다. 다가오는 국감에서 이 문제를 반드시 제기하고 실질적인 대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 ⓒ한국독립PD협회

오기현 한국PD연합회장은 “앞서 추 의원이 말했듯이 이번 사태는 방송사 내에 불공정거래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며 “아울러서 우리 사회에 구조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갑을 관계로 인한 아주 비인격적이고 야만적인 인권유린 행위라고 생각한다. 독립PD 처우 개선이 방송계의 건강성을 회복하는 길이고 우리 사회에 건강성, 민주성, 선진화를 앞당기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한국PD연합회는 독립PD협회와 함께 오는 24일 열리는 심포지엄을 준비 중이다. 해당 세미나에서 나온 사안을 기초로 포괄적인 대책위원회를 만들고, 피해 고발센터를 한국PD연합회와 독립PD협회가 같이 운영한다. (▷관련링크)

故 박환성 PD 동생 박경준 씨는 “두 분이 단순한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박환성 PD는 확실한 대의명분을 가지고 싸우고 있었다. 형의 뜻을 받들어 제가 대신 이 자리에 섰다. 유족의 입장에서는 가장 먼저 EBS와 책임자들로부터 책임감 있는,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사과를 꼭 받아내고 싶다”고 밝혔다.

박경준 씨는 “시신 수습을 위해 남아공 현지를 방문했을 때에 안치소에 있던 형의 한 맺힌 얼굴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잊혀지지가 않는다. 앞으로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모르겠다. 하지만 제가 기억하고 있는 형의 한맺힌 얼굴이 언젠가는 꿈에서 미소로 보이는 그날까지, 아무리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함께 해나가가겠다”고 말했다.

이어 문체부와 방통위가 공동으로 실시할 예정인 ‘방송사-외주제작사 간 외주제작 실태조사’에 대한 지적도 이어졌다. 문체부와 방통위는 지난 10일 지상파 방송사(KBS·MBC·SBS·EBS)와 종합편성채널(채널A·TV조선·JTBC·MBN), CJ E&M, 한국방송영상제작사협회·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 등에 소속된 외주제작사를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공동대표 전규찬‧최성주) 사무처장은 “실태조사 설계를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한다. 누구를 위한 조사며, 대체 무엇을 위한 조사인가. 고 박환성, 김광일 PD를 죽음으로 내몬 비참한 현실을 바로잡기 위한 조사가 아닌가”라고 짚으며 “그렇다면 당사자인 독립 PD들의 이야기부터 듣길 바란다. 국정과제 수행을 위한 형식적 조사가 아니라 해결을 위한 실질적 조사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김 사무처장은 “방통위와 문체부가 만약 시민단체와 독립PD의 제언을 무시하고 형식적 조사를 강행한다면 조사는 파행에 이를 것이라고 경고한다. 문재인 정부는 방송 정상화를 약속했다. 그건 공정 거래 한정이 아니다. 방송은 결과가 아니라 제작 모든 과정에서 공정성이 확보돼야 하고 정의로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독립PD, 조연출, 작가. 음향감독, 조명감독 등 현장 지키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더 이상 소외되어서는 안 된다 외면받아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이날 방송작가유니온도 ‘방송제작노동자들의 실질적인 노동조건 개선방안 나와야’라는 제목의 논평을 내고 “그간 방송제작노동자들은 이해를 대변해줄 노동조합도 없이 관계 부처에 방송제작노동자들의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요구들을 전달해왔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관계 부처 간 책임미루기였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렇기에 이번 정부에서는 관계 부처가 실태조사를 통해 외주제작사의 어려움만이 아니라 방송제작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제대로 파악하고 표준계약서 법제화, 직종과 경력 반영해 최저임금 보장하는 표준제작비 규범 마련 등 실질적인 개선방안을 마련할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최영기 방불특위 위원장은 “저는 이 활동계획과 목표를 영국 BBC를 보고 삼았다. BBC도 2003년부터 독립PD 저작권을 인정했다”며 장정훈 독립PD와 2015년에 영국 독립PD협회장과 인터뷰했던 내용 중 일부를 소개했다.

