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뽕짝이 내게로 온 날 ㉛] 백일장白日場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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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뽕짝이 내게로 온 날 ㉛] 백일장白日場 가는 길
  • 김사은 전북원음방송 PD
  • 승인 2017.10.18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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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저널=김사은 전북원음방송 PD] 전북시인협회에서 주최하는 ‘덕진공원 전국 초․중학교 백일장’ 본선 심사위원으로 위촉을 받고 백일장이 열리는 토요일에 덕진공원으로 향했다. 이틀 전까지만 해도 가을비가 오락가락하여 근심이 많았는데, 행사 당일 가을 날씨가 청청淸淸했다. 그전에 내린 가을비는 먼지까지 잠재워서 전화위복이 되었고 참가자들의 시심詩心을 돋우기에 충분했다. 가을까지 버텨 준 연꽃에게 고마움을 표하며, 백일장이 열리는 소나무 숲으로 발길을 옮긴다. 군데군데 백일장에 참가한 학생들의 모습이 눈에 띈다. 다소 긴장된 모습도 보이고 시제詩題를 예상하며 명상에 잠기는 모습도 눈에 띈다. 40여 년 전, 내 모습도 그곳에 있다. 머리를 양갈래로 땋은 소녀다. 천진하고 해맑은 모습이 보기 좋다.

꼬마야 꽃신 신고 강가에나 나가보렴
오늘밤엔 민들레 달빛 춤출텐데
너는 들리니 바람에 묻어오는
고향빛 노랫소리 그건 아마도
불빛처럼 이쁜 마음일꺼야

꼬마야 너는 아니 보라빛의 무지개를
너의 마음 달려와서 그 빛에 입맞추렴
비가 온날엔 달빛도 퇴색되어
마음도 울적한데 그건 아마도
산길처럼 굽은 발길일거야

(산울림노래 <꼬마야> 가사 중)

▲ 1988 MBC <생방송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 ⓒ화면캡처

문재文才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좋은 선생님을 만난 것이 행운이었다. 글짓기 숙제를 제출하면 반대표로 뽑혔고 학교 대표 혹은 군대표로 참가하게 되었다. 남원용성초등학교 4학년 때 담임이셨던 송이순 선생님은 마침 문예반 지도 선생님까지 맡으셔서 선생님의 지도 아래 최고의 호흡(?)을 자랑하며 각종 글짓기 대회를 휩쓸었다. 당시 백일장은 사생대회와 함께 열렸는데, 남원에서는 주로 광한루원에서 행사가 개최되었다.

남원여고시절에는 대학교에서 주최하는 문학상에 응모하거나 백일장에 참여하는 일이 많았다. 시인이신 박종수 선생님께서 문예지에 실을 글을 한편 써오라고 하셨다. 시를 한편 가지고 갔더니, 조금 길다고 하시며 줄이든지 늘리라고 하셨다. 줄이는 게 더 어려워서 그날, 밤을 새워서 ‘조금’ 늘려 썼더니 소설이 되었다. 그렇게 고등학교 2학년에 생애 최초로 소설을 썼다. 선생님께서 그 작품을 동국대학교 문학상에 제출하셨는데 처음 쓴 소설이 덜컥 입상하게 되어 본선을 치르러 서울로 가게 되었다. 1박 2일 일정으로 서울에 거주하시는 한 선생님 댁에서 잠을 자고 이튿날 동국대학교 백일장에 참석했다. 가을 햇살이 따가운 잔디밭에서 시제詩題가운데 하나인 <더벅머리>를 주제로 ‘소설’을 썼다. 본선 등위에 들지 못했지만 그렇게 첫 소설은 작은 결실을 거두었다. 이화여대 법대에 재학 중이던 선생님의 딸이 이화여대에도 데려가고 근처 서울구경도 시켜주었다. 대입을 눈앞에 둔 여고 2학년에게 대학 캠퍼스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당시 고등학생에게 대학은 낭만 그 자체였다.

