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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드라마 PD들 폭로 “‘악질’ 제작사 몰아주기 있었다”

기사승인 2017.09.29  08:4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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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운드 테이블] MBC 드라마 PD들이 밝힌 2012년 파업, 그 이후…김성욱·박상우·박상훈 PD

[PD저널=이혜승 기자] “MBC는 드라마랑 예능만 해라”

MBC 뉴스·시사 프로그램의 불공정한 보도를 보며 많은 시청자들이 이 같은 쓴 소리를 내뱉곤 했다. 하지만 지난 이명박-박근혜 정권 9년 동안, MBC 안에서 드라마·예능본부 역시 결코 온전하지 못했다.

드라마 산업 환경이 급격히 변화하는 시기에 MBC 드라마본부는 오히려 퇴화했다. 드라마본부장은 자신의 실적을 쌓고 경영진에 적자 부담을 안기지 않기 위해 ‘저예산-고시청률’만을 고집했다. PD들에게는 이전처럼 직접 기획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고, 위에서 시키는 드라마만 연출해야 했다.

2013년 마지막 신입 공채 이후에는 ‘드라마 경력’이 아닌 ‘경력 PD’들이 들어왔고, 계약직 조연출이 대폭 늘어나 선후배 조직은 무너졌다. MBC 드라마 PD들은 특히 장근수 드라마본부장이 재직한 5년 동안, 타방송사에서는 받지 않는 ‘악질 제작사’가 MBC와 유독 많은 프로그램을 계약해왔다고 폭로했다.

<PD저널>은 최근 상암동 MBC 근처에서 2007년에 입사한 MBC 드라마 PD 2명과 2013년 마지막 공채로 입사한 드라마 PD 1명을 만나 MBC 드라마본부의 2012년 파업 그 이후의 이야기를 들었다. <편집자주>

▲ 최근 상암동 MBC 근처에서 2007년에 입사한 MBC 드라마 PD 2명과 2013년 마지막 공채 당시 입사한 드라마 PD 1명을 만나 2012년 파업 이후의 MBC 드라마본부 이야기를 들었다. 사진 왼쪽부터 김성욱, 박상훈, 박상우 PD ⓒ김성헌

박상훈 PD 2007년 입사. 2014 드라마페스티벌 단막극 <기타와 핫팬츠>, 2017 세 가지 색 판타지 <생동성 연애> 등 연출. 주말드라마 <여자를 울려>, 일일드라마 <아름다운 당신>, 수목드라마 <자체발광 오피스> 등 공동연출.

김성욱 PD 2007년 입사. 2014 드라마페스티벌 단막극 <하우스, 메이트> 연출. 일일드라마 <위대한 조강지처>, 주말드라마 <아버님 제가 모실게요>, 수목드라마 <굿바이 미스터블랙> 공동연출.

박상우 PD 2013년 입사. 수목드라마 <트라이앵글>, <앵그리맘>, 주말드라마 <엄마> 등 조연출.

“장근수 드라마본부장(현 MBC강원영동 사장)이 취임해서 5년 동안 장기집권 했다. 그렇게 오래 한 사람이 드라마국에 없었다. 그분의 드라마관은 긴 프로그램을 해야 한다는 거다. 긴 드라마는, 극성이 세야 한다. 극성이 세다는 건 소위 말하는 ‘막장’을 말한다. 젊은 PD들에게 그걸 강요하면서, 그게 싫으면 국을 나가라고 한다”

박상훈 2012년 파업 이후 조직문화가 경직된 게 제일 큰 것 같다. 그전에는 선후배간 형동생 문화가 있어서 편하게 의견을 제시하는 분위기였는데 그런 문화가 없어졌다.

김성욱 이전에는 국장도 형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회사가 시키는 것만 해야 하는 회사원이 됐다. ‘하기 싫으면 나가라. 다른 부서로 보내주겠다’ 이런 게 일상적인 압력이 됐다. 좋은 드라마가 아니라는 것에 동의하면서도 시킨다. 그러면서 ‘시키는데 왜 안 해?’ 이런 식이다.

박상훈 장근수 드라마본부장이 취임해서 5년 동안 장기집권 했다. 그렇게 오래 한 사람이 드라마국에 없었다. 그런데 그분의 드라마관은 긴 프로그램을 해야 한다는 거다. 긴 드라마는, 극성이 세야 한다. 극성이 세다는 건 소위 말하는 ‘막장’을 말한다. 젊은 PD들에게 그걸 강요하면서, 그게 싫으면 국을 나가라고 한다.

김성욱 드라마관도 그렇고, 장기집권을 하고 싶어 했다. 그럼 단기적인 성과를 계속 내야 하는데, 극성을 세게 해야 시청률이 나오지 않나. 우리는 2049 시청률을 보는데 이 사람은 중년 이상 여성, 고정적으로 TV를 보는 세대만 타깃으로 했다. 연출PD들은 그 타깃으로만 가기 싫은데 그쪽이 원하는 성과는 그거였다.

