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 강한 MBC 예능의 부활,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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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 강한 MBC 예능의 부활, 기대해주세요"
[라운드 테이블] 방송 재개하는 MBC 예능 PD들, 과제는
  • 박수선 기자
  • 승인 2017.11.15 19: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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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저널=박수선 기자] 70일 넘게 파업을 벌인 MBC 구성원들이 15일 업무에 복귀했다. 제작거부를 지속하는 시사교양‧보도국 소속 노조 조합원들과 달리 예능본부 소속 조합원들은 방송 재개를 서두르고 있다. 15일 <라디오 스타>부터 오는 17일 <나 혼자 산다> 등이 순차적으로 정상 방송될 예정이다.

방송은 정상화되지만 당분간 김장겸 전 사장이 꾸린 경영진과의 ‘불편한 동거’는 불가피하다. 예능PD들은 지난 13일 총회를 열고 일상적인 업무 이외 본부장의 지시는 거부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예능PD들은 MBC 예능의 존재감을 되찾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업무 복귀 하루 전인 지난 14일 PD연합회 회의실에 MBC 정상화를 주제로 예능PD들이 마주 앉았다.

▲ MBC 예능 PD 4명이 업무 복귀 전날 PD연합회 회의실에서 모여 방송 정상화 이후 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김성헌

강성아 PD 2006년 입사 <듀엣가요제> 연출/파일럿개발부

임찬 PD 2008년 입사 <나 혼자 산다> 연출

이경원 PD 2012년 입사 <섹션TV연예통신> 연출

김지우 PD 2013년 입사 <무한도전> 조연출

강성아 예능 프로그램은 노동 강도가 특히 높다보니 현장으로 돌아가는 게 마냥 달갑지 않은 면도 있다. 하지만 파업에서 승리하고 돌아가는 것이라서 기쁘다. 몸은 힘들어도 앞으로 보람 있고 꿈꾸던 예능 프로그램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이 있다.

임찬 예능은 장르 특성상 함께 하는 식구가 많다. 이번에 프리랜서 신분인 작가, 출연자들도 제작거부로 파업에 힘을 보태줬다. PD입장에서는 방송이 정상화되면 이제 다시 식구들을 챙길 수 있겠구나 하는 안도감이 있다.

이경원 MBC 사원들뿐만 아니라 프리랜서 동료들까지 파업에 동참했다. 그들이 있었기 때문에 힘을 내고 두달 넘게 파업을 지속할 수 있었다.

임찬 촬영해 놓은 분량이 있는 <나 혼자 산다>는 금요일(17일)부터 당장 촬영분을 내 보낼 수 있다. 프로그램마다 사정이 다르기 때문에 준비되는 대로 순차적으로 정상 방송을 내보낼 것으로 예상된다.

김지우 <무한도전>은 파업 전에 기획했던 아이템이 사회 이슈와 밀접한 게 많았다. 내부적으로 정비 시간이 필요해, 다음주(25일) 정도엔 방송 재개가 가능할 것 같다.

▲ 강성아 MBC 예능 PD. ⓒ김성헌

강성아 지난 13일 있었던 총회에서는 현재 본부장과 국장이 불신임 상태이기 때문에 지시대로 움직이지 않겠다는 결의가 있었다. 각자 맡고 있는 프로그램 제작이나 일상 업무는 하겠지만 새로운 업무 지시나 결정 사항은 따르지 않겠다는 의미다.

임찬 임원진과 문제가 있을 때 평PD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비상대책위원회를 이번에 꾸렸다. 새로운 경영진이 들어오기 전까지 이런 긴장관계와 불편한 시간은 필요해 보인다. 도제식으로 일을 배우는 PD사회에선 ‘형-동생’ 문화가 아직 있다. 예전에는 이 문화 속에서 ‘선배, 이건 아니지 않냐’고 문제제기를 할 수 있었다면, 최근 몇 년 동안은 ‘위에서 하라는데, 좀 도와주라’는 압박으로 변질됐다.

이경원 10여 년 동안 유능한 예능PD들이 대거 회사를 떠났다. 새로운 경영진이 오면 신입 공채도 필요하지만 허리라인이 붕괴된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조직 문화가 경직되면서 PD들의 자기검열도 심해졌다. 그동안 받은 내적 상처를 치유하는 시간과 제작 자율성을 보장하는 장치도 필요하다.

"<복면가왕> 선곡, 복면 이름도 일일이 간섭"

강성아 대통령이나 정치 문제에 관심이 없는 예능PD들이 전례없이 파업에 참여한 건 하고 싶은 것을 못해서다. 이번 파업 과정에서도 폭로가 됐지만 블랙리스트에 오른 연예인은 PD가 아무리 원해도 출연시키지 못했다. <복면가왕>,<라디오스타>,<진짜 사나이> 등 프로그램에 위에서 출연자를 꽂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일일이 간섭했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을 때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 이런 관행들이 원동력이 되어 예능 PD들이 파업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 이경원 MBC 예능 PD. ⓒ김성헌

이경원 <복면가왕> 복면가수 이름도 위에서 간섭하는 정도였다. ‘황금 라카 두통 썼네’라는 이름 속에 PD의 색깔과 정체성이 담겨 있는 건데, ‘품위가 없다’는 이유로 바꾸라는 지시가 내려온다. 2012년 파업 기간에 입사했는데, 이후 제작비가 계속 깎였다. 다른 방송사는 공격적으로 프로그램에 투자하고 있지만, 위에서는 아직도 ’MBC 프리미엄‘ 운운하고 있다.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고 일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는데, 스태프에게 ’도와달라‘고 사정을 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강성아 <복면가왕>이나 <듀엣가요제> 같은 프로그램은 선곡표를 윗선에서 요구한다. 문제는 ‘내가 아는 것만 해야 한다’는 인식이다. 말로는 ‘젊은 방송’을 추가하지만 정작 ‘크러쉬’, ‘딘 ’ 같은 요즘 젊은층이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는 모르는 거다.

