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은 교수가 밝힌 사상초유 경영평가 보고서 ‘폐기’의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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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은 교수가 밝힌 사상초유 경영평가 보고서 ‘폐기’의 민낯
[위클리포커스] MBC 경평 보고서 보도시사 분야 김세은 교수 '공개토론' 제안…방문진 ‘묵묵부답’
  • 이혜승 기자
  • 승인 2017.09.30 0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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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저널=이혜승 기자]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진이 ‘2016 MBC 경영평가 보고서’를 폐기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가운데, 다수 이사들이 문제 삼았던 ‘보도시사’ 분야의 김세은 교수가 이들의 민낯을 공개하고 나섰다.

김세은 교수가 공개한 내용에 따르면 방문진 이사들은 경평 보고서 작성 교수를 학자로서 존중하지 않은 것은 물론, 비정상적인 경로로 무리한 수정을 요구하고 압박해온 것으로 나타났다.

뿐만 아니라 김세은 교수는 그 이전에도 경영평가 보고서가 암암리에 ‘평가 대상’인 MBC와 방문진 이사진의 뜻대로 자행돼왔던 정황을 밝히며, 경영평가 보고서 작성을 둘러싼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했다.

김세은 교수는 오로지 경영평가 보고서가 통과되는 것만을 위해 그동안의 부당한 행위들을 참아왔다고 밝히며, 그럼에도 결국 경영평가 보고서를 폐기시켜버린 방문진 구여당 추천 이사들을 향해 사과를 요구하고 ‘공개토론’을 제안했다. 경평 보고서 ‘보도시사 부문’ 중 어떤 부분이 어떻게 잘못돼 폐기까지 시킨 것인지 공개적으로 따져보자는 것이다.

▲ 언론노조 MBC본부 조합원들이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진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PD저널

■ 방문진, 교수 허락 없는 ‘임의 수정’부터 수정 압박까지

김세은 교수가 지난 25일 방문진에 보낸 공문에 따르면, 방문진 다수 이사들(구여당 추천)은 김 교수를 향해 수차례 무리한 수정 요구를 한 것은 물론, 김세은 교수가 허락하지 않은 부분을 ‘임의 수정’하려 시도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김 교수는 이들이 이례적으로 교수에게 일정을 ‘통보’해 함께 만난 자리에서 수정문을 제시해 상당한 심리적 압박감을 받았음을 호소하기도 했다.

지난 4월 28일, 최종보고서 검토회의 자리에서 김 교수는 방문진으로부터 ‘노사 문제는 보도시사 분야가 아닌 경영 분야로 옮길 것’과 ‘각종 단정적 의견 및 표현을 수정할 것’을 요구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김 교수는 “노사문제를 경영분야로만 보는 것은 편협한 시각이며 기자와 시사 PD들이 직접적으로 관여되는 한 노사관계를 보도·시사 분야에서도 얼마든지 다룰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굳이 고집하지 않고 양보하여 제가 쓴 노사관계가 경영 분야로 옮겨지는 것에 동의”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6월 8일, 김 교수가 확인한 보고서 통합본에는 경영 분야에서도 노사관계 이야기가 빠져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뿐만 아니라 김 교수가 받아들이지 않았던 부분들이 임의로 수정돼 있는 경우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 교수는 이에 대해 “일일이 대조하여 바로잡은 바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6월 26일, 외부에 처음으로 경평 보고서 관련 내용이 공개되는 방문진 정기 이사회에서 구여권 추천 이사들은 보도시사 분야에서 수정이 필요하다고 강하게 주장하고 나섰다. 심지어 당시 유의선 이사는 “김세은 교수가 작성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김 교수는 원래 이런 수준이 아닌데 급하게 작성한 것 같다”며 “보완이 필요한 보고서”라고 발언하기까지 했다.(▷관련기사 'JTBC가 왜 기준? 방문진, MBC 편향성 지적에 ‘발끈’')

공개적인 자리에서 교수에 대한 인격모독과 같은 발언과 함께, 그동안 자신들이 수차례 수정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은 부분을 다시 지적한 것이다.