박상훈 젊은 시청자가 떠난 주된 이유 같다. 장기적으로 MBC를 봐야 할 젊은 시청층이 꾸준히 이탈하면서 지금 드라마 경쟁력이 떨어졌다.

김성욱 지금까지 MBC를 나간 드라마 PD들이 단지 돈이나 기타 등등의 문제만으로 나가지 않았다. 회사와 소통이 안 되고 원하는 작품을 할 수가 없고, 인정해주지 않는 분위기니까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어서 나가는 거다. 위에서는 자꾸 50부작 막장 드라마만 하라고 하니까.

박상훈 드라마를 기획하는 경로는 여러 가지다. 제작사를 통해 기획안이 들어오면 데스크가 골라서 연출에게 추천하거나, 연출이 작가와 만나 주도적으로 기획해 회사에 가져오는 방식이 있다. 전반적으로 업계에서 PD 힘이 줄어들고 있긴 하지만, MBC는 2012년 파업 이후 더 심화됐다. 연출이 기획해서 들고 가면 데스크에서 까이고, 데스크가 골라놓은 대본들, 주로 길고 극성이 세면서 완성도는 높지 않은 것들만 강요했다. 이걸 거부하면 다른 부서로 보내겠다고 협박했다. 협박을 고민하다 회사를 나간 분이 몇 분 계신다. 2012년 이후에도 PD가 기획한 것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 공모전에서 당선돼서 한 것들이다. 그건 정말 소수다. 그리고 석연치 않은 경로로 들어온 프로그램을 편성하기 시작하면서 지금은 기획력을 많이 잃어버렸다.

박상우 기본적으로 단막극이 PD들에게 기획할 기회를 주는데 MBC는 재작년 이후로 단막극 프로그램이 사라졌다.

박상훈 젊은 PD들이 입봉 하려면 장이 필요한데 사라졌다. PD들이 직접 콘텐츠진흥원, 전파진흥원 도움을 받아서 준비한다. 최근 연출했던 3부작 드라마 <생동성 연애> 등 ‘세가지색 판타지’(3부작 드라마 세 편)는 외부에서 돈을 받아오는 것보다 내부에서 조율하는 게 더 힘들었다. 오히려 제작비를 지원해준 네이버에 감사할 정도다. 이렇게 다변화하는 시장에서 다양한 시도를 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살아남으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김성욱 박상훈 PD와 내가 이제 만 10년차다. 선배들은 이때쯤이면 직접 기획한 드라마를 했다. 하지만 우린 이미 할 시기가 지났는데 막장 드라마만 시킨다. 마침 회사가 원치 않게 너무 많은 드라마 PD가 한꺼번에 회사를 나가서 우리 후배들에게 기회가 온 적이 있다. 그런데 드라마 국장이 우리들에게 “당신들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직접 말했다. 이해할 수가 없다. 어떻게 보직국장이 구성원들을 신뢰하지 않을 수 있는지...그들이 신뢰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이 우리를 신뢰하지 않더라도 공식석상에서 조직원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조직 구성원들을 부속품으로 보는 행위인 거다. 개개인의 연출자로 바라봐주지 않는 행위다. 드라마국이 얼마나 무너졌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 박상훈 MBC 드라마 PD ⓒ김성헌

“KBS, SBS에는 못 들어가는 제작사가 있다. PD들이 '그 제작사는 문제가 있어서 받지 않겠다'고 하는. 그런데 MBC에서는 한다. PD들이 ‘이 제작사 안 된다’, ‘문제가 있다’고 해도 무력화된다. 2012년 이후 소수 제작사들이 MBC 드라마를 과점하고 있다. 작품 한 제작사들 리스트업을 쭉 해보면 몇 개 눈에 띄는 제작사들이 있을 거다. 장근수 드라마본부장이 부패해서 그들에게 특혜를 준 거라고 생각한다"

박상훈 단기 성과를 위해 드라마 제작비도 줄였다. 현 경영진을 도와주기 위해, 적자가 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거다. 그런데 제작비를 줄이면 어떤 문제가 발생하느냐면, 촬영 일수를 줄여야 한다. 촬영 일수를 줄여야 한다는 건 스태프들을 착취해야 한다는 거다. 우리는 현장리더니까, 같이 일하는 스태프들을 본의 아니게 착취해야 한다. 너무 괴롭다. 예를 들어 연속극 같은 경우 5일 찍어야 하는 분량을 3일 정도에 끝낸다. 그럼 매일 밤을 새야 한다.

김성욱 물론 많이 반성된다. 새벽 4시, 5시에 깨서 스태프들이 조는 걸 보면, 내가 이렇게 산다고 좋은 드라마를 하는 것도 아니고 시청자들이 이 고혈로 만들어진 드라마를 보는 건데...욕을 해가면서 이 일을 해야 하나 괴롭다. 현장에서 바꾸려고 노력은 하지만 구조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개인적으로 바꿀 수 있는 게 너무 적다.

박상우 제작사에서는 며칠 이내로 무조건 끊으라는 요구가 들어온다.

