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회칼 테러’ 협박, 사퇴로 끝날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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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실 수석이 특정 언론 공개 협박하는 시대
‘여당 총선 승리’ 위해 ‘황상무 사퇴’ 여론 조성한 언론

지난 14일 MBC 뉴스데스크가 보도한 황상무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의 '회칼 테러' 발언 리포트.
지난 14일 MBC 뉴스데스크가 보도한 황상무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의 '회칼 테러' 발언 리포트.

[PD저널=이봉우 미디어인권연구소 뭉클 객원연구원] 현 정부 들어 언론계에 기상천외하고 비참한 일들이 잇따랐으나 예고편에 불과했다. ‘김만배 인터뷰’를 인용한 게 ‘가짜뉴스’라며 방송통신위원회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를 통해 법적 권한도 없는 ‘인터넷 언론 가짜뉴스 신속심의’를 강행할 때도, 대통령의 비속어 보도가 ‘가짜뉴스’라며 전용기 탑승을 배제할 때도, 출범 이래로 2번 밖에 안 나왔던 ‘관계자 징계’를 이번 총선에서만 6번이나 남발하며 특정 언론사를 겁박할 때도, 상상할 수 없던 일이 벌어졌다. 바야흐로 대통령실 수석이 특정 언론사를 공개 협박하는 시대다. 

앞서 언급한 다른 ‘언론 탄압’ 사례의 중심에도 MBC가 있었다. 3월 14일, 황상무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의 ‘언론인 회칼 테러’ 발언도 MBC를 향했다. 대통령실의 고삐를 풀어버린 건 이종섭 전 국방부장관의 호주 출국에 대한 추적 보도인 것으로 보인다. MBC는 이미 지난해부터 해병대원 순직 수사 외압 의혹을 꾸준히 파헤쳐왔고 언론사 중 유일하게 이 대사의 출국 직전 모습을 담았으며 호주 현지까지 쫓아가 현지 교민 반응과 이 대사의 행보를 추적했다. 대부분의 언론이 초유의 수사 개입 의혹을 뭉개는 동안 MBC, <경향신문> 등 소수 매체가 ‘어젠다 키핑’에 매진했다. 대통령실 입장에서는 그 중에서도 정권 초기부터 충돌해왔던 MBC가 다시 눈엣가시로 보였을 것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다른 언론의 반응이다. 14일 문제의 ‘회칼 테러’ 발언이 나온 날, 그 자리에 다른 언론사 기자들도 많았지만 저녁종합뉴스에서 MBC가 보도할 때까지 아무도 보도를 안 했다. 이슈가 터진 후 논란이 커지자 보수언론들도 부랴부랴 황상무 수석은 물론 이종섭 대사도 자진사퇴하라는 비판을 내놓기 시작했는데 자세히 읽어보면 복잡한 속내가 드러난다. <문화일보> 지난 18일자 사설 <이종섭·황상무 당장 사퇴하는 게 尹정권 위하는 길이다>는 “선거를 불과 23일 앞두고 여권에 불리한 악재가 속출하고 있다”면서 이종섭, 황상무 두 사람에게 “결자해지 결단이 윤 정권을 돕는 길”이라 촉구했는데 그 이유가 간단하지 않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소환도 안 한 상태에서 공관장이 국내에 들어와 대기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는 이종섭 대사와 관련한 대통령실 입장을 놓고 “틀린 말은 아니지만 많은 유권자가 대사로 출국했던 과정에 동의하지 못한다는 점”을 짚었고, 황상무 수석에 대해서는 “설사 만취 상태일지라도 고위 공직자가 결코 해서는 안 될 발언”이라면서도 “언론인을 사찰하거나, 언론사 세무 사찰을 벌인 적도 없고 그럴 의사나 시스템도 없다”는 대통령실 입장을 반론으로 붙여줬다. 