가을잎 찬바람에 흩어져 날리면
캠퍼스 잔디위엔 또다시 황금물결
잊을 수 없는 얼굴 얼굴 얼굴 얼굴들
우~ 꽃이 지네 우~ 가을이 가네

하늘엔 조각구름 무정한 세월이여
꽃잎이 떨어지면 젊음도 곧 가겠지
머물 수 없는 시절 우리들의 시절
우~ 세월이 가네 우~ 젊음도 가네

(김정호 노래 <날이 갈수록> 가사)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글짓기 대회를 비롯해 각종 대내외 행사에서 수령한 학용품으로 부족함 없는 학창 시절을 보냈다. 특히 글짓기 대회 상품으로 고급 노트와 필기구가 대세여서, 나는 노트 한 권 사지 않고 졸업했으니 그것도 대견한 일이다. 초등학교 담임이셨던 송이순 선생님은 상상력과 창의력을 가르쳐주셨다. 중학교 국어 선생님이자 담임이셨던 이정자 선생님께 일기 쓰기를 통한 지구력을, 시인이자 고등학교 은사이신 박종수 선생님으로부터 겸손과 따뜻함을 배웠다. 선생님으로부터 받은 인생의 큰 선물을 떠올리니 울컥해진다. 이정자 선생님과 박종수 선생님은 고인이 되셔서 보은 할 길이 없어 더욱 애석하다. 선생님께 배운 글쓰기가 기자에서 방송 PD로, 그리고 작가로 이름 불리우며 평생의 밥벌이가 되었다. 백일장 가는 길에 어린 시절의 추억이 연향蓮香처럼 퍼진다.

‘덕진공원 전국 초․중학교 백일장’은 대성황이다. 덕진공원 소나무 숲 나무 의자나, 잔디밭에 돗자리를 깔고 앉거나 엎드려서 글쓰기에 골몰하는 학생들이 참 예쁘다. 딸이 글을 쓰는 동안 우쿨렐레를 연주하는 어머니의 모습은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으로 남았다. 덕진공원을 시심詩心으로 메워가는 아이들이 있어 가을이, 더 예쁘다.

가을은 참 예쁘다 하루하루가
코스모스 바람을 친구라고 부르네
가을은 참 예쁘다 파란 하늘이
너도나도 하늘에 구름같이 흐르네
조각조각 흰 구름도 나를 반가워 새하얀 미소짓고
그 소식 전해 줄 한가로운 그대 얼굴은 해바라기
나는 가을이 좋다 낙엽 밟으니
사랑하는 사람들 단풍같이 물들어

(박강수 노래 <가을은 참 예쁘다> 가사 중)

▲ KBS전주 PD들이 제안하는 전북여행전문콘텐츠 【Everywhere, K_걸어서 전라북도】 '전주 여행 전북 여행 전주 연꽃으로 물든 덕진공원의 여름' ⓒ유튜브 화면캡처

전주 덕진공원에서 전국 규모의 백일장 대회가 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이미 서울과 경기도, 부산, 광주, 순천 등 전국 230 여명이 참여하여 이 가운데 1차 심사를 거친 74명이 운문과 산문 분야로 나뉘어 참가하는 것이라 더욱 기대가 컸다. 특히 ‘전주’에서 열리는 백일장이어서 가족들의 관심이 높았다는 전언도 들린다. ‘가고 싶은 도시 전주’이기에, 주말에 열리는 백일장에 참가하기 위해 3대가 가족나들이를 겸해 참가했다는 가족도 많았다. 덕진공원에서 펼쳐지는 백일장이기에 더욱 큰 관심을 모은 것이려니 싶다. 하기야 전주 덕진공원은 전국적으로 이름 높은 공원이 아니던가.