결국 7월 20일, 방문진 이사회에서는 이례적으로 김 교수에게 일정을 통보해 만남을 가졌다. 김 교수는 “굳이 만나야 할 이유나 책임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예정보다 늦어진 경영평가보고서의 승인을 위해 만나는 것이 필요하다면 기꺼이 응하기로 마음을 먹었다”며 “그러나 또다시 수정요구를 한다는 것, 더구나 직접 대면하기를 요구한다는 것, 나아가 경영평가와 관련이 없는 언론학계 선배교수인 한균태 감사를 이사가 아닌데도 대동한다는 것 등에서 심한 심리적 압박을 느낄 수밖에 없었음을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해당 자리에서 김원배 경영평가 보고서 소위원장은 “간섭은 안 할 방침이다, 스스로 알아서 요청사항들을 재고하면 된다. 보도·시사에서 노사관계를 왜 쓰느냐는 의견이 있지만 그것도 알아서 판단하면 된다”고, 김광동 이사는 “학문적 논리와 근거”를 강조하며 “받아들이기 어려운 거친 표현을 완화해 줄 것”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8월 3일, 김세은 교수는 경평 보고서의 통과를 위해 △공영방송의 책무를 외면한 것 → 공영방송으로서의 책무를 다하지 못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극우인사의 막말 → 패널 4명이 모두 보수 계열로만 구성되었고 정치적으로 편향된 발언 등 두 가지 부분을 수정해 제출했다.

이후 김 교수에게 별도의 연락을 취하지 않았던 방문진 이사들은, 9월 7일 정기 이사회에서 결국 ‘2016 경영평가 보고서’를 채택하지 않았다. 당시 구여권 추천 이사들은 새로운 소위원회를 구성하자고 주장했다. 사실상 ‘폐기’였다.

방문진 이사들이 자기 뜻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경평 보고서를 채택하지 않을 수는 없다고 공분한 유기철 구야권 추천 이사는, 당시 고영주 이사장을 향해 재차 “경영평가가 폐기된 것이 맞죠?”라고 확인했다. 고영주 이사장은 “공식적으로는 폐기된 거다. 기사에는 폐기로 써야 맞다는 얘기”라고 답했다.

하지만 이후 여러 매체가 방문진이 경영평가 보고서를 폐기한 초유의 사태를 보도하고, 이것이 ‘직무유기’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그러자 21일 정기 이사회 자리에서 구여권 추천 이사들은 “폐기한 것이 아니라 채택하지 않은 것”이라는 궤변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 무리한 수정 요구, 엄연한 ‘계약 위반’

방문진 구여권 추천 이사들이 수차례 수정을 요구한 부분들은 단순한 문구 수정이 아니었음이 드러나고 있다. 언론노조 MBC본부가 28일 공개한 ‘원문’과 ‘수정요구본’에 따르면 방문진에서는 ‘노사관계’에 대한 부분을 철저히 삭제할 것을 요구했고, <PD수첩> 등 탐사보도프로그램과 신뢰도 등에 있어 여론의 비판이 있다는 사실을 숨기려 했다.

△ [원문] <PD수첩>에서 정부 정책을 집중 검증하거나 권력층의 비리를 고발하는 아이템들은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또한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논쟁적 사안을 정면으로 다뤄본다거나 하는 아이템 역시 찾아보기 어렵다. 아무리 시사 프로그램이 사회 각 영역의 다양한 이슈들을 포괄하는 것이 필수적이라 하더라도, 시사 프로그램의 본질은 탐사보도를 기축으로 한 고발과 비판에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 [수정] <PD수첩>에서 정부정책 비판이나 권력층 비리와 같은 거대담론 보다는 생활밀착형 성찰과 세밀한 각론 중심의 비판이 주를 이루는 모양새였다. 고도화된 민주국가에서 이해당사자간의 치밀한 관계를 따져야 하는 시사프로그램의 성격상 “특정한 주의주장의 주창자 혹은 이념의 전파자로서보다는 상이한 시각과 견해들 사이의 교환, 토론, 논쟁을 매개하는 공론장 역할”에 충실하려 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 [원문] 공정방송의 의무는 “노사 양측에 요구되는 의무임과 동시에 근로관계의 기초를 형성하는 원칙”이라는 법원의 판결이 2015년에 난 만큼, 공정성이라는 공영방송의 핵심가치를 지키기 위해 MBC는 보다 전향적인 자세로 노사 관계의 변화를 꾀해야 한다. 그간 노사 문제 관련한 일련의 소송에서 사측의 계속적인 패소 결정은 공영방송에 대한 법리적 판단과 대다수 MBC 구성원, 그리고 수많은 시청자들의 정서가 다르지 않음을 증빙하는 것이다.

