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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남녀'에 까칠하게 반응하는 이유

기사승인 2017.12.01  12:5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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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교석의 티적티적] '뜨거운 젠더 이슈' 페미니즘 관점 부각만

[PD저널=김교석 대중문화평론가] 젠더 감수성을 정면으로 꺼내든 EBS <까칠남녀>는 요즘 문제적 프로그램이다. 최근 몇 년간 전 세계 대중문화계를 이끈 키워드는 페미니즘이다. 할리우드 스튜디오에서 파리의 패션쇼까지 그 위세가 대단하다.

순종적이고 청초하던 디즈니 공주들은 주체적인 캐릭터로 바뀌었고, 백인 너드의 텃밭이었던 코미디물의 주역은 대거 여성으로 교체됐다. 하이패션업계에서는 남성을 위한 트로피처럼 여겨지는 고전 여성 복식의 기호를 삭제하거나 해체하는 작업이 활발하다. 어느 예술 분야든 더 이상 ‘여류작가’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교육방송은 페미니즘을 예능 토크쇼 형태로 TV 무대에 올렸다. 하지만 <까칠남녀>는 30회 차가 넘어가는 지금까지 교육방송에 걸맞은 건설적인 담론을 마련하진 못하고 있다.

시청률은 저조하고, 기대했던 화제성마저 순도가 떨어진다. 젠더 이슈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그 어느 때보다 뜨겁지만 시청자들과 대중적 공감대나 교육의 장을 형성하는 데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이다.

이런 아쉬운 성적을 우리 사회가 아직 계도가 덜 되었다거나 인식이 부족한 까닭으로 보지 않는다. 물론, 가부장적인 구조 하의 우리 사회에서 여성 인권은 여전히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 너무나 많다. 덕담을 포함해 육체적, 언어적 폭력이 일상화되어 있고, 개선 여지와 속도는 일본을 제외한 선진국에 비해 매우 미흡하다.

하지만, 학술적인 관심이나 관련 논의와 산업이 페미니즘 운동 사상 최고조로 높은 시대이기도 하다. 미러링, 역차별과 같은 신조어가 나올 정도로 여러 전선에서 활발하게 논쟁이 이뤄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까칠남녀>의 담론이 큰 주목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시청자들에게 별다른 생각거리를 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뜨거운 논쟁을 JTBC <썰전>처럼 명쾌하게 해석하거나 판가름해주는 것도 아니고, 새로운 무언가를 알아가는 재미와 호기심은 JTBC <비정상회담>에 비해 한참 부족하다.

기획 의도는 우리 사회 속에 녹아있는 남녀차별의 지점을 꼬집고 젠더 감수성을 일깨우는 지적 재미를 제공하는 것인데, 무슨 이야기를 나누든 결론이 이미 정해져 있는 까닭이다.

젠더 이슈를 다룬다고 하지만 모든 사안을 ‘남자는’, ‘여자는’으로 접근해 갈등양상으로 주고받는 토론은 마치 tvN <코미디 빅리그>의 ‘오지라퍼’를 보는 듯하다. 그리고 결론은 남자들의 문제로 귀결되는 단순한 해답에 머무른다.

이런 태도는 패널 구성에서도 드러난다. 여성 진영에는 페미니스트 학자와 칼럼니스트, 마찬가지로 지식인으로 분류되는 작가를 배치하고, 일반 남성을 대표하는 자리에는 박식하긴 하지만 개그맨인 황현희 씨를 데려다놓았다.

▲ EBS 1TV <까칠남녀> 방송 화면 캡쳐.

최근 ‘모성애’를 다룬 편에서 황현희가 결혼을 한다면 아이 없는 가정은 생각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가 십자포화를 맞았다. 여자를 단순히 아이를 낳는 도구로 생각한다거나 출산과 육아는 여성의 희생을 담보로 한다는 등의 이유였다. 여기에는 남자는 육아를 하지 않는다는 단정에 가까운 전제가 깔려 있다.

모성애는 허구의 신화라며 양육의 기쁨은 언급도 않고 여성의 희생만을 강조한다. 주변의 행복한 가정들이나 아이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엄마의 사랑을 모두 남녀차별 프레임에 집어넣고, 여성의 희생이 수반되는 불합리한 현실로 결론짓는다. 최근 육아에 적극적인 젊은 아빠들이 늘어나는 현상에 대해서는 당연한 것에 왜 박수를 보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시큰둥하다.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젠더 감수성은 분명 참정권 투쟁 당시의 페미니즘과 다를 수밖에 없다. 당연히 남녀의 입장차를 들여다볼 필요는 있지만, 모든 문제를 남녀의 기득권 투쟁으로 결론지을 순 없다. 남녀 모두 함께 변화를 도모해야 할 이야기도 있고, 뿌리 깊게 박힌 남녀 성역할에 대해 함께 고민해볼 필요도 있다. 때로는 여성이 각성해야 할 지점도 있을 것이다.

허나 <까칠남녀>는 모든 남자들을 계몽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이미 정해진 도식에 따라 전개되는 데다, 그 태도가 다소 공격적이다 보니 페미니즘 콘텐츠로서의 새로움도, TV 콘텐츠로서의 호감과 관심을 얻는 데도 고전하고 있는 것이다.

‘맨스플레인’에 관한 토론이 그런 예다. ‘남자들은 그래서 문제야’라는 결론을 지어놓고, 진화심리학 등을 차용해 그 원인과 현상을 거슬러 유추해간다. 만약 꼰대스럽고 구질하게 구는 모습을 남자들의 종 특성으로 결론 내리려면, 같은 인간으로서 남성이 그렇게 구리게 진화하기까지 그 반대편에 대한 고찰도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까칠남녀>가 영향력을 갖기 위해선 페미니즘이든, 여성 인권 신장이든, 젠더 감수성이든 시청자들에게 성대결 양상을 넘어선 생각할 만한 콘텐츠를 제공해야 한다. 페미니즘의 시각만으로 이슈를 만들긴 어려운 시대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페미니즘 영화 평론이 유행하던 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말 그대로 유행처럼 사라졌다. 그 이유 중 하나가 여러 모양과 다양한 성질을 가진 영화의 세계관을 단순히 ‘여성’이라는 하나의 틀로만 바라봤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신선했으나 점점 공감도는 떨어지고 예상을 벗어나지 못한 평론이 반복되거나 무리했다.

<까칠남녀>는 어쩌면 여전히 이 딜레마에 빠져 있는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대중의 우매함이나, 불편한 이야기이기 때문이 아니다. 핵심은 대중을 위한 콘텐츠로서 접근 방식과 내용이 전혀 새롭지 않다는 데 있다.

 

김교석 대중문화평론가 webmaster@pdjournal.com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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