김성욱 기본적으로 작가와 배우에게 들어가는 비용은 늘어나는데, 제작비는 그대로면 현장에서 죽어나가는 건 스태프들이다. 그렇다고 자유계약인데 작가와 배우에게 돈을 더 받지 못하게 하는 것도 모순이다.

MBC는 적은 돈으로 우리 회사에서 만들라고 하고, 제작사도 먹고 살아야 하니까 제작비를 줄인다. 예전에는 자정이 넘어가면 스태프들 주는 비용에 할증이 붙고, 새벽 4시 넘으면 할증이 붙고 그랬다. 오래 일하면 돈이라도 더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24시간으로 계약한다. 오전 6시에 출발하면 다음날 6시까지는 같은 비용을 받는 거다. 그럼 제작사 입장에서는 하루라도 더 줄이는 스케줄을 짠다.

박상훈 MBC뿐 아니라 전반적으로 그런 경향이기는 하다. 하지만 일부 악질 제작사는 문제 소지가 있다.

김성욱 대부분의 선량한 제작사들은 그렇게까지는 안한다. 그런데 유독 악질 제작사들이 있다. 그리고 하필 그 악질 제작사들이 MBC 파업을 전후해 지금까지 MBC에서 많은 작품을 했다.

박상훈 예를 들어 KBS, SBS에는 못 들어가는 제작사가 있다. PD들이 '그 제작사는 문제가 있어서 받지 않겠다'고 하는. 그런데 MBC에서는 한다. PD들이 ‘이 제작사 안 된다’, ‘문제가 있다’고 해도 무력화된다. 2012년 파업 이후로는 아예 대놓고 들어왔다. 2012년 이후 소수 제작사들이 MBC 드라마를 과점하고 있다. 그동안 작품을 했던 제작사들 리스트업을 쭉 해보면 몇 개 눈에 띄는 제작사들이 있을 거다. 장근수 드라마본부장이 부패해서 그들에게 특혜를 준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들이 심증은 있고, 물증은 찾으면 있을 것 같다.

김성욱 내부고발이 필요하지 않을까.

▲ 김성욱 MBC 드라마 PD ⓒ김성헌

박상훈 예산을 줄인 후에 다양한 장르를 할 수도 없다.

김성욱 로맨틱코미디 아니면 막장. 그 돈으로 할 수 있는 건 그거뿐이다.

제일 무서운 건 창작을 하는 사람들이 자기검열에 빠지는 거다. 캐스팅을 할 때부터 ‘이래서 못하겠지? 이러면 싫어하겠지?’ 생각하게 된다. 예를 들면 ‘정치물은 못하겠지?’ 이런 것.

박상훈 돈 때문에 못하는 장르도 있다. SF, tvN <도깨비> 같이 CG 많이 들어가는 건 아예 시도도 못한다.

김성욱 배우도 안 붙는다.

박상우 조연출은 제작사와 싸울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조명 크레인 장비가 있다. 사용할 때 몇 백만 원 하는 장비인데, 연출이나 조명감독이 오늘은 써야 한다고 해도 제작사에서 이걸 왜 써야 하냐고 빼달라고 한다. 그럼 조연출은 이날 보조출연을 덜 쓸테니 이걸 쓰게 해달라고 합의를 본다. 그리고 연출한테 가서 이날은 보조출연을 줄이셔야 한다고 말하고...모든 게 돈이 우선이 된다. 좋은 드라마를 만드는 게 목적이 아니라, 이익을 남기는 게 목적이다.

김성욱 회사가 제작사를 압박하고, 제작사가 연출을 압박한다. 단적으로 조명 크레인은 다른 방송사는 잘만 쓰더라. 조명 크레인을 쓰면 두 가지 효과가 있다. 8시간 동안 찍을 걸 2시간 안에 찍는다. 조명 크레인을 쓰지 않으면 밤을 새야 한다. 또 화각이 넓다. MBC 드라마에서 넓은 화각을 찍기 어려운 건 돈이 없어서 그렇다. 그걸 세팅할 여력을 주지 않으니까. 작가들이 상상의 나래를 펴서 열심히 적어서 주는데, 우리가 표현을 못해주는 거다.

박상훈 돈이 없으면 창작력이 제한되고 그림이 안 좋아진다. MBC 화면이 안 좋지 않나.

박상우 풀샷이 없어진다. 바스트만 찍고 배우한테 의존한다.

김성욱 점점 더 배우에게 의존하게 된다. 좋은 배우와 일하는 건 좋은 일인데, 그 배우만 가지고 드라마가 될 수는 없다. 배우가 연기를 더 잘할 수 있게 해주는 여건도 중요하고, 연출자가 창의력을 펼치는 것도 필요하다. 예전에는 압박이 없지는 않았지만 상황에 필요하면 필요한대로 했는데 이제는 눈 딱 감고 그냥 줄이게 된다.

