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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코 쓴 글이 운명을 바꾼다

기사승인 2019.02.12  16:2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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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흔 글쓰기를 시작했다⑥]

▲ ⓒ픽사베이

[PD저널=김민태 EBS PD] “또 책 냈다며?” 심심찮게 듣는 말이다. 그래도 “대단하네”라고 이어지는 말에 무어라 답하기가 참 머쓱하다. 책을 내면 어김없이 뿌듯함을 느끼는 시간이 찾아온다. 하지만 내가 대단히 어려운 일을 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책은 적절한 목표의식과 몰입 경험의 결과다. 적지 않은 노력을 쏟아야 하지만, 이것을 위해 나는 이를 악물고 버틴 적은 없다. 대개 몰입해서 자연스럽게 써 내려가기에, 엄밀히 말하자면 ‘내가 뭘 했다고’ 하는 생각이 들 뿐이다.

스물한 살 때 가졌던 내 소망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마흔에는 내 이름이 적힌 책을 내고 싶다.’ 글을 써서 책으로 낸다는 것이 그렇게 멋있어 보일 수 없었다. 나도 왕성한 집필 활동을 하고 있는 강준만 전북대 교수처럼 되고 싶었다. 그래서 그의 글쓰기 방식을 열심히 흉내를 내서 내 글을 쓰곤 했다.

책을 낸다는 것은 의지라기보다는 나의 소망이었는데, 그 일은 기적처럼 이루어 졌다. 묘하게도 스물한 살에 소망했던 바로 그 나이, 마흔에 나는 책을 내게 되었다. 우연히 적은 세 문장은 장문의 글로 이어져 <일생의 일>이라는 책으로 연결됐다. <나는 고작 한번 해봤을 뿐이다>도 내가 SNS에 작은 글 덩어리를 올리지 않았다면 아마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글을 쓰기 위해 자료 조사를 하면서 내가 겪은 우연한 경험이 그리 특이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 글쓰기로 대중의 사랑을 받은 사람 중 의외로 많은 이들이 인터뷰에서 ‘우연’이라는 키워드를 빼놓지 않는다.

진중권 교수의 첫 데뷔작은 <주체사상비판>이었지만, 그가 본격적인 대중 글쓰기를 시작하게 된 것은 <미학 오디세이>였다. 그가 독일로 유학을 갈 때 ‘비행기 값이나 벌어볼까’라는 생각으로 쓴 글이 의외로 사람들에게 큰 호응을 얻게 되었다.

애거사 크리스티는 평범한 가정주부였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해 남편이 장교로 참전하면서 그녀의 운명은 바뀌었다. 당시 지역 병원에 간호사로 지원한 그녀는 그곳에서 각종 약과 독극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알게 된 지식을 바탕으로 그녀는 소설을 쓰기로 결심한다. 그렇게 1920년에 첫 작품 <스타일스 저택의 괴사건>을 펴냈고 차츰 독자의 반응을 얻기 시작했다. 그녀의 작품은 전 세계적으로 40억 부가 넘게 팔렸다.

새로운 연결은 잠자고 있던 잠재력을 깨운다

꾸준히 글을 쓰다 보면 ‘내가 이런 것에도 흥미가 있었나?’ 하는 생각이 종종 들 때가 있다. 흥미의 발견, 혹은 씨앗의 발아라고 할 수도 있다. 한번은 이런 적이 있었다. 2015년 봄 나는 우연히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을 듣게 됐는데, 이 곡을 들으면서 마치 거친 바다의 파도를 피아노 한 대가 자기만의 선율로 제압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 후로 나는 이 곡에 단단히 꽂혀 100번도 넘게 들었다.

다음 단계는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모차르트, 슈베르트, 베토벤… 나는 모든 클래식을 찾아 듣기 시작했다. 음악 과목으로 클래식을 배웠던 학창 시절 이후 처음으로 접한 클래식이었다. 이 일련의 사건의 시작은 글쓰기였다. 나는 고전 인물들을 조사하고 글을 쓰다가 ‘피아노 협주곡 1번’을 듣게 됐고, 그렇게 클래식이라는 새로운 주제가 얻어걸리게 된 것이다.

신선한 발견은 언제나 새로운 연결을 준비한다. 내가 경험한 또 다른 예를 살펴보자. 이를테면 ‘글쓰기와 다이어트’라고 하면 언뜻 두 가지가 전혀 관련이 없는 듯 보일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나는 음식을 탐구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이후 오랫동안 목표했던 다이어트에도 성공했다. 그 기저에 바로 글쓰기가 있었다. 음식에 대한 글을 한두 편 쓰면서 음식에 흥미를 갖게 됐고 음식에 대해 상세히 살피다 보니 식이요법으로 관심이 더 넓어지게 됐다.

잠재력이 깨어나는 순간 알 수 없는 미래가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지금 내가 이 글을 쓰는 것도 바로 그런 경우다. 내가 글쓰기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니! 2년 전만 해도 이것은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이 주제는 나와는 무관한, 내게는 너무 어려운 주제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보란 듯이 지금 글쓰기에 관한 글을 쓰고 있지 않나. 글쓰기는 나의 삶을 내가 전혀 상상도 할 수 없는 방향으로, 더 흥미로운 곳으로 몰고 간다. 

김민태 EBS PD webmaster@pdjournal.com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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