이경원 선곡표를 보고 듣고 싶은 노래를 꽂을 때도 있다. 그 노래를 하겠다는 출연자를 1년 넘게 찾지 못했는데, 잊을만하면 물어 봐서 곤혹스러웠다.

임찬 2015년 방송된 <경찰청 사람들 2015>이란 프로그램이 이런 문화와 모순의 결정체였다. 예능과 시사가 결합된 프로그램을 해보라는 오더로 시작한 것이었는데, 견적이 1억 500만원 정도 나오는 프로그램의 예산을 위에서 6100만원까지 깎았다.

이경원 뚜껑을 열었으면 누가 닫아야 하는데, 책임지는 사람이 없었다. 시사를 마치면 PD가 중심적으로 회의를 열어 수정을 하는 게 통상적인 과정이다. 그런데 부장이 편집실까지 들어와서 간섭하고, 시사 때 일방적으로 지적사항을 쏟아내면서 ‘받아 적어라’고 윽박지르는 분위기였다. 결국 이 프로그램은 6개월 뒤에 폐지됐다.

강성아 2012년 파업 때와 다르게 이번 파업에 참여하면서 다른 방송사의 선전을 보면서 조바심이 나기도 했다. MBC는 <무한도전> <복면가왕>, <마이 리틀 텔레비전> 등을 통해 예능 트렌드를 선도했다. 모두 젊은 PD들이 젊은 감각으로 만든 프로그램이었다. 시청자들이 원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냈던 MBC를 되찾는 그 시작점에 다시 선 것이다.

▲ 김지우 MBC 예능PD. ⓒ김성헌

김지우 대통령 탄핵 시기에 시청자들에게 가장 많이 찾아서 봤던 프로그램이 JTBC <뉴스룸>과 <썰전>이었다. 장르를 가리지 않고 시청자들이 원하는 지점을 포착하는 게 중요해졌다는 뜻이다. 시청자들의 요구를 단번에 캐치하는 게 쉽지 않겠지만 실패를 하더라도 시도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고,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면 가능하다고 본다.

“예능 프로그램도 자기검열…창의력 발휘할 수 있는 여건 마련해야”

강성아 MBC에도 스마트모바일부서가 있지만 주먹구구식으로 운영이 됐다. 매체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방송에서 해왔던 제작방식을 그대로 반복하면 소용이 없다. 요즘엔 예능 프로그램은 시즌제로 대세인데, MBC 예능 프로그램은 ‘망해야 끝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오래 소진 되는 것도 문제다. PD들이 리프레쉬할 수 있는 시간을 주고, PD들도 달라진 시청환경과 트렌드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 임찬 MBC 예능PD. ⓒ김성헌

임찬 주위 사람들에게 ‘MBC는 돈을 버는 회사가 아니라 잘 써야 하는 회사’라고 이야기한다. 지상파 방송사는 채널 유지에 비용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기본적인 광고 수입도 있다. 제작진에게는 제작비가 없다고 하지만 한편에서는 외유성 연수를 떠나는 이들이 있다. 자원을 효율적으로 써야 한다는 이야기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열정페이’를 강요하고, 우리에게 돈을 벌어오라고 등을 떠밀 게 아니다. MBC를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고 일자리를 줄 수 있는 곳으로 만드는 게 중요하다.

김지우 예전 MBC 프로그램을 떠올리면 MBC 예능PD만큼 개성강하고 색깔이 강한 사람들이 없었다. 제작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받은 상태에서 PD 개개인의 특성이 듬뿍 담긴 프로그램을 보고 싶다. 인터넷과 게임에 미쳐있던 박진경 PD가 <마이 리틀 텔레비전>을 기획하고, 독특한 코미디 감각과 음악에 조예가 깊은 민철기 PD가<복면가왕>을 만든 것처럼 프로그램 뒤에 만드는 사람이 보였으면 좋겠다.

이경원 요즘 앞서 나가는 다른 방송사의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서 위기의식을 느끼지 않느냐고 하는데, 어떤 부분에서는 없다. 언제부턴가 TV만 틀면 관찰 예능이 나온다. 어떤 방송사는 하루종인 같은 프로그램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이런 프로그램은 누가 만드는지 전혀 궁금하지 않다. <나는 가수다>같은 프로그램을 보면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이 궁금하지 않나. MBC는 새로운 것을 해야 한다는 내부 분위기가 있다. 여전히 MBC에 뛰어난 PD들이 많기 때문에 ’만나면 좋은 친구‘로 시청자들과 다시 만날 날이 멀지 않았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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