박상우 MBC는 이른바 물가상승률을 제작비에 전혀 반영하지 않는다. 스태프 비용도 상승해 예전이랑 엄청나게 다른데, 예전에 비해 오른 걸 반영해주지 않는다. 5년 전, 10년 전에 맞추라고 한다. 그럼 우리는 또 스태프들 받는 돈을 후려쳐야 한다.

김성욱 조연출 애들이 자기 돈 줘가면서 줄인다.

박상우 너무 미안하다. 다른 회사가 400만원 주면 MBC는 250만원 주는 식이다. 내가 나쁜 사람이 된다.

박상훈 후려치면 유능한 조연출을 데려올 수도 없다. 좋은 스태프들이 실제로 tvN으로 많이 갔다.

박상우 스태프들이 신세한탄할 곳이 조연출밖에 없으니까 와서 말한다. 자기도 너무 하기 싫은데, 이번엔 누구누구 연출이니까 이사람 때문에 자기가 참고 하는 거라고 한다. 인간관계 때문에 그들이 참고 해주는 거다.

김성욱 조연출 때부터 오래 알면서 같이 일하는 스태프들이 있다. 서로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과 일을 하면 시너지 효과가 난다. 그런데 이렇게 미안해하면서 일을 하기가 좀 그렇다.

▲ 박상우 MBC 드라마 PD ⓒ김성헌

“조연출을 할 때, 선배들이 '앞으로 넌 연출이 될 친구니 일만 하지 말고 보고 배우라'고 가르쳤다. 그런데 계약직 후배들에게는 ‘넌 연출이 될 친구’라고 말을 못한다. 언젠가 너도 연출을 할 거니까 이것도 공부니 버텨보자는 얘기를 할 수가 없다. 꿈을 찾아서 온 직업인데 꿈을 꿀 수 없고 꿈 없이 일을 한다”

박상우 이명박-박근혜 시절 가장 무너진 건 인력구조다. 신입공채가 사라졌다. 우리 동기들이 가장 이슈로 삼고 싶은 건 인력구조의 정상화다. 이번 파업 때 이벤트로 동기들에게 티셔츠를 만들어서 돌렸다. ‘4년째 막내중’ 문구를 등에 적었다. 난 그래도 계약직 후배들이 있지만 기술국 등의 동기들은 후배가 아예 없다. 왜냐하면 경력직으로만 뽑아서, 선배라고 불러야 하는데 나이는 애매한 사람들이 막 쌓였다. 드라마국도 우리 기수 후에 들어온 사람들은 다 1년 계약직이다.

우리 기수는 부채의식이 있다. 우리가 2013년에 들어와 단체로 노조 가입을 하는 바람에 신입공채가 없어졌다고 소문이 났다. 경력으로 들어온 후배들은 국장으로부터 노조탈퇴를 종용받았다.

김성욱 노조를 탈퇴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주겠다는 건 부당노동행위다. 국장이 할 일이 아닌데 윗선에서 노조가입을 막으라는 지령이 떨어진 것 같다.

박상우 경력직도 이 분야에서 몇 년 이상의 경력을 가저야 하는 게 아니라, 어느 분야든 사회생활 6개월 경력만 있으면 뽑겠다고 했다. 굉장히 기만하는 거다. 경력뿐 아니라 파견직, 계약직 비율도 엄청나게 높아졌다. 현재 조연출이 38명 정도인데 정규직은 12명이다.

김성욱 기형적이다.

박상우 그들은 파업을 할 수 없으니 우리가 빠진 자리를 그들의 더 큰 노동력으로 메운다. 지금도 둘이 할 일을 혼자 떠맡고 있다. 우리는 그들의 희생 위에서 파업을 하고 있는 거다. 조연출도 메인 조연출과, 막내 조연출이 따로 있는데 지금은 막내 조연출이 메인 조연출 일까지 한다. 신입을 안 뽑으니 메인은 적고 막내만 많다.

1년 계약직이라는 이상한 시스템이다. 이들을 보호해줄 장치가 없다. 1년하고 회사에서 마음에 안 들면 잘려서 나가고, 아니면 겨우 1년 연장계약을 한다. 그렇게 계약직을 2년 하면 프리랜서로 전환한다. 프리랜서 2년까지 4년을 하고 나면, 보통은 현장 일을 맡겨야 하는데 이들은 계약이 끝나버린다.

김성욱 조연출로 착취하고 버린다.

박상우 내가 들어올 때 신입 공채 동기가 나를 포함해 두 명이었다. 그리고 계약직 동기가 두 명 있었다. 비슷한 시기에 들어왔는데 이제 그 친구들은 조금 있으면 프리랜서다. 요즘 ‘농사를 지어야 하나’ 하고 말한다. 예전에는 경력 공채도 이런 편법이 아니라 조연출이 경력으로 전환될 수 있도록 하는 기회가 됐었는데, 이제는 그 희망을 완전히 없앴다. 그들은 버릴 사람이라는 걸 주지시킨다.