결론은 “대통령실이 사법적 기준만을 앞세워 버틴다면 여론 악화는 물론 당·정 공멸도 예상”되므로 두 사람이 알아서 사퇴하라는 것이다. 요컨대 이종섭 대사의 ‘도피성 호주대사 임명’ 논란과 황상무 수석의 ‘회칼 테러 발언’은 ‘사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고 이종섭 대사 논란의 경우 ‘소환도 안 하면서 출국금지를 해놓은 공수처’가 문제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 여당의 총선 악재’이니 두 사람이 ‘결자해지’하라는 요구다.

조선일보 3월 19일자 사설
조선일보 3월 19일자 사설

대통령실이 이종섭 대사 귀국 발표를 하루 앞둔 19일부터는 <조선일보> 사설 <대통령도 이상하고 공수처도 이상하다>처럼 ‘공수처가 잘못했다’고 대놓고 말하는 보도들도 등장했다. <조선일보> 사설은 대통령에게 “공수처 수사에 문제가 있다고 해도 지금 이 시기에 꼭 출국시켜 불필요한 논란을 자초한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하면서 “지난 1월 해병대 간부 사무실 등을 압수 수색했을 뿐 핵심 관련자들은 소환 조사도 하지 않았다. 고발 후 6개월간 사실상 수사를 안 하고 있다. 작년 12월 이 대사를 출국 금지해 놓고 정작 소환 조사도 하지 않았다. 수사 대상자의 손발만 묶으려는 것 아닌가. 공수처가 수사를 제때 끝냈다면 애초 이런 문제는 생기지도 않았다”며 공수처를 ‘사태의 원흉’으로 지목했다. ‘결국 공수처가 소환했으면 될 일 아니냐’는 식의 보도가 더욱 노골화되며 정부·여당에서는 ‘그런데도 자진 귀국했으니 우린 할 일을 다 했다’고 나서기에 적절한 판이 깔렸다.  

이러한 현실 인식은 여당, 대통령실, 언론이 모두 똑같이 공유하고 있다. <"이종섭·황상무 정리" 용산에 각세우는 한동훈…총선 승리 위한 승부수>(머니투데이, 3.18)와 같은 보도들이 한동훈 위원장을 ‘할 말을 하는 사람’처럼 묘사하는데 어떻게 된 일일까?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이종섭 대사 논란에 처음엔 문제없다고 했다가 15일부터 “이 대사 본인이 들어와서 수사에 응해야 한다”고 기조를 바꿨다. 그런 한 위원장 역시 “상당히 오랜기간 수사 진행이 없는 상태에서 출국금지가 이어진 것”이라며 역시 ‘공수처 책임론’을 앞세웠고 이는 앞서 살펴본 보도와 똑같다. ‘소환을 안 한 공수처 책임’이라는 인식은 대통령실도 마찬가지다. 

다만 국민의힘과 다수 언론은 ‘그래도 총선에서 이겨야 하니 조기 귀국하라’는 결론에 이른 반면, 대통령실은 그마저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총선을 앞두고 이 대사 귀국이 미칠 영향을 저울질했을 대통령실은 20일, 일단 이 대사가 회의 참석 차 곧 귀국하는 쪽으로 선회했다. 수사 외압 및 도피성 출국 의혹을 ‘총선’이라는 변수에 따라 다루는 것이다. 

따라서 대통령실, 여당, 언론 모두 본질에서 비켜나 있다. 이종섭 대사의 호주 출국 논란의 핵심 쟁점은 공수처의 조사 일정이나 출국금지 조치가 아니다. 해병대원 순직 수사 외압 의혹이라는 중대 사건의 핵심 수사 대상자이자 ‘호주대사’로는 이례적인 ‘군 출신’ 인사인 이종섭 대사를, 왜 하필 지금 이 시점에 대통령이 급거 대사로 내정했는지, 그 과정과 동기가 핵심이다. 전문성에 따른 정상적 인사라면 수사를 어느 정도 더 지켜보고 출국금지도 자연스럽게 해결하고 신임장 원본도 절차대로 전달하여 천천히 임명해도 될 일이다.

