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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증편향에서 벗어나려면

기사승인 2019.05.14  17: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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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필독도서⑭] ‘팩트풀니스’

▲ ⓒ픽사베이

[PD저널=오학준 SBS PD] 책을 펼치면 저자는 독자에게 13개의 문제를 던진다. 침팬지도 33%는 정답을 맞힐 수 있다며 독자들을 긴장시키면서. 나름대로 균형감 있게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고작 4문제만 정답을 맞혔다. 30%, 실망스런 정답률이었다.

사실 문제들은 그리 어렵지 않다. ‘세상은 지난 20년간 빈부격차가 더 늘어나고 있을까' '지구는 지난 20년간 더 더워지고 있을까’와 같이 정교한 계산이나 추리를 요구하기보다는, 독자 자신의 세계관이 무엇인지를 묻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가 보기에 사람들이 침팬지보다 높은 정답률을 올리기 어렵다. 특히나 더 높은 질의 교육을 받고, 더 부유한 환경에서 자라온 사람들은 이러한 오해로부터 벗어나기가 더욱 어렵다. 침팬지에게는 없는 ‘체계적인 오해’가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 오해는 사람들이 거짓말에 휩쓸리거나 자료가 부족하거나, 공부를 안 해서 일어나는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다. 저자가 보기에 사람들은 세상을 ‘항상’ 오해하고 있다.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없게 만드는 ‘본능’이 사람들에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한스 로슬링, 그리고 그의 아들 내외가 함께 쓴 이 책 <팩트풀니스>는 사람들이 세상을 얼마나 체계적으로, 그리고 오랫동안 오해해 왔는지를 지적한다. 그리고 그 오해의 가장 밑바닥에는 사람들의 몇 가지 ‘본능’을 열거하고, 이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를 자신의 경험을 통해 짚어본다.

저자가 보기에 수많은 통계 자료들이 실제 세상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지만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 싶은 세상의 모습을 믿는다. 이는 가짜뉴스와 같은 적극적인 거짓말 때문이라기보다는, 세상을 둘로 나누려고 하고, 부정적인 것에 집중하고, 명확하고 단순한 이유들을 찾으려는 ‘본능’ 때문이다.

▲ 통계학 분야의 세계적 석학 한스 로슬링이 쓴 <팩트풀니스>

이 본능은 인간이 수렵생활을 시작하던 무렵부터 들러붙어 있던 것들이라 교정하기 쉽지 않다. 자연에 대처할 신체적 능력이 현저히 부족한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빠른 판단이었다. 맹수의 습격을 인지하고 얼마나 빠르게 도망갈 것인지, 이 아름다운 열매가 독이 들었는지를 매번 심사숙고할 수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그 때 세상을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건 꽤나 괜찮은 태도였다.

인간의 환경은 빠르게 변했고, 이제는 두꺼운 벽으로 둘러싸인 집 안락의자에 앉아, 수많은 데이터들을 놓고 심사숙고하며 지방이 더 적은 고기가 무엇인지를 오랜 시간에 걸쳐 고를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본능이 변할 만큼 시간이 지난 것은 아니었다. 저자가 보기에 이 불균형한 상황이야말로 세계를 오해하게 만드는 근본 원인인 셈이다.

저자는 세상이 조금씩 더 나아지고 있다는 사실들을 증명할 수 있는 다양한 통계 자료들을 제공한다. 그리고 자신이 세계 여러나라에서 활동하며 겪었던 오해들, 자기 스스로 범했던 오류들을 공유하며 이 ‘본능’을 극복해 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독자에게 털어놓는다. 체계적 오해는 동정, 측은함, 배려와 같은 일견 도덕적인 감정들에 의해서도 촉발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세상이 과거보다 나빠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실제 단편적인 뉴스나 데이터들을 보고 그렇게 판단했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러한 뉴스들을 보고서도 세상이 나아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너무 냉혹한 판단이라고 ‘느껴지는’ 데서 비롯한 것이기도 하다.

저자는 그 ‘느낌적 느낌’보다는 데이터에 기초한 사실을 택할 수 있는 냉정한 태도들을 요구한다. 그래야만 부족한 사회적 재화들을,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방법으로 적절한 이들에게 적절한 양으로 제공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는 바는 쉽게 요약 가능하다. 인간의 본성이 얼마나 끈덕지며, 그 본성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면, 세상은 생각보다 점점 나아지고 있다는 희망을 충분한 근거를 바탕으로 가져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본성’이라는 것은 단순히 부단히 노력한다면 벗어날 수 있는 성질을 지니고 있을까.

어쩌면 이 책은 인간의 본성이 어떤 것들이 있는지 열 가지로 단순화하고 그것들을 나열해 사례들을 제시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이러한 본성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능력을 길러낼 수 있는지 그 개인적, 사회적 방법들을 찾는 데까지 나아갔어야 하는 게 아닐까.

모두가 저자와 같이 깨달음을 얻지 못한다. 오히려 어렸을 때 받았던 의무 교육들을 통해 얻은 오래된 정보들을 새롭게 갱신하지 않는 사람들이 더 많다. 그들은 새로운 지식에 그리 적극적일 이유도 없고, 적극적이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문제는 어떻게 어른들을 재교육의 장으로 끌어들일 수 있느냐다.

또 하나, 사람들은 과연 저자처럼 세상을 올바르게 바라보고 싶어 하는 것일까. 반대로 내가 지금 믿고 있는 세계의 모습이 진정한 세계의 모습이길 바라는 건 아닐까. 체계적 오해의 밑바닥에 있는 감정들은 단지 정확한 정보만 전달해준다고 해서 해소될 수 있는 것일까.

자신이 믿고 따르던 종교 지도자가 사실은 범죄자라는 사실을 신도들에게 알려준다고 해서, 그들이 하루아침에 자신의 세계관을 뒤집기를 바라는 건 너무 순진한 기대가 아닐까. 저자의 기대는 숭고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순진한 게 아닐까.

좋은 주장을 받아들이고, 발전시키는 건 독자들의 숙제다. 진실을 위해 치밀하게 고민하기보다, 편견을 지탱할 사례를 찾아 헤매는 이들이 더 많은 시대에, 어른들을 어떻게 새롭게 공부하도록 할 수 있을까. 이 세계의 미래는 끝없는 공부를 선택하는 이들이 더 많아지는 순간에야 유일하게 견뎌볼만한 것이 되지 않을까.

사람이 죽어야만 뉴스가 된다며 반쯤은 빈정거리는 말투로 뉴스를 뒤지던 나는 미래를 견딜만한 것으로 만들고 있는 것일까.

오학준 SBS PD webmaster@pdjournal.com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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