현 이주환 드라마본부장이 부국장이던 시절에 “프리랜서가 왜 프리랜서냐. 자기 밥그릇 자기가 챙겨야지” 하고 말했다. 자체제작이든 외주제작이든 우리 시스템에서 커온 프리랜서와 일하겠다고 하니, 그들을 배정해주지 않으면서 그렇게 발언했다. 우리 회사에서 조연출로서 노하우가 쌓인 기간을 그냥 버리는 거다. 그건 회사차원에서도 낭비다.

김성욱 조연출을 할 때, 선배들이 '앞으로 넌 연출이 될 친구니 일만 하지 말고 보고 배우라'고 가르쳤다. 어떤 선배들은 조연출에게 질문도 하고, 너는 이걸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보면서 배우게 했다. 이걸 찍어보라고도 하고. 그렇게 선후배가 배워가면서 하는 건데, 계약직 후배들에게는 ‘넌 연출이 될 친구’라고 말을 못한다. 언젠가 연출을 할 거니까 이것도 공부니 버텨보자는 얘기를 할 수가 없다. 같이 일할 때 미안하다. 꿈을 찾아서 온 직업인데 꿈을 꿀 수 없고 꿈 없이 일을 한다.

박상우 파견직 조연출한테는 명함도 안준다. MBC 사람이 아니라서 MBC 로고가 박힌 명함을 줄 수 없다고 하더라.

김성욱 보장해주지 않을 거면 아예 프리랜서로 계약해서 조연출을 시키면 되는데 그렇게 하지도 않는다. 다른 회사 경력 조연출 창구가 우리 회사가 됐다. 여기서 몇 년 일하다 다른 곳으로 가는 거다. 사관학교가 됐다.

박상훈 지상파 방송사 중에 이렇게 하는 곳이 없다. SBS는 매년 공채를 뽑아 조연출 업무강도는 높지만 빨리 입봉하게 해준다. KBS는 야외조연출 프리랜서, 스크립터 출신 프리랜서를 고용한다. MBC에서만 이렇게 하는 것 같다.

박상우 우리 기수가 입봉할 때 맡길 조연출이 없다. 우리 밑 기수가 막내 조연출도 하고 야외도 찍고 해야 하는데 지금은 언제 잘릴지 모르는 친구들밖에 없다. 막내를 또 파견직으로 고용하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조연출을 하니까 비효율이 반복된다.

계약직, 파견직으로 너무 막 뽑아놓으니까 선배들이 후배들을 아예 모른다. 예전에는 매년 두 명씩 들어오니 같이 술도 마시고 하면서 선후배가 됐는데 이제는 복도에서 지나가도 인사를 못한다. 누군지 몰라서 못한다.

김성욱 시도때도없이 막 뽑으니까.

박상우 장기 플랜이 전혀 없다. 인력운용계획도 전혀 없다. 말도 안 되는 조직문화다. 정도 못붙인다. 언제 나갈지 모르니까.

▲ 박상훈 MBC 드라마 PD ⓒ김성헌

“위에서 이래라저래라 작품을 망가트린다. 안광한 전 사장이 제일 황당했다. 나이 든 배우들 얼굴 클로즈업샷, 바스트샷을 찍지 말라고 드라마 PD들에게 전체 공지가 왔다. 주름이 자글자글해서 꼴 보기 싫다는 거였다”

박상훈 작가들도 MBC를 기피한다. tvN 등등 돌다가 다섯 번째로 마지막에 온다. 예전에는 가장 드라마하고 싶은 채널이 MBC였는데, 이렇게 주먹구구식으로 편성하고 예산을 줄이니까 좋은 그림을 확보할 수가 없다. 돈도 없고 그나마 잘하는 연출들은 다 밖에 나가버린 상황에서 작가들이 MBC를 선택하기 힘들다.

김성욱 MBC에 들어와서 작품이 더 발전될 거라는 희망이 없다. 연출자와 작가가 서로 얘기를 하는 게 아니라, 위에서 이래라저래라 작품을 망가트린다. 2012년 파업 이전에는 드라마 PD들도 평PD회를 해서 문제가 되는 일들을 모여서 얘기하고, 국장도 함부로 거절하지 못했는데 이제 그렇지 않다. 

안광한 전 사장이 제일 황당했다. 나이 든 배우들 얼굴 클로즈업샷, 바스트샷을 찍지 말라고 드라마 PD들에게 전체 공지가 왔다. 주름이 자글자글해서 꼴 보기 싫다는 거였다. 연출이 필요하면 찍고 필요하지 않으면 찍지 않는 거지, 자기가 보기 싫다고 하지 말라는 게 말이 되나.

또 보도국 요구로 <뉴스데스크> 앞뒤에 드라마를 배치했다. 뉴스 시청률을 올리기 위해서다. <뉴스데스크> 앞에 하는 드라마는 광고가 ‘0’이다. 적자 프로그램을 하는 거다. 연출자는 내 프로그램이 성공하지 못할 걸 알면서도 들어가야 한다. 어떻게든 잘해보려고 하지만, 광고는 늘 ‘0’이다. 다른 드라마가 잘돼서 30, 40을 벌면 그 드라마가 50, 100을 까먹는다.

