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사들, 재허가 취소 겁 안 내…강제성 보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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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개혁 세미나] 올 연말 지상파·종편·OBS 등 재허가 앞두고 ‘실효성’ 문제제기

[PD저널=하수영 기자] 언론‧시민단체가 현행 방송통신위원회의 지상파 방송 재허가 제도가 실효성이 떨어진다며 실효성을 보강하기 위해 강제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언론노조‧언론개혁시민연대 등 언론‧시민단체들은 20일 오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지상파 방송 재허가 심사의 실효화 방안 논의 세미나에서 “기존에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가 했던 지상파 방송사에 대한 재허가 제도가 탈락에 따른 대응장치가 부재하는 등 실효성이 떨어지는 측면이 있었다”며 “방송사 내부 종사자‧시청자가 참여하는 재허가 모델을 개발하거나 재허가 요건을 강화하는 등 실효성 제고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20일 오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한국언론학회와 언론노조 공동 주최로 '미디어개혁 세미나 시리즈-지상파 방송 재허가 심사의 실효화'가 열렸다. ⓒ언론노조

한국언론정보학회(회장 문종대)와 언론노조(위원장 김환균) 공동 주최로 열린 이날 세미나에서는 ‘지상파 방송 재허가 과정을 통한 방송 공익성의 재부팅’이란 주제로 토론이 이뤄졌다. 사회자로는 정연우 세명대학교 교수가, 발표자로는 김동원 언론노조 정책국장이, 토론자로는 고낙준 방통위 지상파방송정책과장, 권순택 언론개혁시민연대(언론연대) 활동가, 김경환 상지대학교 교수, 윤창현 언론노조 SBS본부장이 참석했다.

발제자로 나선 김동원 언론노조 정책국장은 지상파 재허가 심사 항목의 문제와 심사위원회 구성의 문제, 그리고 재허가 심사 결과가 갖는 강제성에 대해 지적하며 이들 문제점이 보완된 새로운 재허가 제도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국장은 “올해 말로 임박한 2017년 지상파 방송사업자 재허가 심사에서는 이전부터 지적돼 온 방송사업자의 특성에 따른 심사의 차별화가 여전히 미뤄지고 있다”며 “가령 공영방송사와 민영방송사의 소유구조 및 재무구조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KBS‧MBC‧SBS‧EBS 등에 대해 동일한 심사항목과 배점을 요구하고 있는데, 이는 민영방송의 경우에는 소유와 경영 분리를 엄격히 심사하고 공영방송의 경우엔 공적 책임‧공정성‧공익성의 실적 및 계획을 심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전국방송과 지역방송에도 차별화된 심사가 필요하다”며 “현행 허가제도는 방송사업자가 아닌 방송국별로 심사를 하게 돼 있어 MBC의 경우 지역 계열사, KBS도 지역국 단위의 지역방송국이 심사 대상이 되는데 이 경우 ‘지역성에 대한 평가’ 부문에서 전국 방송사업자와 지역 방송사업자에게 동일한 배점이 할당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고 밝혔다.

▲ 20일 오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한국언론학회와 언론노조 공동 주최로 '미디어개혁 세미나 시리즈-지상파 방송 재허가 심사의 실효화'가 열렸다. 김동원 언론노조 정책국장이 발언하고 있다. ⓒ언론노조

김 국장은 재허가 심사에서 또 다른 문제로 지적돼 온 ‘실적과 계획 평가’의 문제도 언급했다. 심사항목에 있어 그 동안 방송사가 해 온 실적에 대한 평가와 계획의 실현가능성(또는 적정성)에 대한 평가가 혼재돼 있는데 이것이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김 국장은 두 가지 평가 기준이 혼재된 이유가 재허가의 의미가 모호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현재 재허가 배점은 평가보다 계획에 더 많은 비중을 두고 있어 재허가를 ‘신규허가’의 관점에서 보고 있다”며 “재허가를 ‘면허/특허’의 관점으로 본다면 계획보다는 실적 평가에 더 비중을 둬야 한다”고 말했다.