그는 “영국의 독립PD들이 방송사에 법개정 작업을 알리자 방송사가 ‘수백년이 지나도 저작권이 독립PD에 돌아갈 일은 없을 거다’라고 반응했다고 한다. 그런데 결국 법 개정이 되고, 독립PD들에게 저작권이 가면서 영국의 콘텐츠 판매가 급증했다. 2016년에는 매출액이 약 1조 9천억원”이라고 말했다. 그는 “방송사 관계자들에게도 말한다. 이건 싸워서 될 일이 아니다. 함께 윈-윈(win-win)할 수 있는 패러다임을 만들면 된다"고 밝혔다.

뉴스타파 <목격자들> ‘두 독립PD가 남긴 숙제’(취재작가: 오승아, 글.구성 정재홍, 취재연출: 권오정)에 따르면 2003년 방송통신법 개정 이후, BBC에서는 콘텐츠의 50%를 독립PD들이 제작하고 있다. 

▲ 뉴스타파 <목격자들> ‘두 독립PD가 남긴 숙제’에 따르면 2003년 방송통신법 개정 이후, BBC에서는 콘텐츠의 50%를 독립PD들이 제작하고 있다. ⓒ뉴스타파 화면캡처
▲ 기자회견석 앞에는 파란 리본이 달린 수 십대의 카메라가 단 한 대의 카메라를 둘러싸고 있었다. 바로 고 박환성 PD가 사용하던 카메라였다. ⓒ한국독립PD협회

‘고 박환성 독립PD, 김광일 독립PD 추모와 방송사 불공정 행위 청산 결의대회’

“앞에서는 상생! 뒤로는 살생! 불공정 행위 청산하라”

“독립PD도 살아야 방송사도 산다! 공정계약 이행하라!”

이날 결의대회에서는 고 박환성, 김광일 독립PD를 추모하며 방송사의 불공정 행위를 청산하고 제도를 개혁하기 위한 결의를 다졌다. 또한 불공정 사례와 인권침해 사례를 경험한 두 명의 독립PD들의 사례 발표가 이어졌다.

박석운 민주언론시민연합 공동대표, 김환균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 안진걸 참여연대 공동사무처장, 오기현 한국PD연합회장 등은 ‘방송사 불공정 관행’을 청산하기 위해선 합리적 제작비 기준과 저작권 분배 기준, 표준계약서 마련 등 구체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안진걸 사무처장은 “2013년 참여연대가 방송사 외주 문제를 공정위에 신고를 했다. 그런데 공정위 신고서에 PD들의 실명이 들어가면 2,3,4차 보복 가능하기에 사례자 이름을 익명으로 넣었다. 그러자 공정위가 기다렸다는 듯이 사례가 익명이면 조사 못 한다고 했다. 그럼 공정위에서 직권조사라도 해야 한다고 했지만 하지 않았다. 이번에 바뀐 공정위에는 기대를 건다”고 말했다.

2013년 12월 공정거래위원회(당시 위원장 노대래)는 ‘신고서에 구체적인 불공정거래 행위의 사례가 나타나 있지 않아 공정거래법 위반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다’는 이유를 들며 외주제작 프로그램 제작에서 일어나는 불공정거래 행위를 조사해 달라는 독립PD협회, 독립제작사협회, 참여연대의 신고를 거부했다.(▷관련기사: 2013년 12월 6일 ‘공정위, 외주제작 불공정 행위 조사 거부’)

박석운 민언련 공동대표도 “민언련에서도 관련 논평을 내면서 방송사가 표준계약지침을 이행해야한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공정위뿐만 아니라 방통위에서도 관련한 정책을 강력하게 집행해야 한다”며 “외주제작 생태계 복원이라고들 한다. 그런데 저는 정상화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정상적이었던 적이 없기 때문이다. 방송과 관련된 비정규직 문제도 함께 해결해야한다”고 말했다.