박상우 인력문제도 있다. 방송중인 프로그램에 연출 2명, 조연출 2명이 들어가는데 일일드라마가 하나 더 생기면 일을 해야 하는 인력이 12명이 빠진다. PD가 80명 남짓인데 12명이 새로 들어가면 인력 구성이 안 된다. 그럼 결국 또 파견직, 계약직 등 비정상적인 수법으로 사람을 채용한다. 연출도 쉬는 시간이 줄어들고, 그럼 기획할 시간이 줄어들고, 한 작품이 끝나면 바로 투입되니까 피로도가 쌓인다.

박상훈 준비가 잘 되지 않은 상황에서 프로그램을 해야 한다는 문제도 있다. 예를 들어 한 분기에 이런 걸 하겠다고 준비하는 건 한정돼있다. 작가도 한정됐다. 그 자리를 메우려고 하면 안 되는데 덜 준비된 대본으로 시작해야 하고 완성도는 떨어진다. 몇 년 전 장근수 본부장도 기획회의에 가서 그만하겠다고 했지만, 보도국이 그건 안 된다고 했다더라.

박상우 그외에도 윗선 간섭이 심하다. 얼마 전 미니시리즈 모 선배가 이 드라마와 너무 맞지 않는 PPL이라며 못 받겠다고 끝까지 거부했더니 국장이 “너는 회사에 해를 끼친 사람이다”라고 발언했다.

제목을 가지고도 태클을 건다. <역적>, <몬스터>가 그 예다. 제목을 바꾸라고 했다. <역적>은 당시 한창 박근혜 탄핵 요구가 높아지던 때였어서...제발저렸나보다. <몬스터>는 원래 제목이 '괴물'이었다. 그런데 자신들이 생각하기에 괴물이 위에 있는 사람들을 상징하는 것 같았나보다. <몬스터>도 하지 못하게 하는 걸 CP가 싸워서 지켜냈다.

김성욱 드라마 제목을 경영진이 관여할 일인가.

박상우 지금 하는 <밥상 차리는 남자>도 본부장이 자기 마음에 안 든다고 제목 컨펌을 거의 두 달 가까이 안 해줘서 프리프로덕션이 다 멈췄었다. 포스터, 로고 등등 다 거기에 맞춰서 찍어야 하는데 제목이 안 정해지니 아무것도 못했다. 이유도 모르겠다.

김성욱 PD와 작가들은 제목도 중요하지 않나. 자기 작품의 문인데...

▲ 김성욱 MBC 드라마 PD ⓒ김성헌

박상훈 최근 논란되는 블랙리스트, 화이트리스트도, 지난해 폭로된 정윤회 아들 정우식의 경우 장근수 본부장이 캐스팅하라고 종용했다. 연출들은 사장 아들인줄로만 알았다. 그 친구가 그렇게 위대한 친구인지는 몰랐다.

김성욱 정우식이 아니라 최순실 딸을 썼어야 했다.

박상훈 안광한 전 사장이 정치기반이 없어서 그걸 확보하는 차원에서 그렇게 했다고 들었다. 실제로 정우식 캐스팅을 강요하고, 관련 분량을 늘리라는 압박을 받았다. 편집을 어떻게 하라고까지 말했다.

김성욱 정우식 분량을 안 늘려주면 조기종연 시킨다고.

박상우 정우식이 검색어에 오르면 칭찬해줬다.

김성욱 예전 선배들은 서로 청탁하고 이런 게 전혀 없었다. 어느 정도였냐면, 좋은 애가 있으니 오디션만 한번 봐달라고 하는 것도 정말 미안해하면서 부끄럽게 말했다. 또 오디션을 보고 캐스팅을 안 해도 아무 말도 안하고 오디션을 봐줘서 고맙다고 했다. 서로 자존심이 강한 사람들이어서 함부로 건들지 않는다는 것이 서로 사이의 암묵적인 약속이었다. 지금은 막말해도 되는 그냥 아랫사람이 됐다.

실제로 블랙리스트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를 떠나서, 사회적 발언을 하는 배우를 캐스팅하려고 하면 일단 연출들이 자기검열을 하게 됐다. 그래도 캐스팅을 하려고 하면 위에서는 '안 쓰면 안 되냐'고 묻고, 결국 캐스팅하겠다고 해도 못하게 했다.

박상훈 밝혀진 대로 오상진, 김소영 아나운서는 연출이 캐스팅을 했더니 '그러면 방송 못한다'는 협박을 받은 적이 있다.

김성욱 화이트리스트도 있다. 기자나 리포터가 나오는 장면이 있으면 실제 기자들을 캐스팅하는데, 어느 순간부터 특정 몇 명 시용기자들만 보도국에서 보내줬다. 항상 보는 그 사람들만 들이민다. 시용기자들을 시청자에게 친숙하게 만들려는 시도를 하는 거다.

