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비서가 왜 그럴까’, 역전된 관계의 통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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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비서가 왜 그럴까’, 역전된 관계의 통쾌함
능동적인 여주인공 내세워 전형적인 ‘신데렐라 스토리’ 탈피
  •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 승인 2018.06.19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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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저널=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tvN 수목드라마 <김비서가 왜 그럴까>는 구도만보면 논란의 소지가 다분하다. 부회장과 비서의 로맨스라는 구도가 그렇다. 전형적인 신데렐라 스토리는 최근 미투운동이 부각시킨 상하관계 혹은 권력관계라는 틀에 적용하면 오해받기 십상이다. 돈과 지위를 가진 자에 의해 행해지는 강압적인 관계라는 프레임으로 말이다.

하지만 <김비서가 왜 그럴까>는 아주 간단한 방법으로 이 프레임을 깨버렸다. 그것은 상하관계의 ‘하’에 해당하는 비서 김미소(박민영)라는 독특한 캐릭터를 통해서다. 드라마는 이영준(박서준) 부회장이라는 요령부득의 나르시스트가 거꾸로 능동적인 김미소라는 비서에게 휘둘리는 역전된 관계를 보여준다. 역전된 관계는 시청자들에게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만든 가장 중요한 요인이기도 하다.

드라마는 9년을 비서로 일하면서 이영준의 일거수일투족을 챙겨왔던 김미소가 이제 더 이상 비서 일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이 때부터 이영준은 그다지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던 김미소의 존재에 대해 들여다보게 된다.

천하의 나르시스트이기 때문에 자신의 요구나 행동에 별반 반응을 보이지 않는 김미소의 냉담함은 점점 이영준을 늪 속으로 빠뜨린다. 어쩌면 자신이 그간 살아왔던 삶의 상당부분이 김미소라는 인물 때문에 가능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고, 그래서 비서가 아닌 인간 김미소를 다시 보게 된다는 것.

▲ tvN <김비서가 왜 그럴까> 현장 포토.ⓒtvN

바로 이 지점은 비서와 부회장의 관계와 함께 상하관계가 갖는 논란의 소지도 깨버리게 된 중요한 설정이다. 회사생활을 오래하면서 사내 관계 속에서 상사와 부하직원으로 있던 이들도 그 관계가 깨지는 순간이 있다. 바로 사표를 낼 때다.

누구나 사직서 하나를 가슴에 품고 다니는 직장인들은 사표를 던지는 순간을 상상하며 버틴다. 그러니 그저 사직서를 들고 다니는 정도가 아닌 진짜로 사의를 표명한 김미소는 부회장 이영준 앞에 당당한 주체로 설 수 있게 된다.

이제 당황하게 되는 인물은 오히려 이영준이다. 직장 내 상하관계 속에서는 우위에 있다고 느꼈던 그가 이제 사표를 내버린 김미소 앞에서 더 이상 우위에 설 수 없기 때문이다. 관계의 주도권은 이미 김미소에게 넘어갔다. 이영준은 직장 내의 관계와 사적인 관계의 괴리 사이에서 혼돈을 느끼게 되고, 애초 이영준에 대한 사심 따위는 없던 김미소에게 끌려갈 수밖에 없게 된다.

<김비서가 왜 그럴까>는 이런 역전된 관계 속에서 멜로드라마라는 틀에 여러 층위의 의미심장한 질문들을 채워 넣는다. 비서로서의 삶과 한 개인의 주체적 삶 사이에서 후자를 택하는 김미소라는 캐릭터를 통해 자본과 권력에 의해 위계화된 관계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김비서가 왜 그럴까’하고 던지는 이영준의 질문은 주어가 ‘김비서’일 때는 해답을 찾기 어렵다. ‘김미소는 왜 그랬을까’를 물어봤을 때 비로서 해답이 보인다.

드라마는 이영준이 김비서로만 알던 인물이 사실은 김미소라는 주체적 인간이었다는 걸 알아가는 과정을 그린다. 멜로드라마가 보여주는 사랑의 과정이기도 하지만, 사람을 위계나 지위와 상관없이 그 자체로 받아들이는 과정이기도 하다. 나아가 우리가 현실에서 만나는 누군가를 다시금 들여다보게 만든다. 김비서, 김대리, 김과장이 아니라 이름을 가진 주체들이었다는 것.

시청자들이 이 드라마에 열광을 하는 건 아마도 이 지점 때문일 것이다. 갑을관계에서 벗어나 사람의 진가를 보게 만드는 것. 시청자들이 <김비서가 왜 그럴까>를 통쾌한 멜로로 받아들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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