토론자로 참석한 김경환 상지대 교수도 김 국장의 주장에 동의했다. 김 교수는 “(방송사가 재허가 이행 계획을 제출할 때는) 장밋빛 그림만 그려서 내는데 이게 현재는 지키지 않아도 아무런 문제가 안 되는 상황”이라며 “(방송사 입장에선) 그저 (재허가) 점수만 잘 받으면 된다. 이 때문에 현재 심각한 문제가 있지만, 아무도 개선하려는 의지가 없는 것 같아 아쉽다”고 개탄했다.

방통위의 고낙준 지상파정책과장도 미래 계획 평가에 치중된 현재의 재허가 제도의 문제점에 대해 공감했다.

고 과장은 “(방통위가) 재허가 조건을 열심히 부과하지만 다음 재허가 (심사)때 반영이 안 돼도 방송사업자들 입장에서 ‘그래도 재허가가 거부되진 않겠다’는 믿음이 생길 수 있다”며 “그렇게 되면 재허가 제도에 대한 믿음과 제도의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 편으로 고 과장은 직접 재허가 정책을 다루고 있는 실무자로서 느끼는 한계성도 지적했다. 지상파 방송 재허가 제도의 실효성 강화만을 바라보고 제도의 강제성을 높일 경우 마냥 긍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걸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 고 과장의 의견이었다.

고 과장은 “제도 개선 필요성에 대해선 공감하나 재허가 제도의 실효성과 강제성을 강화해서 허가 거부를 한다고 하면 사업자나 대주주도 피해를 받겠지만 가장 큰 피해자는 종사자들”이라며 “방통위는 칼을 가지고 있지만 칼을 쉽게 쓸 수 없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고 과장은 지난해 재허가 심사 과정에서 기준 점수에 못 미쳐 재허가 거부 위기에 처했다가 ‘2017년 말 까지 30억 증자’ 등의 조건과 함께 방통위로부터 1년 조건부 재허가를 승인받은 OBS 경인TV(이하 OBS)의 사례를 제시했다.

고 과장은 “만약 방통위가 OBS에 대한 재허가를 거부하면 OBS가 12개월 내에 방송유지명령을 이행할 수 있겠느냐”며 “(OBS 내부 종사자 등의) 그런 문제를 (방통위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2009년 개정된 방송법에 따르면, 방송사업자의 허가 취소에 대비해 해당 사업자의 방송사업을 승계하는 자가 방송을 개시할 때까지 12개월의 범위 안에서 기간을 정해 방송을 계속할 수 있다. 그런데 OBS의 경우 해당 방송권역에서 독점적인 지위를 가지고 있어 재허가 거부 후 12개월의 방송유지명령 이행기간을 준다고 해도 신규 사업자가 나타나 12개월 내에 사업을 승계할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김동원 국장은 주장했다.

이런 맥락에서 김 국장은 고용 승계 방안을 포함한 지상파 방송사업자 허가 취소 및 재허가 거부 관련 후속 조치안을 제시했다.

김 국장이 제시한 대안에 따르면, 방통위가 방송사업자에게 허가 취소 또는 재허가 거부를 통보하면 1개월 내 방통위 주도 하에 사업자 공모 신청이 시작된다. 이후 해당 조치를 받은 현행 사업자를 포함해 경쟁 공모 심사를 진행한다. 방통위는 후속사업자 후보들에게 △고용승계 방안 △시설‧대지 이용 및 양도 방안 등의 심사 조건을 적용해 심사하고 최종적으로 해당 방송권역의 신규 사업자를 허가한다.

▲ 지상파 방송 3사 ⓒPD저널

김 국장은 이 밖에도 현 재허가 심사 제도에 △심사위원회 구성의 다양성 △재허가 심사에서 시청자와 노동자 참여의 제도적 보장 등의 요소를 보강해야 한다는 주장도 내놨다.