오기현 PD연합회장은 지난 10일 한국PD연합회가 발표한 ‘건강한 방송생태계를 위해 지상파 PD들도 함께 나서야 합니다-박환성 PD가 남긴 과제를 생각하는 PD연합회장의 호소문’의 내용 중 일부를 소개했다. 한국PD연합회는 이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상파의 송출료 관행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지상파에서 합리적인 제작비 지급과 저작권 관련 규정이 포함된 계약 기준을 마련하고, 관행을 주도해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 2015 방송분야 표준계약서 실태조사 ⓒ한국콘텐츠진흥원

방송사 불공정 계약 사례와 인권 침해 사례 폭로도 이어져 

두 명의 PD가 방송사의 부당한 송출료와 간접비 요구 사례와 방송사로부터의 인권침해 사례 발표를 이어갔다. 공개된 자리에서 이를 발표하는 일은 이례적인 일이다. 독립PD들은 두 PD의 사진을 기사에 쓰더라도 반드시 강한 모자이크로 처리하고, 익명으로 처리할 것을 강조했다. 이들의 발표가 앞으로 방송사와의 계약문제에서 안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방송사와 독립PD들 사이에 존재하는 현실이기도 했으며, 故 박환성 PD가 생전에 자신의 이름을 걸고, EBS에 직접적으로 문제제기했던 게 독립PD로서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이었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했다.

A PD는 올해 23년차 PD로 20년 정도 외주제작사에서 프리랜서 PD로 활동했다. 그는 독립제작사를 설립해서 2년 정도 활동 중이다. 그는 KBS와 있었던 두 건의 계약에서 발생했던 불공정 사례를 발표하고 싶어서 나왔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에서 실시한 프로젝트에 대해 제가 따오면 KBS에서 송출료로 한 번은 40%, 또 한 번은 25%를 떼어간 적이 있다”고 주장했다.

“두 건 모두 방송물을 통해 정책 홍보하는 정부 사업에서 지원금을 받았다. 부가세 포함 16년도에 1억이었고, 17년도에는 9천만 원이었다. 제가 프로젝트를 따면 정부기관과 계약을 할 수 없다. 정부기관과 KBS가 담당자를 연결시켜줘야 한다. 그럼 KBS와 계약을 맺는다. 전액 다 KBS로 들어간다. 그래야 방송 편성을 해준다. 그 후에 저는 KBS와 외주계약을 하게 된다. 서류상으로 보면 KBS가 저에게 일을 주는 거다. 사실은 제가 일을 준거지만 제 돈으로 진행한 후에 한 번에 돈을 받는 시스템이다. 이 과정에서 저는 정말 황당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 KBS가 저에게 주는 제작비를 일방적으로 책정하기 때문이다. 올해에는 25%를 떼갔지만, 이 비율이 30%가 될 수 있고 40%가 될 수도 있다. 작년에는 40%를 떼갔다. 지난 3월 방송된 프로그램, 정산해보니 이익금이 1000만원 넘게 나왔다. 제작기간은 12월부터 4월, 한 달에 260만원 정도 번 꼴이었다. 사무실 운영비만 나왔고, 제가 일했던 인건비는 나오지 않았다. 손해나는 장사였다”

A PD는 “저는 지금 KBS CP와도 관계가 좋다. 그래서 이 자리에 나오기 어려웠다. 이렇게라도 일이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도 없지 않다”고 말하며 “하지만 이 자리에 나온 건 ‘왜 이걸 떼가지? 왜 KBS가 맘대로 떼어가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저 많은 수신료 받아서 어디에 쓰는지, 외주사가 가져온 생계형 협찬비까지 가져가는지,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에 나왔다”고 말했다. 또한 “박 PD의 죽음이 결정적이었다. 그가 출국하기 전 홍대에서 만났고, 1인 시위 시작하면 저도 동참하겠다고 말했다. 이번에 이렇게 결의대회에서 말한 일이 저에게 어떻게 부메랑처럼 돌아올 지는 모르겠다. 한 가지 분명한 건 옳은 일이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A PD가 KBS와 맺었던 프로그램 계약 관련 '방송 최종 보고서'에서는 총예산에 KBS 전파사용료가 명시됐다. 전파사용료는 총예산의 20%를 넘었다. 

