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도, 룰도 없는' 뉴플레이어들, 방송판을 흔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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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도, 룰도 없는' 뉴플레이어들, 방송판을 흔들다
[라운드 테이블] 2030세대가 호응한 콘텐츠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 구보라·김혜인 기자
  • 승인 2018.03.14 11: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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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D저널>은 시트콤협동조합의 이경민 감독(30)과 송현주 작가(31) <닷페이스>의 장은선 PD·에디터(29), 이선욱 PD·에디터(32)를 한 자리에 모아 어떤 제작환경에서 나올 수 있었을지 등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김성헌

[PD저널=구보라·김혜인 기자] 소셜미디어에 기반을 둔 기발하고 신선한 콘텐츠들이 2030세대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페이스북과 유튜브를 중심으로 유통되는 콘텐츠는 SNS 사용이 익숙한 젊은층에게는 이미 친숙한 매체다. 이 가운데 '닷페이스'와 '시트콤협동조합'은 다양한 사회 이슈를 기존의 미디어와 다른 접근 방식으로 조명하면서 큰 반향을 이끌어내고 있다.    

닷페이스는 여성, 인권, LGBT 등 미디어에서 적극적으로 다루지 않았던 이슈들을 끄집어냈다.(▷링크) 시트콤협동조합은 프로젝트 형식의 콘텐츠 제작집단으로 지난 1월 노동조합을 주제로 한 웹드라마 <그새끼를 죽였어야했는데>(▷링크)를 제작해 관심을 모았다.

닷페이스.face는 2016년 문을 연 뉴미디어 스타트업으로, 지난해에는 청소년의 성을 사는 성매수자들을 집중적으로 조명한 ‘Here I Am 프로젝트’, 브로커와 업주, 성매매에 노출된 '타이 마사지사' 시리즈 등을 선보였다. 

지난해 말 공개된 Here I Am 프로젝트의 1편 ‘즐거운 채팅 "교복 챙겨 왔어?"’(링크)는 페이스북에서 160만 건 이상 조회수를 기록했고, 목표 금액 500만원으로 진행했던 후원 텀블벅 최종 모금액은 4천만 원이 넘었다.

시트콤협동조합은 지난 1월 5부작 웹드라마 <그새끼를 죽였어야했는데>(이하 ‘그새죽’)를 페이스북과 유튜브 계정에 선보였다. '노동조합'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드라마제작진들의 이야기 위에 맛깔나는 대사를 실어 전달했다. ‘재밌다’는 입소문에 평균 1만 건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다. 콘텐츠 공개 20일 만에 구독자 수만 1600여 명이 생겼다. 

<PD저널>은 지난 7일 시트콤협동조합 이경민 감독(30)·송현주 작가(31)와 <닷페이스> 장은선 PD(29)·이선욱 PD(32)를 불러 모아 뉴미디어 영역에서 주목받는 콘텐츠 제작 과정의 뒷이야기를 들었다. 

시트콤협동조합에서 ‘노조’에 대한 시트콤을 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이경민 감독(이하 '이 감독) 민주노총이 ‘노동조합을 할 권리‘를 주제로 콘텐츠 제작을 윤성호 감독(<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 <출출한 여자> 등 연출)에게 의뢰했다. 이후 송 작가나 저 모두 윤 감독에게 제안을 받고 합류했다. 무거울 수 있는 주제라서 쉽게 다가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웃으면서 볼 수 있기를 바라며 시트콤으로 만들기로 결정했다.

송현주 작가(이하 '송 작가') 처음부터 ‘시트콤협동조합’이라는 이름이 있던 건 아니다. 콘텐츠를 공유할 수단이 필요해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들었고, 페이지 이름을 ‘협동조합’이라고 붙였다. 

이 감독 <그새죽> 촬영은 하루 만에 끝났는데, 드라마 <유니콘의 후예>를 만드는 제작진들의 이야기다. 드라마 남자 주인공이 음주운전으로 작품에서 하차하게 되면서 제작진은 늦은 밤 모여 긴급 회의에 들어간다. 그때 메인작가가 하는 대사가 바로 “그 새끼를 (초반에) 죽였어야했는데...”였다.

송 작가 이전에 일했던 곳에서 겪었던 경험담이 반영됐다. 그 당시에 대표가 밤 10시가 온다고 하면, 10시로 회의가 잡혔다. 집에 갈 수도 없고, 남자친구랑 참 많이 싸웠다. 이렇게 일하면 연애는 언제하나 싶었다. (<그새죽> 5화에 마지막 부분에 ‘“우리도 각자 연애도 하고 살려면 정말 노조가 있어야겠어요”, “유니콘보다 유니온!”, “사랑과 우정의 노동조합!” 등의 대사가 나온다.)(▷5화 링크)

▲ 시트콤협동조합 이경민 감독, 송현주 작가 ⓒ김성헌
▲ 닷페이스 장은선 PD, 이선욱 PD ⓒ김성헌

<닷페이스>의 콘텐츠는 기존 언론에서 잘 다루지 않는 주제를 색다르게 접근한다. 장은선 PD가 연출한 'Here I am 프로젝트'(이하 H.I.M)는 청소년이 아닌, 성매수자들에게, 이선욱 PD가 연출한 '타이마사지사'시리즈(▷링크)는 마사지사가 아닌 업주, 브로커 등 ‘가해자’들에게 초점을 둔 점이 신선했다.