더구나 지휘부 공백과 인력 부족에 처한 공수처는 1월에야 이종섭 대사 등 관련자에 대한 압수수색을 했고 그 분석이 채 끝나지도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갑자기 핵심 피의자를 호주대사로 임명했다는 건 수사 과정에서 대통령실의 수사 외압 관련 결정적인 정황이 나왔고 그걸 알아차린 대통령실이 급박하게 대안을 마련한 것으로 보일 수 있다. ‘왜 이렇게 뜬금없이 호주로 보내냐’라고 묻자 대통령실, 언론, 여당이 ‘공수처의 출국금지, 소환 일정’만 물고 늘어지는 것도 결국 ‘임명 배경’을 함구하기 위함이 아닐까? 

 극히 일부지만 그런 ‘결정적인 임명 배경’을 추정하는 보도도 나오기 시작했다. 지난 17일 <한겨레>의 ‘아침햇발’ 칼럼 <대통령실 내선번호 드러나자 이종섭 도피시켰나>은 지난해 7월 31일, 이종섭 당시 장관이 돌연 해병대 수사단의 수사결과 발표를 취소시키기 직전 받았다는 대통령실 전화를 가리켜 “이제 이 전 장관이 과연 대통령실 누구와 통화했는지를 답해야 하는 ‘진실의 순간’이 닥쳐오고 있었던 셈”, “보스의 비밀을 쥔 부하의 증언을 막으려고 국외로 도피시키는 범죄 누아르 영화의 플롯을 누구나 떠올릴 수밖에 없다”고 짚었다.

이종섭 대사 수사가 심화되기도 전에 이미 대통령실의 수사 개입 관련 뚜렷한 정황이 ‘대통령실 전화’로 드러났고 이에 대통령실이 급하게 도피시킬 수밖에 없었다는 분석이다. <한겨레> 칼럼은 이런 의도가 인정될 경우 “포괄적인 사법방해죄 대신 범인도피죄 등 구체적 혐의”도 적용가능하다고 봤다. 대통령실이 그러한 수사 내용을 미리 알았고 그에 따라 호주대사 임명 등을 강행했다면 공수처의 기밀 유지 및 수사 독립성까지 해친 더 심각한 사안이 된다. 

도피 출국 의혹을 받고 있는 이종섭 주호주대사가 21일 오전 귀국해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뉴시스
도피 출국 의혹을 받고 있는 이종섭 주호주대사가 21일 오전 귀국해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뉴시스

여기서 시선은 다시 MBC로 돌아간다. 이종섭 당시 국방부장관이 해병대 수사단의 수사 결과 이첩 보류 및 혐의 삭제 지시를 내리기 직전 받았다는 ‘대통령실 전화’도 MBC의 단독보도였다.(<“수사결과 발표 중단” 변심 직전…‘대통령실’ 일반전화 받았다>) 이 보도가 이종섭 호주 대사 임명 배경에 단초라면, 황상무 수석의 MBC를 향한 ‘회칼 테러’ 발언도 같은 맥락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있다. 대통령을 위협하는 치명적 사실, 핵심 피의자를 무리하게 출국시킬 수밖에 없었던 결정적인 사유를 하필 MBC가 또 보도했다.

이젠 전용기 탑승 배제로도, ‘바이든-날리면’ 보도 소송전으로도, 선거방송심의위원회의 무더기 ‘관계자 징계’로도 MBC를 막을 수 없다고 판단한 절박한 마음이 결국 선을 넘어 ‘물리적 위협’에 도달했을까? 이런 서글픈 추정을 해야 하는 게 우리 정치의 현실이며, 우리 언론의 현주소다. 언론은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렀으나 ‘여당의 총선 승리’를 위해 ‘황상무 사퇴’를 외쳤다. 황상무 수석의 사퇴로 여당이 총선에 승리하면, 이게 다 없던 일이 되고 MBC 탄압은 중단될까? 오히려 탄압의 대상이 확대될 것이다. 특정 정파의 선거 공학에 따라 권력 비판이 좌우되면 안 되는 이유도 거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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