독립PD협회는 “최종보고서를 보면 공공기관의 협찬을 받아 제작한 프로그램을 KBS가 과도하게 전파사용료라는 명목하에 협찬비를 상당한 부분 가져가기에 제작환경이 매우 열악해 지는 상황”이라며 “총 계약금액이 나오고 그 다음 제작사에게 지급된 실 금액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두 번째로 EBS와 작업한 B PD는 "2017년 8월 7일 EBS <세계테마기행>을 담당하는 Y 부장을 감금, 협박죄로 고소했다“고 밝혔다. 그는 “2015년 7월 9일 발생한 사건이다. 덮고 넘어가려 했지만, 박환성 PD의 소식을 접하고 더 이상 EBS 외주제작부에서 갑질이 일어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고소했다”고 말했다.

“제가 소속한 J 회사는 2010년 9월부터 <세계테마기행>을 제작했고 2013년 3월 경부터 담당 CP가 Y부장이었다. 저는 Y부장과 늘 어렵고 불편한 관계였다. 2015년 7월 8일 저에게 전화, 어떠한 설명도 없이 내일 본사에 들어오라고 했다. 방으로 들어가더니 앉자마자 전화기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녹음 버튼을 누르고 ‘지금부터 질문을 할 거고 우리가 내용을 녹음하겠다. 나중에 다른 소리 할 수 있으니 증거로 쓰려한다’고 했다. 저는 공포심과 수치심 모멸감을 느끼며 눈물이 쏟아졌다. TV에서나 볼 수 있는 범죄인 취조 같았다. (중략) 그가 제게 물었던 건 외주제작사 팀장에게 요청할 일도, 프로그램에 관련한 내용도 아니었다. 고유 제작권한 침범하는 내용이었다. 이에 대한 7월 13일 이메일을 보냈지만 지금까지도 어떤 누구에게도 사과나 답을 받지 못 했다.

J 회사는 <세계테마기행>에서 시청률 1위를 기록했지만 EBS는 결국 재계약 불가 통보를 했다. 그 이후로 J 회사는 EBS의 그 어떤 공모에서도 선정되지 못 하고 있다. 저는 그동안 을이라는 이유로 참아왔다. 자신과 친분이 있는 제작사가 <세계테마기행>을 제작하도록 하기 위해 그랬던 것으로 추측한다. 정확한 저의가 무엇인지 검찰이 밝혀주리라 기대한다. 더이상은 EBS 외주제작부서가 갑질을 하지 않기 바라고 독립PD들이 마음껏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기 바란다"

이에 대해 EBS는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18일 오전 기사 게재 후 EBS는 같은 날 오후 <PD저널>에 반론을 밝혀왔습니다. <PD저널>은 기사 게재 과정에서 진위 여부와 양측의 시각이 첨예하게 갈릴 수 있는 논쟁의 사안에 대해 EBS의 이야기를 충분히 싣지 못한 점을 충분히 공감하고 기사를 보완합니다. *편집자 주)

EBS는 우선 공식 보도자료를 통해 “B 독립 PD(이하 B 제작팀장)가 말한 주장은 사실과 다르며, 제작진의 안전문제와 프로그램의 완성도를 위해 제작사에 제작시스템 개선 요구를 하기 위한 면담이었다”고 알렸다.