→ [전문 삭제]

△ [원문] 한편, 여론집중도조사위원회가 2016년 1월 발표한 MBC의 매체 합산 여론 영향력 점유율은 7.6%로 KBS(17.5%)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 [수정] 한편, 여론집중도조사위원회가 2016년 1월 발표한 MBC의 매체 합산 여론 영향력 점유율은 7.6%로 KBS(17.5%)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뉴스시사보도 부문 여론영향력 2위를 기록했다. 한편 2016년 6월 한국갤럽에 의뢰해 조사한 <2016년 상반기 TV시청자조사>에서 MBC는 ‘뉴스연상채널’ 2위 및 ‘믿고 볼 수 있는 채널’1위를 기록했다.

김세은 교수는 이에 연구용역계약서 내용 중 방문진 이사들이 위반했다고 여겨지는 조항을 지적했다. 연구용역계약서 제4조에는 '진흥회는 연구자의 권위와 학문적 자유를 존중하고, 연구자는 본 연구내용에 대해 책임을 진다'고 명시돼 있다.

김 교수는 △그동안 방송문화진흥회에서 전문가적 식견과 양심에 비추어 도저히 수용하기 어려운 내용과 수준의 수정 요구를 반복적으로 해온 것 △이에 대한 대응 노력에 상관없이 결과적으로 보도·시사 분야를 문제 삼아 보고서를 부결 혹은 폐기 처리를 한 것 △계약서에 명기된 바와 달리 연구자로서의 권위와 학문적 자유를 존중하지 않은 것 등을 지적하며 방문진에 사과와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을 촉구했다.

▲ 서울 여의도 율촌빌딩 6층에 위치한 MBC 대주주 방송문화진흥회 ⓒPD저널

■ 전 보도본부장 김장겸 지키려다 방문진 ‘직무유기’

일각에서는 방문진 구여권 추천 이사들이 2016년에 보도본부장이었던 김장겸 현 사장에게 보도시사 부문에 대한 책임이 전가될까봐 ‘폐기’라는 무리수까지 둔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경영평가 보고서가 내달 예정돼 있는 국정감사에서 주요한 자료로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언론노조 MBC본부는 28일 “MBC에 대한 경영평가의 심의·의결은 방문진법에 명시된 법적인 의무”라고 꼬집으며 “고영주 이사장을 비롯해 직접적으로 계약을 위반한 김광동, 이인철, 김원배 이사 등에 대해 법적인 책임을 물을 예정”이라고 전했다.

김세은 교수는 공개토론을 제안하고 나섰다. 김 교수는 “과연 제가 쓴 내용이 다수이사들 주장대로 그렇게 편향적이며 문제가 있는 것들인지 자료를 공개하고 널리 토론에 부쳐 많은 언론학계 전문가와 언론인, 시민들의 판단을 받아볼 것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이어 김 교수는 “저널리즘을 연구하는 학자로서, 또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로서, 저는 제가 작성한 보도·시사 분야의 구성이나 내용이 부결 혹은 폐기에 이를 정도의 문제가 전혀 없음을 학문적으로나 상식적으로 증명해야 할 의무와 책임을 느끼고 있다”고 밝혔다.

방문진 측에서는 아직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내달 11일로 예정된 정기 이사회에서 관련 논의가 오갈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이사회에서 끝까지 ‘폐기’가 아닌 ‘채택하지 않은 것’이라는 논리를 펼쳤던 구여권 추천 다수 이사들이 공개토론 제안에 어떻게 답할지 주목된다.

한편 방송문화진흥회는 방송문화진흥회법 제10조에 의거해 MBC의 경영 환경 개선을 유도하고 공영 방송의 공적 책임 실현에 기여하고자 지난 2001년부터 매년 경영평가를 실시하고 있다. 5개 분야에서 방문진이 추천한 전문가가 집필을 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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