박상훈 정치가 내 인생에 그렇게 영향을 미칠 거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이번에 일이 터지면서 정치가 어떻게 돌아가는가가 드라마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는 걸 알았다. 박근혜가 드라마 현장을 방문하면 유수 선배들, 본부장을 비롯한 사람들이 다 나와서 현장을 설명하는 걸 본다. 왜 부끄러움은 우리의 몫인가...저런 사람들이 우리 부서에도 있었구나, 그때 생각했다.

드라마 하는 사람들은 안 그럴 줄 알았다. 인생에서 드라마가 너무 중요한 가치여서 가족도 잘 안 챙기고 부랑자처럼 사는데, 그만큼 드라마를 사랑하고 하루 종일 드라마얘기만 하는데 저렇게 정치적인 걸 보니 놀랍기도 하고.

박상우 이른바 드라마에 나오는 드라마 PD들 있지 않나. <그들이 사는 세상>에 나오는, 국장실을 뒤집어엎고...그런 사람을 나는 실제로 한 번도 못 봤다. 그런 시절이 있었다고 듣기만 했다. 나에게는 아직 드라마 속 이야기다. 형들에게는 현실이고.

▲ 박상우 MBC 드라마 PD ⓒ김성헌

“‘드라마쟁이가 파업해서 뭘 얻을 건데?’ 하는 논리다. 그들은 정치권 논리라고 계속 얘기한다. 그런데 파업에 동참하는 드라마국 선후배의 논리는 하나다. 부끄러워서. 이걸 감내할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럽다. 이 회사에서 일하는 게 자긍심이고 자랑이었는데, 이제는 보지 말라고 한다"

박상우 꿈꾸던 회사에 들어왔는데 아직도 그 회사는 꿈이다. 교사는 없고 반면교사만 넘쳐나는.

2013년 마지막 공채에 입사했다. 원래 tvN에서 3년 정도 예능 PD로 있다가 MBC에 너무 오고 싶어서 경력도 인정받지 못하고 신입으로 들어왔다. 당시 모든 언론고시생들의 꿈은 MBC였다. 그랬는데 들어와 보니 힘 빠진 콜라였다.

우리 모두가 꿈꾸던 어린 시절 MBC의 모습은 없었다. 일단 우리가 존경했던 선배들이 현업에 있지 않았다. 예를 들어 한학수 선배의 경우, 우리 세대에게는 한학수 선배가 쓴 책이 되게 유명했다. 지금은 개정판이 나와서 제목이 바뀌었는데 ‘여러분 이 뉴스를 어떻게 전해드려야 될까요’라는 책이다. 나도 그 책을 보면서 무조건 MBC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MBC에 들어와 한학수 선배를 보고, 와서 울었다. 분야가 달라도 이 사람들과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는 MBC에 가고 싶었는데, 현장에서 그분들이 배제된 모습을 보고 굉장히 망가졌다는 걸 느꼈다.

지난번 영상을 만든 보도국 막내 기자들이 우리 기수 동기다. 그들이 사과를 한다고 하는데 우리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이들에게만 짐을 지울 수 없으니까. 사실 그 영상도 내가 찍어줬다. 어떻게 보복을 받을지 모르니 겁이 났다. 그럼 차라리 내가 하는 게 마음 편하겠다 싶었다.

김성욱 드라마국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대외적인 일을 잘 못한다. 자기 일에만 집중하고. 그런데 그래도 MBC라는 회사에서, 우리가 돈을 벌어오면 그 돈으로 좋은 뉴스를 하고 좋은 다큐를 만든다는 데에 우리가 일조한다는 자긍심이 있었다. 다른 부서 사람들도 예능, 드라마 고생한다고 격려하고 위로해줘서 존중받는 느낌이었다. 월급보다 더 큰 가치였다. 그런데 그 느낌이 사라졌다. 우리가 돈을 벌어와 봤자 저따위 뉴스밖에 안하니까.

박상훈 드라마국에서 이렇게 열심히 파업에 참여하는 걸 처음 봤다. 모든 조합원이 다 참여한다. 이유는 그거다. 우리가 좋은 드라마를 만들어봤자 이 채널에서 보여준다는 게 부끄럽다. 그리고 이걸 봐줄 시청자가 남아있지 않아서 채널 자체를 바꾸지 않으면 좋은 드라마가 의미가 없어졌다.

김성욱 우리에게 이렇게까지 하지 말라고 하는 사람들의 논리는 ‘드라마쟁이가 파업해서 뭘 얻을 건데?’ 하는 논리다. 그들은 정치권 논리라고 계속 얘기한다. 그런데 파업에 동참하는 드라마국 선후배의 논리는 하나다. 부끄러워서. 이걸 감내할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럽다. 이 회사에서 일하는 게 자긍심이고 자랑이었는데, 이제는 보지 말라고 한다. 심지어 우리 애가 실수로 MBC를 보고 있으면, 채널을 삭제해야 하나 고민한다. 난 내 회사니까 다운받아서 보지만 남들이 보는 건 싫더라. 누군가 ‘드라마쟁이는 그러면 안된다. 관찰해야 하고 지켜봐야 한다’고 말하는데, 그 선배들은 그럼 부끄럽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박상훈 드라마국 선배들 중에도 전보된 사람들이 있다. 한 선배는 인터넷에 사측을 비판하는 글을 썼다가 일을 주지 않아서 1년 동안 공동연출도 못했다. 2012년에 시사교양국에 있다가 드라마국으로 넘어온 친구가 있었는데, 시사교양국 관련한 글 때문에 신천교육대로 보내졌다. 이후 드라마국 사람들은 이 친구가 드라마국에서 일을 잘할 친구라고 다시 데려와야 한다고 했지만 장근수 본부장이 끝까지 막아서 다른 부서를 전전하다가 결국 회사를 그만뒀다.