이어 “당시 프로그램 담당 CP는 해당 외주제작사에서 연출료를 받고 일하는 독립 PD와 작가들이 제작인력 부족, 현장 안전 문제 등 해당 제작사의 제작시스템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고충을 듣고, 제작시스템 전반에 대한 사실 확인을 하고자 B 제작팀장과 회의실에서 면담을 진행했다”고 주장했다.

EBS는 B 제작팀장과의 만남에 대해 “당시 해당 외주제작사 대표는 해외출장 중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또한 “(담당 CP가 B 제작팀장을) 감금하거나 협박하지 않았다”면서 “담당 CP는 연출 PD들과 B 제작팀장의 주장이 엇갈려 명확한 사실관계 파악을 위해 녹음을 하려 했으나, B 제작팀장이 녹음을 거부하고 회의실을 나갔다”고 반박했다.

EBS는 “녹음 대신 당시 외주제작부장 배석 하에 B 제작팀장에게 20~30분에 걸쳐 조연출 및 보조작가 운영 인원, 출장 인원 및 조연출 동반 여부, 현지코디 및 운전기사 고용 여부 등 제작시스템에 대해 묻고 답변을 들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EBS는 이 내용을 바탕으로 제작인력 확보 등 제작진 안전문제와 프로그램 완성도를 위한 제작시스템 개선 사항을 해당 외주제작사 대표에게 전달하고, 대표로부터 제작시스템 개선에 대한 확답을 들었다”고 주장했다.

EBS는 B 제작팀장이 ‘J 회사가 이 일이 벌어진 후 EBS 공모에 선정되지 못 했다’는 취지로 주장한 것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이들은 “해당 외주제작사는 당시 <세계테마기행> 제작사로 재계약하기로 결정됐으며, 2015년 하반기(6개월) <세계테마기행>을 제작했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EBS의 한 관계자는 <PD저널>과의 통화에서 “B 제작팀장에게 질문을 한 건 당시 J 회사에서 일하는 PD, 작가들의 고충을 듣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였다”며 “담당 CP에게는 그럴 의무가 있다”고 부연했다.

‘J 회사 대표와 B 제작팀장이 해외 촬영 당시 현지 코디를 고용하지 않거나 운전기사를 따로 고용하지 않는 등 안전 문제에 소홀했다’는 게 EBS 관계자의 주장이다. EBS 관계자는 J 회사 PD와 작가 등을 통해 이 같은 문제를 파악했다고 주장했다.

B 제작팀장은 기자회견에서 EBS 담당 CP인 Y 부장이 자신을 회의실에 감금, 협박했다고 호소했다. EBS 관계자는 이에 대해 당시 자리에서 ‘통상 해외 출장 인원과 현지 코디 유무, 운전기사 고용 유무, 큐레이터 선정 경위, 인센티브 지급 내역 등’을 질문했다고 반박했다.

이밖에도 익명의 한 PD는 “왜 박 PD가 남아공에 가기 전 불이익 받을 수 있는 일들을 알리고, 바꾸려고 했는지. 3년 전의 일이 기억이 나서 이야기 하고 싶어서 나왔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KBS 본사에 만드는 프로그램의 촬영을 갔다. 박 PD가 계속 해왔던 사자와 밀렵 등에 대한 다큐를 3, 4일만에 촬영하는 계획이었다. 그 시간동안 밀렵 현장을 포착할 수 있다고 예상한 것도 우습다. 역시나 취재를 못 했다. 사자와 코뿔소 단 한 마리도 못 찍었다. 우리에 갇힌 사자 한 마리 찍은 게 다였다. 본사 PD와 고민을 하다가 그 대안에 대해 본사 측에서 며칠 뒤 방송 예정이던 박환성 PD가 만든 환경스페셜 다큐 영상을 쓰면 된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이에 자리에 있던 사람들의 탄식과 야유가 쏟아졌다. 