장은선 PD·에디터(이하 '장 PD) H.I.M은 10대 여성인권센터와 함께한 콘텐츠다. 성을 사는 성매수자들을 집중 조명한, 르포 형식의 콘텐츠다. ‘10대 성매매’ 취재를 위해 검색하다가 어떤 남자 기자가 성매매 어플을 통해 학생들을 만난 기사를 봤다. 학생들이 만만하니까 만났을 것이다. 쉽게 해오던 방식인데, 우리는 그런 관성이 없다. 우리는 학생이 아니라, 매수자를 만나자고 얘기했다.

이선욱 PD·에디터(이하 '이 PD) 최근에 시리즈로 했던 "타이 마사지"의 경우, 이주 여성들이 여기 와서 인권의 사각지대에 어떻게 놓였는지 취재했다. 원래는 타이 마사지사 한, 두 명을 마사지샵 밖에서 인터뷰하고 싶었다. 그런데 현실상 그게 어렵더라. 그래서 직접 타이 마사지샵에 손님인 척 들어가서 인터뷰해도 괜찮은지 묻고 다녔다.

섭외에 어려움은 없었나. 

이 PD 마사지샵에서는 거절한 사람이 거의 없었다. 제가 한국사람인 남자 손님의 위치에 있었고, 그들은 불법체류자 신분이라서 인터뷰 제안을 거절하기 어려웠을 것이란 걸 인터뷰를 하면서 깨달았다. 

개헌 이슈를 슬라임(Slime·끈적끈적한 점액질 형태 장난감)에 접목한 영상도 화제였다. 페이스북 공유 횟수가 6,700건(3월 11일 기준)을 넘길 만큼 반응이 좋았는데.

이 PD 개헌 영상은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와 함께한 프로젝트다. 재미없는 주제라도 재미있게 만들어 많은 사람들이 보도록 하고 싶었다. 기본소득을 주제로 키네틱샌드를 시도한 적이 있는데 반응이 좋아 이번에는 슬라임을 해본 거다.

콘텐츠를 제작하는 방식이 기존 매체과는 다를 것 같다.

장 PD 우리는 근본 없는 사람들이다. 어디서 일을 하다 온 사람들이 아니라, 어딘가에 발을 걸쳐놓다가 빠져나와 뭉쳐있는 상태다. 언론사 뉴미디어팀에서 일했는데, 옭아매는 분위기 속에 기름처럼 떠있는 느낌이었다.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갈증이 컸다. 조소담 닷페이스 대표의 제안을 받고 2016년 합류했다. 아이템 발제하는 것도, 하고 싶은 게 아니면 못 한다. 그래서 아이템이 탈락하는 경우는 없다. 아이템을 정하면 어떻게 다룰 것인지 함께 방향을 잡는다.

이 PD 닷페이스에서는 각자 잘하는 걸 하자고 이야기한다. ‘진짜 아니다’ 싶은 것들이 있다면 분량을 줄이거나 다른 방향으로 발전시켜 나간다. 외부 의뢰를 받아 제작하는 브랜디드 콘텐츠도 브랜드 성향 등이 맞는 사람이 맡는다. 정해진 체계는 없다. 해보다가 괜찮으면 체계가 되는 것이다. 

이 감독 <그새죽> 제작 현장에서도 특별히 정해진 규칙이 없었다. 다만 제작비 제한이 있다보니, 필요한 이야기들만 주고받았다. 이런 점들이 오히려 좋았다. 작품 규모가 크든 작든 제작비에 제한을 받지 않는 경우는 없다. 그래서 늘 주어진 제약 하에서, 최대한을 만들어내는 데 보람을 느끼는 편이다.

장 PD 처음부터 ‘큰 물’에서 놀아봤으면 제작비에 욕심을 낼 것 같다. 처음부터 정해진 자원 내에서 만들다 보니 그렇지 않다. 그래서 슬라임같은 새로운 시도도 할 수 있었다고 본다.

제작비에 대한 아쉬움은 없다고 했지만 정부 지원에 대한 필요성은 있을 것 같다.

장 PD 콘텐츠의 형식이나 정의를 만들어가고 있는 과정이라서 결과물이 형태가 다양하다. 그런데 (정부지원사업의) 자격 요건을 보면 웹콘텐츠의 정의가 모호한 경우가 많다. 예컨대 ‘제작사’만 지원을 할 수 있다는 요건이 있다. 이런 조건에 맞춰보려고 노력 중이다. 

