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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언론교류, ‘최초’ 경쟁 벗어날 때

기사승인 2018.07.11  19:3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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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전히 최초에 집착하는 언론, 내실 다져야

▲ 조선중앙TV는 지난 5월 26일 열린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두 번째 정상회담 영상을 27일 공개했다. 사진은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악수하는 모습(사진=조선중앙TV 캡쳐) ⓒ뉴시스

[PD저널=오기현 한국PD연합회 통일특위 위원장(SBS PD)] 남북관계가 개선되면서 각 분야에서 남북교류사업이 경쟁적으로 펼쳐지고 있다. 특히 언론계는 예나 지금이나 ‘최초’ 라는 수식어를 붙이며 남북교류에 열을 올리고 있는 분위기다. 남북교류가 활발하던 시기 교류 현황을 보면 신문보다 방송에서 ‘최초’라는 제목을 많이 붙였다.

-1997년 12월 16일 중앙일보 <북한 문화유산> 분단 후 첫 취재
-1999년 12월 5일 최초 방북대중공연 SBS <평화친선음악회>
-1999년 12월 7일 방송사 최초공식취재 SBS <조경철박사의 52년만의 귀향> 
-1999년 12월 20일 방송사상 처음 위성통신으로 남한송출 <MBC 민족통일음악회> 
-2000년 8월 <KBS교향악단-조선국립교향악단 (최초)남북합동연주회> 
-2000년 9월 10일 KBS 최초 남북한 공동제작 3원 생방송 <백두에서 한라까지> 
-2000년 10월 최초 평양 생방송 <SBS 평양뉴스 2000> 
-2001년 4월 MBC 최초 <여기자 평양리포트-평양 10박11일> 
-2002년 1월 <KBS 드라마 제국의 아침> 최초 평양 및 백두산 촬영 
-2002년 9월 20일 <KBS교향악단-조선국립교향악단 합동연주회> 최초 남북동시생방송 
-2002년 9월 29일 MBC <오! 통일코리아> 최초 북한지역생방송 
-2002년 11월 9일 남북최초공동답사 KBS <세계문화유산 한반도의 고인돌> 
-2005년 3월 남북최초 다큐멘터리 공동제작 MBC <개마고원의 야생동물> 
-2007년 최초 남북합작드라마 KBS <사육신>

대표적인 ‘최초’ 취재와 방송만 추린 것이다. 이밖에도 최초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 있는 기사나 프로그램은 무수히 많다. news라는 단어가 new things(새로운 것들)라는 뜻을 가진 프랑스 고어 noveles에서 왔다는 것을 볼 때, 언론인들의 최초 경쟁은 숙명인 듯하다. 최초를 위해서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고 위험을 감내하기도 한다.

북한 관련 취재・제작은 분단시대를 마감하고 통일시대를 앞당긴다는 뜻에서 언론인으로서 선구자적 사명감이 요구된다. 그래서 남들보다 먼저 만나고, 남들이 하지 않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려고 한다. 최초로 방북하고, 최초로 촬영하고, 최초로 공동제작하고, 최초로 남한으로 송출한다.

공명심이 작용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지금 보면 비슷한 취재나 프로그램 제작을 하면서도 최초의 타이틀을 붙인 경우가 적지 않다. 방점을 어디 두느냐에 따라서 어떤 내용이든 최초가 될 수 있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다.

그래도 냉전 이데올로기의 그림자가 여전히 언론활동을 제약하던 시기에 최초는 어떤 형태든 나름 의미가 있었다. 북한측을 접촉하려면 부득이 위법을 감내해야 했고, 사업을 진행하려면 편법을 동원할 수밖에 없는 여건이었다. 남북관계에서 ‘최초’란 이데올로기의 편견을 깨뜨리는 과정이자, 평화의 계단을 하나씩 쌓아가는 역사적 작업이었다. 명분도 실제만큼 중요한 시절이었다.

한동안 단절됐던 남북대화가 진행되면서 언론사들의 경쟁이 다시 치열해졌다. 평양지국 개설과 북한의 주요인사 인터뷰 등에 공을 들이는 모양새다. 인기 방송 프로그램들도 북한 현지 제작 가능성을 다투어 알아보고 있다고 한다. 최고지도자의 방침을 해설・선전하고 인민들의 정치사상적 통일을 강화하는 언론관에 익숙한 북한측이 우리의 이런 경쟁적 요구를 다 수용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그런데 아쉬운 것은 아직도 우리 언론들이 ‘최초’에 집착하는 모습이다. 지금이라고 최초의 가치가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고, 잘 찾아보면 최초의 영역이 여전히 남아있을 것이다. 하지만 언론도 엄연히 시대에 맞는 역할이 있다. 과거 6・15선언 이후의 남북 언론교류 시대가 개척기였다면, 지난 4월 27일 판문점선언 이후는 내실을 다지는 기간이라고 생각된다. 명분 때문에 소중한 에너지를 낭비할 때는 아니라는 것이다.

과거 방북 제작 경험에 비추어 보면, 북한 현지 취재나 현지 프로그램 제작의 범위는 매우 제한적이다. 옳다 그르다를 떠나, 북한의 현실이 우리의 다양한 제안이나 요구를 수용하기 불가능하다.

17년 전 한 방송사가 용감하게 평양에서 대하드라마 100부작을 제작하겠다고 시도한 적이 있다. 그 때 필자는 드라마 기획자에게 우선 100명도 족히 넘을 출연자와 스태프가 야외 촬영할 때 밥을 어떻게 먹이냐고 물었다. 그는 간단히 도시락을 사가면 된다고 대답했다. 나는 아마 도시락 공장부터 새로 지어야 될 거라고 말했다.(지금은 여건이 달라졌을 것이다) 나는 그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도 나의 생각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했다.

▲ 개성공단기업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 등 위원들이 지난 2월 26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후문에서 시설물 점검 위한 개성공단 방북신청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지금 평양에는 서방언론인 AP통신과 AFP통신의 평양지국이 개설되어 있다. 교토통신, 신화통신, 인민일보, 이타르타스통신도 지국을 내고 활동 중이다. 서방언론 최초로 평양에 지국을 개설한 AP통신의 경우 북한인 취재기자와 사진기자 한 명씩을 채용했다고 한다.

지국장이 있지만 상주를 할 수는 없고, 북한기자들이 취재한 기사와 촬영한 사진을 북한당국이 검열한 이후 송고하는 방식이라고 알려져 있다. 다른 언론사들도 서방세계의 언론관에 따른 자유로운 취재활동을 할 수 없음은 당연하다.

남북 언론교류를 제안하지만 넘어야 할 산은 많다. 우리는 자유로운 정보의 교류를 원하지만, 북한 입장에서는 체제결속을 위해 언론이 사상교양과 정보통제 기능을 강화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럴 때일수록 다양한 교류를 통해서 접점을 찾아가는 과정이 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모처럼 찾아온 소중한 기회를 날려버리지 않으려면, 북한당국을 자극하지 않으면서도 교류를 지속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최초’의 함정에 매몰되지 않으면서 남과 북의 진정성을 확인할 수 있는 공간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 명분보다는 실질이 중요한 시대다.  

오기현 한국PD연합회 통일특위 위원장 webmaster@pdjournal.com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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