이어 “왜냐면 박환성 PD는 납품을 하고 나면 저작권을 갖지 못 하기 때문이었다. 8분 짜리 꼭지 중에 2, 3분 이상이 박환성 PD의 영상으로 채워졌다. 그 방송을 보면 굉장히 부끄럽다. 고 박환성 PD도 자신이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사자 앞에서 찍었던 본인의 영상이 남의 연출자 이름으로 버젓이 나갔단 걸 이미 알고 있었을 거다. 수십 차례 겪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서 방불특위 미디어연대분과장인 한경수 PD(<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프로듀서)는 방불특위로 제보된 몇 가지 사례를 소개했다.

“지난달 모 방송사 프로그램 위해 1500만원을 협찬받았다. 모 방송사는 제작비로 60%를 가져갔고 저작권도 가져갔다”

“내가 유치해 온 협찬금의 절반을 방송사에 뜯겼고 저작권도 뜯겼다. 내가 만들었던 영상을 쓰려했더니 사용료 내라고 해서 냈다. SBS 사례다”

송규학 한국독립PD협회장은 “박 PD가 다큐멘터리 <코끼리 소년의 눈물>을 제작할 때, 본인이 예전에 만들었던 EBS <다큐프라임-소년과 코끼리>의 영상을 쓰기 위해 EBS와 논의했다. 촬영 원본에 대해서는 저작권을 나눈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EBS에서는 필요한 부분에 대해 돈 주고 사는 게 서로 편하다고 했다. 그게 실체다. (촬영 원본을 공유한다는 말도 없는) 다른 방송사의 실체는 그럼 어떤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故 박환성 PD가 제작 중이던 <코끼리 소년의 눈물>은 ‘아시안 피치(The Asian Pitch)’ 지원작에 선정돼 지원금을 받았으며, 오는 10월 경 한국(KBS), 일본(NHK), 대만(PTS), 싱가포르(MediaCorp)에서 송출될 예정이었다.

송규학 한국독립PD협회장은 “저는 더 이상 슬퍼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런데도 말할 때마다 목이 메인다”고 운을 띄우며 “불공정행위 청산은 저희가 더 많은 임금 받기위해서가 아니다. 시청자들이 누려야 할 당연한 권리를 돌려드리기 위함”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사실 20년 전에는 이런 게 문제라고 인식하지 못 했다. 너무나 당연히 ‘방송사에서 하니까’, ‘선배들이 해왔으니까’라고 생각했다. 이 프로그램에 방송할 기회가 주어진 것에 의미를 두고, 문제 제기하면 선배들은 ‘너 돈 벌려고 이거하니? 돈 벌려면 다른 거 했어야지’라고 했다. 후배들에게 너무 미안하다. 하지만 그런 말 있잖나.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가 가장 빠른 거라고. 지금이라도 공론화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이제는 멈출 수가 없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송규학 한국독립PD협회장은 “방송사가 갑질을 숨기려한다기보다는 불공정 관행을 갑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게 문제라고 본다. 이 문제가 끊임없이 이어져왔다는 건 한 번도 갑질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는 것”이라고 지적하며 “협회원 뿐만 아니라 모든 PD들, 이제 방송사 PD나 독립PD 이런 단어가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 ‘방송 PD’로 같이 일할 수 있는 그런 환경 만들어가겠다”고 밝혔다.

한편, 방송사의 불공정 관행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꾸준히 있었다. 2015년 MBN 프로그램을 제작하던 독립PD가 MBN의 담당 PD에게 폭행당했던 사건을 계기로 독립PD들의 노동인권과 제작 관행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방송사 외주제작 구조의 문제점과 관련 종사자들의 열악한 노동인권 실태를 짚어보는 한편 이에 대한 해결방안을 논하기도 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을지로위원회,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독립PD협회는 ‘방송사 외주제작 프리랜서 노동인권 실태 긴급 증언대회’를 열었다.