윤창현 언론노조 SBS본부장은 “(재허가 과정에서) 종사자들의 의견을 듣는 절차는 중요하다”며 “(재허가 심사를 할 때) ‘편성 규약이 있는가’, ‘편성위원회를 얼마나 열었나’, 이런 얘기를 많이 하는데 단순히 횟수로 평가할 문제가 아니다. 사업자가 자료를 제출하면서 ‘제도에 이렇게 돼 있고, 그 제도에 따라 편성위를 몇 번 개최했다’, ‘우린 잘 하고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편성위에서 노조추천 시청자위원들이 의견을 내 제재 혹은 권고 조치가 내려져도 강제성이 없다보니 사측이 이행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재허가 제도의) 실효성을 강화하려면 어떤 형태로든 반드시 종사자 목소리를 듣는 절차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권순택 언론연대 활동가는 최근 언론연대가 개설한 ‘지상파 일번가’가 시청자가 방통위 재허가 심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시청자 참여 모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권 활동가는 “직접 민주주의를 강조해 온 문재인 정부와 방통위가 하는 재허가에 대해 기대가 컸지만 지금은 실망이 크다”며 “방통위가 시청자들의 (방송에 대한) 불만을 제대로 접수받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어서 시청자가 불만을 손쉽게 제기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게 됐다”고 밝혔다.

‘지상파 일번지’는 언론개혁시민연대(언론연대)가 지상파 방송 재허가를 앞두고 시청자들이 보다 쉽게 의견을 내고 취합할 수 있도록 만든 이른바 ‘지상파불만처리대행서비스’다. ‘2017 재허가 방송사 A/S’, ‘2017 지상파 재허가 투표’ 등의 코너를 마련해 시청자들의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그러나 시청자 참여나 의견 취합보다 재허가 심사위원들이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해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지상파 재허가 심사 과정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김경환 교수는 “(심사에 들어가면) 시청자 의견을 볼 시간이 없다. 사업자들이 제출한 자료만 봐도 밤 12시가 훌쩍 넘는다”며 “시민단체들은 시청자들이 생각하는 문제점이 뭔지, 요점을 파악해서 심사위원들에게 알려주고 심사위원들이 그걸 숙지한 상태에서 심사를 하도록 만들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 허욱 방송통신위원회 부위원장(사진 왼 쪽)과 표철수 방통위원 ⓒ뉴시스

여러 언론계 인사들과 언론학 교수들이 현 지상파 방송 재허가 제도에 대한 비판적인 의견과 개선 방안을 쏟아낸 반면, 현행 제도가 지상파 방송 문제점 개선에 도움이 된다는 긍정적인 의견도 있었다.

윤창현 언론노조 SBS본부장은 “SBS는 2004년 ‘재허가 파동’을 거쳤는데, 이는 방송 독립과 편성의 자율성을 기대했던 구성원들 입장에선 하나의 기회의 창이었다”며 “SBS는 (2004년 재허가를 통해서) 지상파 3사 중 제도적으로 보면 가장 안정된 편성규약, 보도준칙과 같은 독립성 보장 기제를 강화하는 기회를 갖게 됐다”고 평가했다.

윤 본부장은 그러나, 민영방송인 SBS의 경우에는 재허가 제도의 효용성이 빛을 발했지만 공영방송의 경우엔 그렇지 못했다고 하면서 다른 토론자들과 입장을 같이 했다. 동시에 공영방송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선 현행 재허가 제도를 강화할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윤 본부장은 “MBC가 무법천지처럼 돼 버린 건 사측이 일방적으로 단협(단체협약)을 깨고, 그 틈을 타서 마음대로 휘젓고 있기 때문”이라며 “△방송 독립성과 공정성을 강화 △노사합의 철저히 준수 등을 재허가 조건으로 부과하고 법적 강제력에 준하는 강제성을 부여한다면 (공영방송에 대해서도) 재허가 제도가 제도의 목적, 방송법의 목적을 실현하는 데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김동원 언론노조 정책국장도 “최근 KBS‧MBC처럼 제작거부 및 경영능력 위기에 처한 사업자의 재허가 심사 방안을 별도로 마련해야 한다”며 “가령 최근 공개되고 있는 KBS‧MBC 두 공영방송 이사진, 경영진의 흠결과 경영 파행(부당노동행위 포함) 등을 고려해 지난 두 차례의 재허가 심사에서 제외됐던 문제점들을 점검하는 걸 심사항목으로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KBS‧MBC‧SBS 등 지상파 방송 3사와 종합편성채널인 MBN은 올 연말 재허가 및 재승인 절차를 앞두고 있다. OBS는 지난해 12월 승인받은 조건부 재허가 기간이 오는 12월 만료돼 지난해 부여받은 재허가 기준에 따라 다시 심사를 받게 된다. 재허가 심사위원장은 방통위 허욱 부위원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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