김성욱 다른 부서들 이야기를 듣다 보면 외형상으로는 그마나 드라마국이 다른 부서에 비해 많이 지켜진 것 같은데 계속 전보된 사람들이 있었다. 노조 정책국장을 하다 광고 마케팅 부서로 전보된 PD도 길거리에서 보면 계속 드라마국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하고...

박상훈 그럼에도 메인 연출들은 파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드라마는 다른 부서와 조금 다르게 장기 플랜을 가지고 한다. 미니시리즈는 기획부터 하면 2년, 최소 1년 걸린다. 혼자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외부와 관계를 맺으니까. 자기가 내려오면 작품이 망가지는 등 여러 압박을 받는다. 수많은 계약관계와 엄청 큰 돈이 걸려있다. 손배소 등 문제가 생기면 개개인이 받는 압박이 너무 크다.

김성욱 배우들도 스케줄을 미리미리 확정해서 시작한다. 그런데 지금 새로 시작하는 드라마들 일정이 밀리면 이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그 다음 라인업까지도 연쇄적으로 영향을 받는다.

▲ 사진 왼쪽부터 박상우, 박상훈, 김성욱 PD ⓒ김성헌

박상훈 캐스팅 단계까지 해놨는데 스톱하면 작품이 날아가고, 대본작업까지 해놨는데 파업이 길어지면 참여를 못하게 돼서 대본이 다른 회사로 넘어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만큼 내려와야 할 절실함이 있었다.

내가 그렇게 MBC에서 드라마를 만들고 싶었는데, 열심히 해서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었더니 지금 MBC를 봐줄 시청자가 없다는 게 너무 슬펐다. 그 다음 드라마를 만들 의지가 생기지 않았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서 방황하던 때가 있었다. 그때 김민식 선배가 MBC를 정상화시키기 위해 행동하는 걸 보면서, 그럼 차라리 이 시점에서 나에게 필요한 건 이 회사를 정상화시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민식 형과 얘기해보니 내 드라마를 보면서 형도 그런 생각을 했다고 하더라. 예전 MBC에서 했으면 젊은 시청자가 좋아하는 드라마였을텐데, 지금은 소위 태극기 부대만 MBC를 보니까 그게 너무 안타까웠다고. 드라마를 정상화시키기 전에 MBC를 정상화시키는 게 먼저인 것 같다는 그 얘기에 동감했다.

김성욱 지난 기간 동안 저렇게 악하게 살아야 성공하는 건가, 악마가 되기를 바라는 건가 생각했다. 작품을 잘해야 하는 건 당연한 지상과제인데 저렇게 착취하고 사람을 괴롭히고 남의 것을 뺏어야 성공할 수 있으면 그 성공이 내 삶의 목표인가...

지난번 2012년 파업 때 둘째딸이 태어났는데 파업과 같이 커서 지금 6살이다. 딸이 많이 아팠던 적이 있는데 드라마국 사람들이 성금을 걷어줬다. 처음에는 안 받는다고 버티다가 ‘네가 뭐 잘난 게 있어서 사람들 마음을 거절하냐’는 선배 말을 듣고 돈을 받았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돈인데 참 고마웠다.

그런데 그런 고마웠던 기억이 많아야 하는데, 지난 시간 동안 고마웠던 기억이 그거밖에 없다. 괴로운 사람들만 많고. 이 일을 10년 했는데 별로 한 게 없고 조연출만 오래 했다. B팀만 하면서 난 찍는 기계가 된 것 같다. 기껏 기획을 받아와도 회사에서는 시키는 걸 하는 것만 선호하고, 후배들에게는 꿈꾸라고 얘기도 못하고. 선배들이 나에게 좋은 연출이 될 수 있다고 한 말이 참 좋았는데, 나도 후배들에게 그 얘기를 해주려고 했는데 확신할 수가 없다.

박상훈 파업 이후 우리가 승리하겠지만, 그 후에 좋은 드라마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떤 시도를 해야 하는가가 고민이다. 젊은 친구들과 얘기해가면서 찾아야겠다. 말을 할 자유가 없어진 드라마국에서 모두가 자기 의견을 표명하는 드라마국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 문화를 잃어버렸으니까, 어떻게 다시 찾아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다.

 

이혜승 기자 coa331@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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