그해 9월에는 전국언론노동조합과 한국독립PD협회가 공동으로 ‘방송사 외주제작 프리랜서 노동인권보장을 위한 제도개선 TF'에서 독립PD 노동인권 긴급실태조사 보고서를 냈다. 해당 보고서에서는 △외주제작구조의 개선 △외주제작사에 대한 법적 지위 부여 △외주제작 가이드라인 도입 △표준계약서(표준제작비) 도입을 제안했다.

그해 국정감사 때는 ‘종편 및 방송사 독립제작 관행 실태조사(독립PD에 대한 인권침해, 불공정 계약, 부당한 제작 침해 사례 인터뷰)’(최선영 이화여대 교수)가 실리기도 했다. 실태조사 자료집 중 ‘방송사와 불공정한 계약을 맺은 사례’에서는 이날 소개됐던 것과 비슷한 사례들이 이미 소개됐다.

하지만 그 이후로 외주제작 가이드라인 도입이나 표준계약서 의무화 등은 이뤄지지 않았다. 

▲ 지난 2015년 8월, 박환성 PD가 아프리카 케냐에서 독립PD협회로 보내온 MBN 규탄 피켓이 담긴 사진이다. ⓒ한국독립PD협회

다음은 2015년 국정감사 자료집 ‘종편 및 방송사 독립제작 관행 실태조사(독립PD에 대한 인권침해, 불공정 계약, 부당한 제작 침해 사례 인터뷰)’(최선영 이화여대 에코크리에이티브 협동과정 대학원 특임교수) 중에서 소개된 내용 중 일부다. 

▷“제작비를 맞추는데 온 신경을 써야하면, 장비를 좋은 걸 써야하는데 못 쓰니까 뭐 6mm 카메라를 이용해야 된다. 결국 사실은 잘 전달하기 위해서 협찬을 받고 이렇게 진행을 하는건데 결국 제작여건은 협찬을 받았다고 해서 더 좋아지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례자2)

▷“인권침해, 장시간 노동, 사회안전망 부재 등 수많은 문제들의 출발점이 말도 안 되는 제작비 산정에서 시작되는 것 같다. 같은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도 인하우스팀(방송사 내부팀)과 독립제작팀과의 차이가 너무도 크기에 그 공백을 메우려 하다 보니 발생하는 문제들”(설문 응답자 13)

▷“현실적인 제작비를 반영한 인건비에 대한 구체적인 표준제작비 기준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제작비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터무니없는 인건비를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설문 응답자 6)

▷“방송사에서 책정하는 표준제작비가 형편없기에 결국 인건비와 진행비가 깎이게 되고 일의 질을 떨어뜨린다. 돈을 아끼기 위해 인원을 줄이면서 지옥같은 근무환경이 이어지고 있고 그것이 당연한 것인양 받아들여지고 있다”(설문응답자 15)

▷"저희가 해외 코디들에게 물어본다. 본사 PD들이 제작하는 프로그램과 외주 제작사가 제작하는 프로그램 PD가 어떻게 다르냐고. ‘아 본사 PD들은 하루에 촬영 하나 이상 잡으면 뭐라고 해요’, '외주 PD들은 하루에 하남나 잡으면 코디가 일 안 한다'고 뭐라고 해요'. 그만큼 본사는 제작기간이 여유가 있다. 제작비가 여유가 있으니까. 이 사람들은 하루에 하나씩만 찍어도 제작비에 문제가 없다는 거다. 그런데 외주 PD들은 제작비가 부족하기 때문에 하루에 두 개 세 개 찍어야 된다는 거다.

예전에 어떤 독일에 있던 코디 분이 저에게 그러더라. 독일은 뭔가 원칙주의적이고 사전 약속이 아니면 촬영하기가 상당히 어렵다. 그런데 저희는 되게 무리하게 여러 가지 요구를 한 거다. 그러니까 그 코디분이 저보고 ‘그렇게 일 하다가 죽는다고. 너무 무리하지 말라고. 왜 이렇게 무리하냐고. 그렇게 일하다가 죽는다고’ 그 말이 저한테는 되게 무섭게 다가오더라"(사례자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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