송 작가 웹드라마할 때 지원받은 적이 있다. ‘새로운 형식의 콘텐츠’에 대한 지원사업이었는데, 요구하는 서류를 보면 기존 지원사업과 같다. 형식이나 심사기준이 자유로우면 좋겠는데 아쉽다. 그렇다보니 제출하는 스토리도 새로운 내용보다는 기존 작품을 잘라서 내게 된다.

<닷페이스>, <시트콤협동조합> 모두 주로 콘텐츠를 페이스북과 유튜브에 올린다. 

장 PD 처음에는 페이스북 중심으로 키웠다. 방송과는 달리, 지속 시간, 조회 수, 도달률, 사람들이 어떤 멘트를 달아 콘텐츠를 공유하는지 그래프로 바로 받아볼 수 있다. 페이스북은 댓글을 통해 독자들과 직접적으로 만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내부적으론 조회 수보다 지속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지속 시간을 보고 나서 (콘텐츠에) 어떻게 반영할지 고민한다.

이 PD 페이스북만큼 좋은 플랫폼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한계도 명확하다. 페이스북 운영 정책이 바뀌면서, 도달률도 낮아졌다. 페이스북 사용자가 정해져 있다 보니 페이스북에만 의존하면 더 많은 독자들에게 다가가지 못하는 문제가 생긴다. 처음엔 페이스북의 댓글, 좋아요, 공유수만 봤다면, 지금은 평가 척도를 다변화하려고 한다.

이 감독 처음엔 페이스북이나 유튜브를 잘 몰랐다. 그래서 공부를 하다보니 지속시간이 있는 걸 알게 되고, 댓글을 보게 됐다. (<닷페이스>처럼) 저희도 조회수를 목표로 잡은 적은 없었다.

SNS를 통해 수용자들의 반응을 바로 볼 수 있을텐데, 기억에 남는 피드백이 있다면.

이 감독 다른 이에게 추천하겠다는 댓글이 가장 좋다. 주변 추천으로 봤다가 의외로 너무 재밌다는 반응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이 PD 지난해 7월, ‘짜장면은 누가 처음 만들었을까’를 만들었는데, 이 콘텐츠를 꼭 봤으면 하는 사람들(이민자 커뮤니티 등)이 자신의 이야기를 쓰면서 콘텐츠를 공유했더라. 그 점이 좋았다.

장 PD H.I.M 프로젝트는 펀딩도 성공했고, 정책적인 변화도 있다. 국회에서 “H.I.M" 관련해 아동청소년법 개정 간담회를 했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꽉 채웠다. 어떤 콘텐츠를 통해 많은 사람들의 경험을 나눌 수 있는 장을 마련할 수 있다는 걸 확인했다.

뉴미디어영역에서 콘텐츠를 제작하는 이들끼리 교류할 수 있는 장은 있나. 

이 PD 생각보다 그런 네트워킹을 많이 없다. 만약 있다면 아이디어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페이스북을 보면 뉴미디어 얘기가 많은데 대부분 외부에서 관찰하는 입장이다. 막상 제작하는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제작하는지 궁금하다.

장 PD·이 감독·송 작가 그래서 이런 자리가 마련돼서 좋았다. 

앞으로 계획과 바라는 점이 있다면.

이 감독 처음부터 목표가 이윤 창출이나 높은 조회 수가 아니었다. 정했던 원칙 중에 하나는 적정 수준의 임금을 받는 것이었다. 현실적으로 연출을 하고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는 게 쉽지 않은 환경이다. <그새죽> 시즌2는 아직 확정된 건 없지만, 논의는 계속하고 있다.

이 PD 처음엔 ‘너 요즘 뭐해’라는 질문에 부연 설명을 많이 해야했다. 이런 게 불편하고 싫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다보니, 다른 사람들도 이런 과정을 겪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저만의 영역에서 독보적인 제작자가 되고 싶다는 바람이 있다.

송 작가 뉴미디어 영역에서의 진입 장벽이 낮아지고 있다. 예전엔 드라마는 중간에 자르는 게 용이한 서사였다. <그새죽>을 하고 난 다음에는 하고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웹콘텐츠도 쓸 수 있겠다는 자신이 생겼다.

장 PD 닷페이스 초반에는 신나기도 했지만 불안감도 컸다. 스타트업인만큼 안정을 기반으로 하는 게 아니었다. '닷페피플'이 원하는 이야기들을 꾸준하게 취재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수익이 필요하다. 브랜디드 콘텐츠를 계속 만들겠지만 동시에 우리가 하고픈 이야기도 놓치진 않은 게 중요하다. 1년 후 바라는 점은 (예전 인터뷰에서) 닷페이스가 '온리원'의 자리를 확고히 하길 바란다고 말했는데, 지금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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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2018-09-13 16:00:47
LGBT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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