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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정오 딸 막말' 보도가 아쉬운 이유

기사승인 2018.11.23  22:4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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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이은 사회 지도층 '갑질' 폭로 사회적 공분 일으켰지만...'배임 혐의' 등 구조적 문제 주변화

▲ ⓒ Pixabay

[PD저널=이미나 기자] 2011년 미국 스탠포드 대학의 인지언어학 교수인 보로디츠스키와 티보도는 비유가 인간의 사고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실험을 통해 알아봤다. 

연구진은 피실험자들에게 가상의 도시에서 범죄율이 증가하고 있다는 내용이 담긴 글을 읽게 하고 범죄율 감소 방안을 물었다. 피실험자들 절반에게는 '범죄는 바이러스다'라는 문장이 담긴 버전을, 나머지 절반에게는 '범죄는 맹수다'라는 문장이 담긴 버전을 제공했다. 

이 차이는 컸다. '범죄는 맹수다'는 문장이 담긴 글을 읽은 피실험자들 가운데선 74%가 처벌에 방점을 뒀다. 반면 '범죄는 바이러스다'라는 정보를 받은 피실험자들 중에 처벌 강화를 방안으로 꼽은 비율은 56%였다.

대상을 어떻게 비유하고 표현하느냐가 수용자의 판단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 실험은 오늘날 언론에도 시사점을 준다.

연초 한진그룹 일가의 '갑질' 파문이 보도된 것을 시작으로 1년 내내 사회 지도층의 '갑질' 의혹 보도가 끊이지 않았다.  

지난달엔 양진호 위디스크 회장의 직원 폭행 등 '갑질' 파문이 <뉴스타파>와 <셜록>의 보도로 불거졌다. 지난 17일에는 MBC <뉴스데스크>가 방정오 TV조선 전무의 딸이 운전기사에게 막말을 일삼은 정황을 보도했고, 뒤이어 21일 <미디어오늘>이 이 대화의 녹취록 일부를 공개했다.

충격적인 내용에 대중은 분노했다. 한진그룹 조현아·조현민 자매를 위시한 사주 일가에, 양진호 회장에게, 방정오 전무의 딸에게 비판 여론이 집중됐다. 결국 한진그룹은 지배구조 개선에 나서게 됐고, 양진호 회장은 경찰에 구속됐다. 방정오 전무는 지난 22일 '자식 문제로 물의를 일으킨 점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며 사퇴 의사를 밝혔다.

대중의 분노를 자양분으로 한 '갑질' 보도의 파급력이다. MBC와 <미디어오늘>은 내부에서 보도 여부를 놓고 논란이 있었지만 공익적 가치가 크다고 보고 만 9세인 방정오 전무 딸의 음성을 공개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사회 지도층의 '갑질' 폭로에 초점을 맞춘 보도에 아쉬움은 남는다. 일련의 보도는 '갑질' 행위의 주체인 이들을 '악마화'하면서, 그의 '잘못'이 아니라 인물에 대중의 공분이 향하도록 만들고 있다.

7분가량의 <뉴스타파> 양진호 회장 직원 폭행 보도 영상에는 양 회장이 전 직원의 뺨을 때리고 뒤통수를 가격하는 모습이 여섯 차례 반복된다. 전 직원의 뺨을 때리는 장면은 확대돼 연속 재생되기도 한다.

11분 30초가량의 워크숍 보도도 마찬가지다. 일부 화면을 흐리게 처리했지만, 닭이 일본도로 베이거나 화살에 찔리는 모습이 반복해 등장한다. 일본도에 베여 땅 위에 놓인 닭의 모습이 확대된 장면도 있다. 두 기사의 본문에는 '공포' '두려움' '엽기적인' '끔찍한' 등의 수식어가 빈번히 사용된다.

방정오 TV조선 전무의 딸이 운전기사에게 폭언을 쏟아낸 일은 '조선일보 손녀' 사건으로 명명돼 며칠간 포털사이트 검색어로 떠돌았다. 방정오 전무의 딸로 추정되는 사진이 돌았고, 연관 검색어엔 '조선일보 손녀 학교' '조선일보 손녀 얼굴'이 올랐다.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도 확인되지 않은 과거 행적이 연예계 관계자의 입을 빌려 기사화되는 등 그간의 기행이 부각되는 양상을 띄었다. '갑질' 행각이 땔감이 된 '어뷰징' 기사들이 쏟아진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문제는 이들의 '기행'이 전면에 떠오르면서 실제 언론이 짚고자 했던, 혹은 짚어야 했던 문제들이 주변화 된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된 연구 결과처럼, '맹수'로 묘사된 이들이 일선에서 물러나거나 구속되는 등 처벌을 받는 것에만 시선이 쏠리기 때문이다.

한진그룹 일가가 갖고 있었던 본질적 문제는 총수 일가의 전반적인 전횡이었다. 방정오 TV조선 전무 딸의 '막말' 파문은 정작 <조선일보>가 회사 임원의 운전기사 인건비까지 부담했다는 배임 의혹을 가렸다. 양진호 회장도 '엽기 기행'이 디지털 성범죄에 기반을 둔 '웹하드 카르텔'로 엄청난 부를 쌓아올렸다는 사실보다 주목을 받았다. 

<뉴스타파>의 양진호 회장 직원 폭행 보도와 워크숍 보도 조회수가 각각 115만, 100만이었던 것에 비해 '웹하드 카르텔'을 고발하는 보도의 조회수는 10분의 1 수준이었다. <조선일보> 사주 일가의 반복된 배임·횡령 혐의도 크게 조명 받지 못하고 있다. 방정오 TV조선 전무의 사과문에도 이에 대한 언급은 찾아볼 수 없다.

대중의 분노를 일으켜 사회의 정의를 세우는 건 언론의 역할이다. 하지만 제도와 구조적인 문제를 짚지 못하고 '공공의 적'에 대한 분노만 유발하는 보도는 아쉬움을 남긴다.

<뉴욕타임즈>에서 18년간 기자로 일했던 에리카 구드는 지난 2월 미국 플로리다 주 파크랜드의 학교에서 일어난 총기 난사 사건 이후 '범인에 지면을 주는 대신 희생자나 해결책에 집중하는 편이 미래의 사건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공분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자리는 건설적인 논의로 채워져야 한다. 언론의 진짜 역할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미나 기자 neptune@pdjournal.com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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