덕진공원은 옛 전주 땅의 완산부에 도읍을 정한 후백제의 견훤이 풍수지리를 따라 땅을 파고 물을 끌어 연못을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조선조 지리책이었던 ‘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전주부성全州府城이 사방으로 산에 둘러싸여 분지를 이루고 있는데 북쪽 지역만이 공허하여 지기가 얕아 동쪽의 건지산乾止山, 서쪽의 가련산可連山 사이를 제방으로 막아 지맥이 흐르지 않도록 하기 위해 저수하여 연못을 조성하였다고 한다. 대부분 저수지는 농사용으로 만들어지나 덕진 연못은 처음부터 연꽃 군락지로 만들어졌다. 덕진공원은 4만 5천 평으로 호수는 3만 평, 이 가운데 연꽃 자생지는 1만 3천 평에 달한다. 공원시설은 1 만 5천 평이다. 공원 남쪽으로 연못이 전체의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고 북쪽으로 보트장이 있다. 그 사이 동서로 아치형의 현수교가 가로질러 자리하고 있는데 출렁거리는 다리를 따라 연꽃을 감상하는 즐거움이 남다르다. 내 어릴 적 기억에, 단옷날이면 늘어진 수양버들과 무성한 창포 사이에서 상의를 벗은 채 머리 감던 할머니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언제부터인가 이 모습은 사진 속의 옛 풍경으로 사라졌다.

덕진공원에는 전북을 빛낸 선인들의 숨결도 남아있다. 신석정, 김해강, 백양촌 등 전북이 배출한 문인들의 시비와 전봉준 장군의 동상, 그리고 전북 출신 ‘법조 3성聖’ 동상이 있다. 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가인 김병로(전북 순창), ‘사도使徒 법관’으로 불린 김홍섭(전북 김제) 전 대법원 판사, ‘검찰의 양심’으로 불린 최대교(전북 익산) 전 서울고검장 등이 그 주인공이다.

전주에는 또 부성삼화府城三花라는 말이 있는데, 동고산의 진달래, 다가산의 입하화立夏花(여름 시작 무렵 피는 이팝나무), 덕진연못의 연화를 일컫는다. 전주의 아름다움과 정서를 담은 ‘전주의 찬가’라는 노래가 있다.

1. 완산칠봉 넘어오는 봄 아가씨는
개나리 저고리에 진달래 처녀
풍남문 돌아서 오실 때에는
어느새 정이 드는 전주라네~

(후렴) 내 사랑 전주에 모두 바치고
푸른 꿈 열어가며 여기 살겠네.

2. 덕진연못 넘어오는 푸른 바람은
여름밤 부채처럼 근심을 쫓네
오목대 돌아서 가실 때에는
새들도 쉬어드는 전주라네.

(하중희 작사, 김강섭 작곡, 김상희 노래 <전주의 찬가> 가사)

본선 글짓기 대회를 마치고 심사가 진행되는 동안, 백일장에 참가학생들과 가족들은 전주 한옥마을과 연계한 투어를 다녀왔는데 그 또한 반응이 매우 좋았다. 전북시인협회의 세심한 배려에 더불어 즐겁다.

최종 심사결과 광주 살레지오초등학교 6학년 조승지 학생과 전주 신일중학교 3학년 이유진 학생이 각각 초등부와 중등부 대상을 수상했다. 이운룡 시인은 “초등부의 경우 동심을 표현하는 순수함이 잘 드러났으나 문장의 조화를 좀 더 세밀하게 표현하는 훈련이 필요하다.”면서 “중등부에서는 제법 세련되고 품격 높은 작품들이 다수 눈에 띄었으며 주제의 형상화 과정이 선명했고 전반적으로 깔끔한 구성으로 통일성을 획득해 일관성을 부여하고 있다.”리고 평했다. 이번 백일장을 기회로 글쓰기에 재미가 더할 것이라고 믿는다.

오랜 세월, 만남의 장소로, 그리고 문학 장소로 사랑을 받아왔던 전주 덕진공원이 전국의 어린 문사文士들과 만나 시의 땅으로 거듭났다. 참으로 멋진 일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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